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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SOY ♣/포토에세이 Photo Essay

친구에게서 찾는 나(我) - soy

by 소이나는 2017.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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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서 찾는  



흑백사진 같은 오랜 친구를 만났다. 오랜 시간의 만남으로 색은 잃었지만 늘 새로운 장면이고 오래될 수록 가치가 있는 만남이다. 이 친구를 처음 본 것은 2004년 춥기도 엄청 추웠던 간도의 겨울에 정확한 위치는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였다. 덩치는 곰 같이 큰 남자가 머리카락은 여자처럼 길어 뒤로 묶었고,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늘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여행을 하고 가치관이 뚜렷한 독특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남에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가 있는 곳을 자주 찾아왔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워 교회에 가자고 졸라, 결국 낯선 중국 땅에서 처음으로 교회란 곳도 가보게 되었고, 사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하여, 처음으로 사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커피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나 또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함께 여행을 하며 느낀 감정과 감동도 함께 늘어났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다른 소속에 속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는 없어 일반적인 친구들과 같은 느낌은 친근함 정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서울과 부산이라는 서로 먼 지역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만남이 끈겼고, 게다가 친구가 학업을 위해 시카고로 떠나며 더욱 잊혀지는 사람이 되었다. 분명 이렇게 잠시 연락이 없이 지난 적도 있는데, 기억 속에는 계속 서로 만나며 지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된 것은 어떻게 해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멀어졌던 순간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것인지 신기하게 느껴진다.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내려가 다시 시계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처럼 한결같이 만나며 지내는 느낌이 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유유상종[類類相從]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같은 이상을 바라보는 친구이기에 쉽게 동화가 되어인 것 같다. 이런 친구 덕분에 오늘의 만남에서도 의미있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여행, 사진, 커피, 가죽 공예, 필기구 등 서로에 관심있는 대화를 하던 중에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디지털은 가성비가 있어 소모되지만, 아날로그는 변치않아 가치가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진기에 대한 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인생에 대한 말 같이 들려왔다. 스마트하고 정갈하며 빠르고 현대적이며 늘 새것 같고 0과 1의 단순한 반복인 디지털을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지적이고 빠르며 똑똑하지만 단순하고 일률적인 삶을 사는 나와 사람들이 닮아져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자연 속의 물질과 원자의 근본이며 디지털을 등장시킨 근원인 아날로그는 조금씩 잊혀지듯, 자기 자신의 고유한 모습과 개성을 잊고 같은 삶을 반복하고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는 삶을 보내고 있다는 자괴감이 생겨났다. 


요즘은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한 일면을 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하고,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서 비슷한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 피곤해서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잠이 들고. 여유가 있을 때에는 책도 읽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길도 걷고 싶지만, 다 익어 알맹이는 없는 지푸라기가 논에 누워있듯 적막한 방 구석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지구가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제자리로 오듯, 일상도 돌고 돌아 같은 모습으로 진행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 겨울을 보내면 또 다시 지겹게 봄이 오는 큰 구속에 얽혀 사는 사람으로 반복적인 것에 물들어 사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이러한 삶이 어쩜 '늙어가는 것을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나, 일상의 구속이 마음의 구속으로 변하여 평범한 테두리에 자신을 가두어 모범수가 되어 버린다면, 스스로의 감옥이 자신을 조이는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삶이 강은 흐리고, 바람이 불고, 나무는 자라며 고유한 삶을 사는데, 나는 그러한 자연의 모습을 담으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메모리 카드 속 갤러리에 저장을 해둔 디지털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물론 디지털적인 모습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마음 속에 아날로그로의 향수가 남아있듯, 나 또한 나와 어울리는 변환된 모습이 아닌 원래의 모습을 찾고 싶은 갈망이 있기에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평소에도 나 답지 않은 삶에 대한 고민을 하던 것을 깊게 생각하는 계기기 된 것이다. 


이러한 생각 속에 평소에 갖던 '나 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다시 떠오르고,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쩜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쉬운 답을 찾아 늘 고민했던 것 같다. 그 답은 친구와의 대화 속에 고스란히 존재했다. 친구와 대화를 하며 호기심을 갖고 즐거워 하며 지루해 하지 않은 것들과 대화 속에서 깨닫고 스스로를 정립해 가던 순간 모든 것이 나의 자연 속 근원인 아날로그 적인 모습이었다. 


오랜 친구에게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인생에 가장 큰 스승은 주변에 있는 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늦은 밤 친구를 보내며 다음의 만남을 기약한다. 그리고 다음에 다시 만날 나 자신을 기다린다.




我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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