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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도읍 추정지, 금강이 보이는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Gongsan Fortress in Gongju-city, Korea, 공산성, 진남루, 쌍수정, 공북루, 임류각, 금서루, 영동루, 광복루)

by 소이나는 2014.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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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州 公山城


백제 도읍 추정지, 금강이 보이는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Gongsan fortress in Gongju-city, Korea



백제의 도읍, 공주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



 정종목

 사적

 지정번호

 사적 제12호

 지정일

 1963년 01월 21일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성내로 86-80(산성동 2)

 시대

 백제

 종류/분류

 

 크기둘레

 2,450m




공산성

  • 웅진성 수문병근무교대식 : 매년 4월~10월 토,일요일 오후2시~7시
    (7,8월은 혹서기로 휴무)
  • 관람시간 춘ㆍ하ㆍ추절기 : 오전 9시~오후6시
    동절기 : 오전 9시~오후5시
  • 휴관일 : 설날, 추석 당일
  • 문의 (041)840-2548


한국의 역사적인 도시에는 옛 성들이 있어 전통적인 느낌이 살아 있다.

수도였던 서울에는 서울 성곽이 남아 있고, 수원의 화성, 진주의 진주성, 서산의 해산읍성, 고창읍성 등이 그러하다.

백제의 도읍이 있었던 충남의 공주에도 성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공산성이다.


공산성 입구


공주시는 백제의 역사를 담고 흐르는 금강을 사이로 신도시와 구도시가 나뉘는데, 공주 터미널에서 금강을 건너면 도심인 산성동에 금강을 따라 공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황새바위 성지






백제의 수도는 위례성, 공주(웅진), 부여 이렇게 세 곳이었는데,

첫 수도인 위례성은 서울의 몽촌토성이 있는 부분이라는 설과, 천안의 성거 쪽이라는 설이 있다.

위례성에서 공주로 도읍을 옮긴 것은 고구려의 강성함에 밀려 도읍을 남하하기도 했지만, 공주를 도읍으로 한 시대에도 백제의 문화는 융성했다.

우리가 들어본 무령왕이 있을 때가 바로 공주에 도읍을 하고 있을 때이다.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475)에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다. 

공산성은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이다.


금서루



공산성은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백제시대의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 안에는 웅진 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보여지고 있다.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사이의 산책로가 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린다.


성벽길


동쪽과 남쪽 성벽은 돌로 쌓아 높이 약 2.5m인데, 전면만을 석축하였으며 내면은 토사·잡석으로 다져 붙였고, 너비는 3m이다. 

동쪽 성벽 밖에 토성이 있는데, 높이는 무너져서 알 수 없으나 너비는 약 3m이다. 

서쪽 성벽은 본래 토축(土築)된 위에 돌로 쌓아 외면만을 축조하여 높이는 4m 정도이다. 

지금은 원형을 알 수 없는 서문터(현재는 통로) 남쪽은 석재로 쌓았는데, 너비 4.5m, 높이 3m이다.

본디 보존이 잘 되어 있던 성인데, 근래 금강 쪽의 성벽이 일부 무너져 아쉬움이 남는다.


금서루 (錦西樓)


공산성은 여러 입구가 있는데,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문이 금서루이다.

서문인 금서루(錦西樓)는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서문루 3칸(西門樓三間)”, 『공주구읍지(公州舊邑誌)』에도 “동문, 서문 2층 3칸(東門, 西門, 二層三間)”으로 되어 있어 당시 문루가 존재했던 점은 확실하나 발굴조사시에 그 흔적을 확인하지 못하였다. 



금서루 아래로 성안으로 들어가 문화해설사의 집 옆으로 내려가면, 활을 쏘는 등 각종 체험장이 있다.



그곳을 지나쳐 계속 내려가면 금강을 바라 볼 수 있는 공북루가 나오는데, 이 날은 성벽 공사가 진행 중이기에 공북루는 멀리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체험장과 공북루

금강이 보이는 공북루가 멀리 보인다.


공북루에서 금강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금서루로 돌아와 성벽길을 걸었다.


뒤편에 보이는 공산정과 중앙의 금서루


공산성에서는 금서루 옆의 공산정이 경치를 즐기기에 좋은데, 2013년에 성벽의 일부가 무너저 복구가 한참이다.

문화재 관리가 소홀했다는 언론의 질타도 많았는데, 그 원인으로 뉴스에서는 4대강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추측 뿐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2014년에도 2차 붕괴가 목격되었다고도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파른 성벽


금서루에서 공산정을 등지고 가파른 성벽길을 걸어 백제의 추정 왕궁지인 쌍수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공산성 쌍수정 [公山城 雙樹亭]


쌍수정은 진남루(鎭南樓:충남문화재자료 48) 서쪽에 위치한 정자이다. 

조선시대인 1624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이곳 공주까지 내려와 공산성에 피신하고 있었다. 

산성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했던 쌍수(雙樹:두 그루 나무)에 기대어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던 나머지 자신이 기대었던 느티나무 두 그루에 통훈대부(通訓大夫)라는 벼슬을 명하고 이곳을 쌍수산성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이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734년(영조 10)에 쌍수가 있던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

처음 정자를 지었을 때 당시의 이름은 삼가정(三架亭)이었다. 

그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으며, 1903년(광무 7)에 다시 정자를 세웠는데 그때 이후 쌍수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벚꽃이 피었던 쌍수정


지금의 건물은 1970년 전체적으로 해체 복원한 것이다. 정자 앞에 느티나무 1그루와 말채나무 1그루가 서 있지만 어느 나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인조가 이곳에 머물렀을 당시의 사적을 기록한 비(쌍수정 사적비:충남유형문화재 35)도 남아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쌍수정과 백제 왕궁 추정지


쌍수정 앞에는 넓은 뜰이 있는데, 그곳이 백제의 도읍으로 추정되는 장소라고 한다.

공산성 내 서쪽의 표고 85m의 정상부,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약 6,800㎡의 면적이 추정 왕궁지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임류각은 궁의 동쪽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1980년에 조사된 임류각지에서 서쪽으로 왕궁이 입지할 수 있는 위치는 이 곳 밖에 없다는 논거로 1985년부터 1986년에 걸쳐 조사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유적은 건물지를 비롯하여 용수를 저장할 수 있는 연못과 목곽고 및 저장구덩이 등이 확인되었고 이들 유구나 또는 출토된 유물들이 백제시대로 편년되어 왕궁지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확인된 건물지로는 반지하식 건물지, 굴건식 주공을 사용한 건물지,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 2개소와 연지, 저장혈, 목곽고 등이 있다.


건물지는 굴건식 건물지까지는 백제가 웅진으로 남천하기 이전의 유적으로 보고 적심석을 사용한 건물지는 남천 후, 즉 왕궁지의 시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가운데 적심석 검물지는 각각 24칸, 10칸 규모였다. 

수습된 유물은 대체로 기와류인데 막새기와는 백제의 8엽, 10엽 연화문을 비롯하여 파상문 수막새 기와이고, 10엽 연화문 수막새 기와는 연꽃의 끝부분 반전이 심하게 이루어진 백제 초기의 것으로 공주 공산성에서 주로 출토되는 전형적 형식이다.

이외의 평기와 중에는 웅천(熊川) 혹은 관(官)자의 명문이 찍힌 것을 비롯한 각종의 도장문이 나왔다. 

토기는 백제토기로 등잔을 비롯하여 개물이나 삼족토기 등이며 특수 유물로 봉황형 금동향로가 수습되었는데 이는 부식이 심하고 출토 위치가 불분명하지만 조사된 건물지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판단된다.


쌍수교


쌍수정에서 성의 중앙 쪽으로 향하는 내리막 길을 따라 길을 걸어 쌍수교를 지나 임류각으로 향하였다.
쌍수정에서는 남쪽으로 성문이 하나 보이는데 그 성문이 진남루이다.
공산성의 출입 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이 진남루는 성의 남문이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높은 석축기단을 좌우로 대칭시켜 조성한 후 두 석축 기단에 걸쳐 건물을 세워 2층 누각의 효과를 내고 있다. 
원래 토성이었던 공산성이 지금과 같은 석축성으로 개축된 것은 조선 초기의 일로 이 진남루 역시 그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 후 여러 차례 수축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건물은 1971년 전부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산을 오르다 보니 보이는 임류각


따스한 햇살이 있던 봄날 공산성의 시원스런 바람을 맞으며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임류각이 나온다.

임류각은 백제의 왕경인 웅진(熊津)의 궁성 동쪽에 세워진 누각으로, 백제시대인 500년 동성왕 재위 22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공산성 정상부에 위치하며 주변은 편평한 대지로 다듬어져 있다. 
누각의 높이는 15m, 2층구조로 이루어진 대형의 건축물이며 백제시대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누각의 용도는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었던 장소로 추정된다. 
1980년 공산성을 발굴하면서 임류각 터를 알게되었고 1993년 복원하였다.

공산성 임류각 (公山城 臨流閣)


공산성에서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임류각에 한번 올라보고 싶었는데, 건물 안으로 오르지 못하게 계단을 닫아 놓아 올라가 보지 못하였다.
그리고 임류각 근처에는 광복루라는 누각이 있다.

광복루


광복루는 성벽 근처 높은 곳에 있는데, 원래 조선시대 중군영의 정문 문루였고, 명칭도 폐문루(閉門樓)였다. 

일제 초기에는 중군영이 폐쇄됨에 따라 문루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는데, 이때 명칭도 웅심각(雄心閣)으로 바꾸었다. 

그 후 건물이 낡아 보기 흉해짐에 따라 1945년에 공주읍민들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복루라는 명칭은 1946년 4월에 이곳을 방문한 김구, 이시영이 광복을 기념해서 붙여준 이름이다.

2층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초익공 양식으로 장식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8각의 높은 주초 위에 기둥을 올렸으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네 귀퉁이를 반전시켜 경쾌한 느낌을 준다.

1984년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2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도 있는데, 층계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공산성하면 대부분이 백제의 흔적으로 느껴지는데, 광복루는 공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의 하나다. 

또한 중군영의 문루였다는 점에서 공주의 역사적 위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주말임에도 여행객이 별로 없어 한적한 공산성을 걷다 동쪽의 성벽을 오르니 금강이 흐르는 수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공산성이라는 역사적인 장소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는데, 수려한 경치까지 보여주니 공산성의 여행은 감사하기만 하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 금강대교


공산성은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옥룡동에 걸쳐 남으로는 시가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금강의 연안에 접해 있는 해발 110m의 야산에 위치하며, 동서의 길이가 약800m, 남북의 길이는 약400m의 타원형 형태를 띠고 있는 포곡형 산성이기에, 공주시의 모습을 여러 각도로 바라 볼 수 있다.



천천히 성을 걸으며 꽤나 높은 키를 자랑하는 나무 사이로 산림욕도 즐기고, 마음의 힐링도 받다보니 어느덧 한바퀴를 돌았다.

처음 공산성으로 들어온 금서루로 다시 돌아갈까하다가 영동루에서 성 밖으로 나가려 영동루로 갔다.



영동루는 공주 공산성 동쪽으로 난 석축 홍예문이며 누각은 팔작자붕이다.



영동루에 올라 공주시가지를 바라보는데 멀리에 벚꽃이 만발한 곳이 보인다.

그 곳은 국고개라는 곳으로 충남역사박물관이 있는 곳인데, 국고개 근처에 공주 중동성당이 있다.

공산성을 들린 후에 공주 중동성당으로 가려했기에 멀리 보이는 벚꽃 동산을 어찌가야하나 고민하는 중에,

공산성을 산책하시던 공주에 사시는 한 아주머니께서 영남루 아래로 내려가는 샛길을 알려주신다.


영동루


샛길은 뭔가 이 지역에 사시는 분만 알 것 같은 포스의 길인데, 그 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니 바로 중동성당으로 방향이 잡혀 길을 알려주신 아주머니가 너무 고마웠다.

황새바위 성지에서는 지역분께 황새바위의 전설과 성지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국고개에서는 벚꽃 구경 나온 공주 사람들의 밝은 웃음도 보고, 공주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다가온다. ^^


영남루에서 내려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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