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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스승에 대한 마음이 담긴 팔괘정, 강경 팔괘정 (江景 八掛亭, Palgwaejeong Pavilion in GangGyeong)

소이나는 2015. 3. 1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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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스승에 대한 마음이 담긴 팔괘정

강경 팔괘정 

江景 八掛亭, Palgwaejeong Pavilion in GangGyeong)




팔괘정







전망대 아래 작은 한옥



강경젓갈전시관 옆에 있는 돌산전망대에서 강경과 금강의 풍경을 즐기고 서쪽의 작은 샛길로 내려가면 아담한 한옥이 하나 보인다.



정면 3칸 7.35m, 측면 2칸 4.6m의 작은 한옥집이 그저 오래된 집으로 남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어렵게 언덕 한 쪽에 숨어 있는 집이다.


전망대 아래의 작은 한옥




송시열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팔괘정



강경의 여행 가이드를 펴고 살펴보면, 이곳이 팔괘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별것 아닌 오래된 한옥집 같지만 이 한옥과 관련된 인물은 그래도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봄직한 우암 송시열과 관련된 곳이다.

송시열은 스승인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禮學)을 전수받고, 뒤에 성리학(性理學)을 배웠으며, 서인(西人)을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畿湖學派)를 이루어놓은 인물이다. 

이로 인하여 강경유림(江景儒林)에서는 임리정과 함께 이 팔괘정을 유림의 소유로 삼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언덕에서 바라본 팔괘정


팔괘정은 1626년(인조 4)에 송시열(1607~1689)이 건립한 정자로, 1978년 03월 31일 충남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시열은 이 정자를 지으면서 창살무늬를 팔괘(八卦)로 꾸몄고, 그로 인하여 정자 이름을 팔괘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은 송시열이 이황(李滉:1501~1570)과 이이(李珥:1536~1584)를 추모하여 학자 및 제자들에게 강학하던 곳으로 스승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북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임리정(충남유형문화재 67)을 세우자 스승 옆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싶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우암 송시열




이후 1695년(숙종 21) 송시열이 죽림서원에 배향되자 죽림서원의 부속 건물이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관청의 소유가 되고, 대지는 일본인에게 넘어가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아 극도로 퇴락하였다. 해방 후 1948년 죽림서원 유림들의 발의로 대지를 돌려받았고, 1949년 송시열의 본손인 송재성(宋在晟)이 유림의 협조로 말끔히 중수하고 기문을 지어 걸었다.




금강을 바라보는 정자




옆으로 금강(錦江)이 흐르는 남향 건물로, 정면 3칸(7.35m) 측면 2칸(4.6m)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지붕 측면에 현판 ‘八掛亭(팔괘정)’이 달려 있다. 정면 3칸에는 기둥이 5개로, 같은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중 왼쪽 2칸은 대청으로,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을 꾸몄고, 온돌방 옆에 반칸을 안으로 들여 누마루(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를 두었다. 


팔괘정 정면의 모습


기둥은 둥근 기둥을 세워 기둥머리를 놓고 공포(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를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를 짜올렸는데 초익공 방식과 같은 양식이지만 외부로 나온 첨차(도리 방향에 평행하고 촛가지에 직각으로 짠 구조재)는 익공집의 형태가 아니고 선단을 원형으로 조각하였다. 창방(昌枋:대청 위 장혀 밑에 대는 넓적한 도리) 위는 기둥 사이마다 소로 받침 5개를 두었다. 


팔괘정 측면의 모습


지붕 가구(架構)는 앞과 뒤의 평주에 대들보를 걸었는데, 대들보 윗부분에는 기둥머리를 얹은 동자기둥을 세워서 대들보를 받쳤으며, 대들보 위에 있는 마루대공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대공(臺工:마룻대를 받는 짧은 기둥) 이외에 둥근 대공도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정자의 내부에 시액 현판이 걸려 있고, 팔괘정 주변으로는 건물의 초석으로 보이는 석재가 흩어져 있다. 

건물 뒤편 북쪽의 바위에는 송시열이 각자했다고 전하는 ‘청초안(靑草岸)’, ‘몽괘벽(夢挂壁)’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렇게 팔괘정은 작은 한옥지지만, 조선시대 정자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중요한 자료이며, 우암 송시열과 그 학맥에 연계되는 인물들의 행적이 스며 있는 유적인 곳이고, 조선시대 정자 건축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한식 가옥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작은 정자인 팔괘정을 보고, 조금더 뒤 쪽으로 내려가면 서원이 하나 나오는데, 그곳은 예전에 황산서원이라 불리고 지금은 죽림서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등의 위패를 모시는 서원으로 근처의 팔괘정, 임리정과 관련이 깊은 서원이다.


죽림서원으로 향하던 길의 무너진 집


필괘정은 짧은 시간 감상하고, 작은 골목을 따라 죽림서원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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