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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SOY ♣/포토에세이 Photo Essay

빈 커피 잔 - soy

by 소이나는 2016.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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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혼자 카페에서 마셔버린 리스트레또




전에 커피 믹스를 마시다가 이런 시를 적어 본 적이 있었다.


                  - 가을 밤의 커피 - 

                           - soy


무심결에 타고 있는 커피 한 잔

나 몰래라 그저 웃기만 하지요.

서늘한 하늬바람 옷깃을 스치우며

올망한 두 손에 포근한 마음 한 모금

거친 목 타고 넘어가는 미련스런 옹고집에

아, 이 고독함을 알아주는 것은 

화륜(火輪) 같은 당신 뿐.

그윽한 향기에 취해 홀로 남아

그린듯 뿌려놓은 구름 한 조각 부여잡고

미련 남아 옷 소매에 별 한 조각 숨겨두고

타는듯 남은 한 모금 영혼으로 들이키며

이제야 알았지요. 

괴나리 봇짐이 가볍다는 것을...



그 당시에 나에게 삶의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가 음악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커피를 마시는 것 뿐이었다.

다른 것은 주변에 하나도 없었다.

우울한 기분 속에 그저 창살 있는 창문 밖의 하늘은 다른 공간에 떠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작은 방 안에서의 삶은 고독했고 덩그라니 세상에 혼자 남아있는 느낌.

어쩌면 자신의 이성이 극복하기 힘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이다.


빈 잔에 커피믹스 가루를 부었다.

하얀 잔에 어두운 색의 커피 가루가 떨어진다.

그 위로 고운 프림이 떨어진다.

다시 반짝이는 설탕가루가 떨어진다.

김이 모락 모락나는 뜨거운 물을 부으니, 커피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니 몸이 풀린다. 두통도 잠시 가라앉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커피를 사랑하지만, 커피를 받아들이는 몸은 카페인에 약하다.

커피가 몸에 들어왔다는 것을 목이 알기도 전에 몸이 알아차리고 반응한다.

밤새 불면증에 시달릴 것을 알면서도 커피를 마신다.

매번 반복적인 일상 중에 홀로 앉아 있는 나와 내 손에 들린 커피 잔을 바라 보았다.


커피 한 잔은 나의 몸으로 쉽게 사라진다.

쉽게... 쉽게...

좀 허탈했다. 

친구라 여긴 커피는 혼자 쉽게 사라지고, 향만 남겨 놓고 떠나, 빈 잔만 남아 있다.

가볍게 마셔 버린 커피는 무거워진 나의 정신을 비웃으며 사라졌다.

인과관계의 연결성에 의문을 가질만한 결과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사라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가장 쉬운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 커피를 마시고 있다.

지금 마시는 커피는 가볍지도 않고, 쉽게 사라져 버리는 느낌도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생각은 변해 버렸다.

단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카페인에 잘 반응하는 몸과 아직 커피를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지금은 위에 시에 적혀있는 '괴나리봇짐'이란 말을 잊고 살고 있다.

전에는 늘 세상을 사는 여행을 하며 등 뒤에 무거운 짐이 하나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벼운 커피를 마시는 것과 함께 짐은 가벼워졌고,

이제는 여행을 하는 데에는 굳이 짐이 없어도 몸 하나로 홀가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홀가분하다.


'사라진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꽤나 허탈한 생각이지만, 아마도 이러한 생각 덕분에 아무 이유 없이 살 수 있는가 보다.

내일의 해는 내게 떠도 그만, 안 떠도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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