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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식당 ♠/서울 인천 경기

수원 화성을 거닐다. (Suwon Hwaseong Fortress, 水原 華城)

by 소이나는 201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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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을 거닐다. 

Suwon Hwaseong Fortress, 水原 華城




 

 [신풍루]




수원 화성의 동장대에서 장안문 서장대 팔달문 봉돈 창룡문을 지나 한 바퀴를 돌아보고 다시 동장대에 도착하였다.

성벽 길을 따라 둘러본 화성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우리 나라에 이렇게 완벽하게 남아있는 성벽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이다.

진주성, 공산성, 해미읍성 등 오랜 성벽의 느낌과는 다른 세련되고 요새 같은 느낌이 더욱 드는 화성이다.

아마도 조선 후기라는 가장 신상(?)인 성이기에 그러겠지만 많은 과학적 요소가 숨어 있어 성을 둘러보는 재미가 더있었다.

서울의 노론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서울을 대신할 요새인 수원의 화성을 만들었든 것을 보고 정조에 반대하던 세력들은 얼마나 불편한 심리였을지 현대에 살고 있는 내게도 느껴질 듯하다.



성벽을 둘러보고 이제는 성 안으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큰 화성이기에 성 안으로도 도시가 하나 이루어져 있다.

성의 안 쪽에는 큰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해놓은 것인지 그리 크지 않은 건물들만 남아 시간이 잠시 머물러있는 도시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발전된 도시인 수원과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른 성안의 마을이다.



벽돌로 곱게 쌓아 세월을 담은 건물과 벽을 따라 타고 오르는 담쟁이 넝쿨이 조선의 화성과 대한민국의 수원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어 있다.



서장대로 오르는 산의 중턱에서 여행객들에게 음료와 과자를 파는 작은 매점은 마치 현대의 역사는 자신이 간직하겠다는 듯한 자태로 살아있는 나무를 기둥삼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솜사탕을 만드는 기계는 없어지고 아이스 커피를 담는 테이크 아웃 일회용 잔 같은 곳에 담겨 형태는 변하였지만, 

아마도 솜사탕을 사는 어른 들의 동심을 찾아 떠나고자 하고픈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가을 꽃이 반겨주는 거리를 걸으니 청명한 하늘이 가을의 매력은 이런 것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성의 중심부인 행궁이 있는 광장으로 가니 큰 종이 하나 보인다.

그러고 보면 어느 성이든 중심에는 종루나 종각이 만들어져 있다.

서울에서는 종로가 중심이 되어 있고, 중국의 장안성에도 중심부에는 근사한 종루가 남아있다.

수원 화성의 이 종각(鐘閣)이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 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것도

정조의 실학(實學)과 효의정신으로 새롭게 만든 도시인 수원을 수도(首都)와 같은 지위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의미로 설치했을 것이다.

세도세자의 아들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정조의 야심찬 도전을 느낄 수가 있다.


[여민각]



백성과 함께 더불어가는 삶을 꿈꾼 것인지 종이 담긴 누각은 '여민각(與民閣)'이라는 현판이 붙여있다.

또한 종의 사면에는 수원시민(水原市民) 모두 화합하여 즐겁고 집집마다 부유하여 충만하고 수원시를 근본으로 세계로 창성하고 번화하라는 기원의 뜻으로「 인인화락(人人和樂) 호호부보(戶戶富寶) 수원위본(水原爲本) 세방창화(世邦昌華) 」이 새겨져 있다.


 

여민각은 일제 강점기에 소실 되었다가 "수원화성" 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1997년 12월)된 이후 "수원화성"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하였으며 2008년 8월에 중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약간은 새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매해 새해에는 이 곳 여민각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타종 행사를 열고 있기도 하다.



종의 옆에는 수원종로교회가 보이는데 꽤나 오래되 보인다.

종이 있는 거리의 교회라 종로 교회라고 명명했나 보다.



길을 건너 행궁으로 향하니 바닥에는 정조대왕의 행렬도가 새겨져 있다.

마치 진시황이 사후세계의 병사를 만든 병마용 처럼, 행궁의 광장에는 정조의 모습과 병사들이 조각과 그림으로 남아 세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가지가 멋드러지게 휘어진 근사한 나무가 보이고 행궁으로 들어가는 신풍루에 도착하였다.

신풍루는 1790년에 세운 2층 구조의 6칸 규모 누문(樓門)이며 화성행궁의 정문이다. 

아래층엔 세 개의 판문이 달린 통행문이 있고, 위층엔 누마루가 있다.

처음에는 진남루(鎭南樓)라 하였으나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新豊樓)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華城 行宮 新豊樓]


한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豊沛)로부터 비롯된 이름으로 정조가 화성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의미이다. 

1795년 을묘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는 진휼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신풍문 옆에는 행국을 모습을 담은 지도와 화성의 상세 지도가 있는데 화성전도는 독특하게 금속으로 만들어져 매력적이다.



행궁의 안은 약간은 썰렁하기도 하지만 조선의 여러 건축 양식을 살펴 볼 수 있다.

각 포인트마다 스탬프를 찍는 곳이 있어 스탬프를 찍으며 자신의 여정을 확인할 수도 있다.


 

행궁 안의 모습은 차후에 따로 세세히 올려보아야겠다.

 


행궁과 서장대 사이에는 성신사가 있다.


[성신사]


성신사는 수원 화성을 지켜주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다.
그러고 보면 무속신앙은 꽤나 오랜 시간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찰을 보아도 칠성각이나 산신각 등 무속적인 공간이 남아 있다.
만갈래 하천을 밝게 비추는 달 같은 존재라 자처했던 '만천명월주이옹'인 정조도 무격 신을 버릴 수는 없었던 것일까?
현실적이고 실학을 받아 들였던 정조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천주교에 대한 배격을 심하게 하지 않았던 정조를 생각하면 어쩜 신을 믿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산 위로 보이는 서장대



고개를 들어 팔달산을 바라보니...

푸른 하늘 아래 서장대가 근사하게 보인다.

서장대가 만들어 지던 조선 후기나 지금이나 하늘은 변한게 하나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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