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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개화기] 14. 항일 의병 전쟁 ( 을미의병, 문석봉, 이소응, 유인석, 이강년, 곽종석, 대한 사민 논설, 활빈당, 러일전쟁, 가쓰라 태프트 조약, 포츠머스 조약, 헤이그 특사, 을사조약, 을사의병, 정..

by 소이나는 201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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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의병 전쟁의 전개


 

  cf) 임진왜란 의병 - 정문부, 휴정, 유정, 정인홍, 김천일, 김덕령, 고경명, 조헌, 곽재우

  cf) 정유재란 - 정봉수, 이립


Ⅰ. 항일 의병 투쟁의 시작

    을미의병(1895) → 을사의병 (1905) → 정미의병(1907, 전쟁화)


 1. 을미 의병 (1895 - 의병의 발단)

  (1) 배경 - 일본의 침략, 적극적 저항

  (2) 계기 - 을미사변, 단발령

  (3) 유생이 주도 (위정척사파) - ‘창의토왜’란 깃발을 들고 봉기, 농민도 참여

  (4) 의병장

    1) 문석봉 (유성,보은) / 2) 유인석, 이춘영, 안숭우, 홍사구, 김백선, 서상열 (충주, 제천) /

    3) 이소응 (춘천) / 4) 허위(선산) / 5) 이강년 (문경)   /  6) 기우만 (장성) /

    7) 홍주 - 안병찬, 김복한, 이설, 이세영, 이근주  / 8) 민용호(강릉) / 9) 곽종석 (산청)

   * 곽종석 - 유학자, 내수외양 주장, 만국공법에 의한 외교적인 방법으로 국권회복 주장

   ☞ 유인석

      “우리 팔도 동포는 차마 망해 가는 나라를 내버려 둘 것인가, 제 할아버지, 제 아버지가 없는 백성이 아니거늘

       내 나라, 내 집을 위하여 어찌 한두 사람의 의사도 없단 말인가, ~ 우리 국무의 원수를 생각하면 이미 이를

       갈았는데 참혹한 일이 더하여 ~ 우리 부모에게서 받은 머리털을 풀 베듯이 베어 버리니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원통함을 어찌하리. 이미 국무의 원수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는데, 참혹함이 더욱 심해져 임금께서 또 머리를

       깎으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 이에 감히 먼저 의병을 일으키고서 마침내 이 뜻을 세상에 포고하노니, 위로

       공경에서 아래로 서면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가 애통하고 절박한 뜻이 벗을 것인가.”

 

  (5) 종식

   1) 친일 정권 붕괴 - 아관파천

   2) 단발령 철회

   3) 국왕의 해산령                                                                                                 (soy한국사)


 2. 활빈당 (1900~1905)

  (1) 충청, 경기 지역 - 물건을 빼앗아 빈민에게 줌

  (2) 동학 잔여세력과 행상, 유민, 노동자, 걸인 등으로 조직

  (3) 대한 사민 논설 - 경제 침탈, 반외세, 토지균분, 반봉건, 반제국

    1) 선왕의 복제 본        2) 방곡 실시         3) 흥인을 꾀함     4) 시장에 외국상인 출입 금지

    5) 금광채굴 엄벌         6) 곡가 낮춰 안정    7) 소 도살 엄금    8) 악형 혁파

    9) 다른 나라에 철도 부설권 금지              10) 균전법 시행 (농민의 가장 큰 염원)   

   11) 요순의 법 시행       12) 징세폐해 제거

 

 3. 이재수의 난 (1901)

   1) 프랑스 선교사의 강아적 선교활동, 왕실의 사적 수탈, 일본 어선의 침탈, 과중한 징수 등에 저항

   2) 제주 농민 봉기

   3) 삼의사비 (1961) - 기념비


 4. 러일전쟁과 을사조약





<러일전쟁>

 

1. 러

  (1) 만주지배 - 로젠·니시협정(1898)

  (2) 용암포 조차 기도 (1903)

 

2. 일 - 영미지원

 

3. 대한제국 - 중립선포 (1904. 1. 21.)

 

4. 일본 → 러시아 기습 (1904. 2. 8.) : 여순항, 인천항 → 선전포고 (1904. 2.10.)

 

5. 한일의정서 체결 (2. 23) - 경부선, 경의선, 마산 철도 부설 강행

 

6. 한일협약서 (제1차 한일협약 8. 22)

 

7. 일본 승기 - 여순항 전투, 봉천성 전투, 대한해협전

   cf) 독도 시네마현 귀속 (1905. 2. 22.)

 

8. 가쓰라·태프트 밀약 (1905. 7. 27) - 미국은 필리핀, 일본은 한국의 독점적 지배권을 상호 인정

   ☞ 「일본이 무력을 통해 “일본의 허락 없이는 조선이 어떠한 대외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는

        요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보호”를 획득하는 것은 대러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며 이는

        극동의 항구적인 평화유지에 공헌한다.」

 

9. 제2차 영일동맹 (1905. 8. 12)

 

10. 포츠머스 조약 (1905. 9. 5)

 1) 미국 중재, 러시아의 한국의 일본 지배권 인정

 2) 여순조차권, 장춘 이남의 철도 부설권 할양

 3) 남사할린 할양

 4) 러시아령 연안의 어업권을 일본에 양도

 

11. 을사 조약 (제2차 한일협약) - 1905. 11. 17 - 통감정치

 


Ⅱ. 의병 항전의 확대

 

 1. 을사조약, 민족의 저항

  (1) 을사 조약 (1905)

    1) 일본의 한일의정서 강요, 내정간섭 → 외교권 박탈 → 저항

    2) 황제, 수상이 서명 끝내 반대하자 외무대신 박제순의 직만을 가져가 날인

  (2) 민족의 저항

    1) 상소운동 - 안병찬, 조병세, 이상설, 이상철

    2) 항일 순국 - 민영환, 조병세, 송병선

    3) 5적 암살단 - 나철, 오기호 (을사5적 :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

    4) 항일 언론

       a. 황성신문 - 시일야방성대곡(장지연)

           “이토가 한국에 옴에 ~ 아프고, 아프도다. 동포여! 동포여!”

           “이 조약이 성립하지 않음은 상상컨대 이토가 스스로 알 수 있을 바이거늘, 오호라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 대신이라는 작자들이 영리에 어둡고 위협에 떨어서 이를 따르고 굽신거려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서슴지 않았으니, 4천년 강토와 5백년 종사를 남에게 바치고 2천만 국민을 남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저들 개돼지만도 못한 외부대신 박제순 및 각 대신은 족히 책망할 것도 없으려니와~” 
            
           [시일야방성대곡]

       b. 대한 매일 신보 - 고종이 친서로 무효를 선언, 서명하지 않음을 반포

   5) 외교

      a. 워싱턴 특사 - 헐버트

      b. 헤이그 특사 (1907) - 이상설, 이위종, 이준

        1. 국제여론 호소하여 국권회복 시도

        2.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함 (일본의 방해)

        3. 경과 : 고종퇴위 / 군대해산 / 정미 7조약

        ☞ “일본인들은 항상 평화를 말하지만 어찌 사람이 기관총구 앞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는가. 한국민이 모두

            죽어 없어지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국의 독립과 한국민의 자유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

            극동의 평화는 있을 수 없다. 한국 국민들은 독립과 자유라는 공동 목표에 대하여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하여 한국 국민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일본인의 잔인하고 비도덕적이며 이기적인

            침략에 대항하고 있다.” 
        
          [헤이그 특사]

  (3) 을사조약 후 민족운동 - 의병의 구국항전, 애국계몽운동

 

  ☞ “짐은 대덕국(독일)의 호의와 지원을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에게 파국이 닥쳐왔습니다. 이웃

      강대국 (일본)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외교권은 박탈당했고 독립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짐은 폐하에게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폐하의 우의를 기대합니다. ~ 광무 10년 1월 경운궁에서”

      <고종황제가 독일황제에게 보낸 외교 문서>

 

 2. 을사 의병 (1905, 1906 - 재봉기)

  (1) 계기 - 을사조약

  (2) 의병장

   1) 최익현 - 태인, 순창 (동족끼리 죽이지 못 하겠다 → 포로가 됨, 쓰시마로 끌려감)

   2) 신돌석 - 평해, 울진 (평민출신) : 영천 정요기, 이현규와 연계

   3) 민종식 - 홍주성 점령 “일본 토벌, 오적 몰살하여~”

  (3) 기타

   1) 홍범도, 차도선 (삼수, 갑산)  /  2) 이소응 (춘천)  /  3) 이강년 (인제)   /   4) 민긍호 (여주)

   5) 유인석 (제천)   / 6) 기우만 (장성)   /   7) 노응규 (진주)   /   8) 전해산 (나주)


  T) 애국 계몽 운동이 국정 개혁을 위한 헌정 연구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자강 운동으로 전화하게 된 시기는?

     ☞ 을사조약


 ☞ “오호라, 난신적자(亂臣賊子)의 변란이 어느 대에 없었으리오마는 누가 오늘날의 역적 같은 자가 있으며 ~ 오호라,

     작년 10월에 저들이 한 행위는 만고에 일찍이 없었던 일로서, 억압으로 한 조각의 종이에 조인하여 5백년 전해

     오던 종묘사직이 드디어 하룻밤 사이에 망하였으니, 천지신명도 놀라고 조종(祖宗)의 영혼도 슬퍼하였다.” <최익현>


 ☞  “오호라! 나라의 주권이 없어졌으니, 사람의 평등이 없어졌으니, 무릇 모든 교섭에 치욕이 망극할 따름이라. 진실로

      핏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찌 견디어 참으리오? 슬프다~ 종사가 장차 무너질 것이요. 온 겨레가 모두 남의

      종이 되리로다. 구차히 산다 한들 욕됨만이 더할 따름이라. 이 어찌 죽음보다 나으리오. 뜻을 매듭지은

      이 자리에서 다시 이를 말 없노라.”  <러일전쟁 전 런던 주재 한국공사관 ‘이한응’ 서리공사>

      * 이하응 -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자결 ➝ 대한제국 정부는 그를 장충단에 배향하게 하였다.


 3. 정미 의병 (1907 - 전쟁화)

  (1) 계기 - 군대해산, 고종 강제 퇴위 (1907. 7)

      cf) 대한자강회 - 고종 퇴위 반대운동

  (2) 해산 군대의 의병 합류 - 연해주까지 확산

  (3) 확대

   1) 외교 - 독립군임을 내세움

   2) 서울진공작전 (1908)

    a. 13도 창의군 - 총대장 : 이인영 / 군사장 : 허위 → 일본에 막힘

    b. 재차진공 - 임진강 허위부대 + 김수민, 이은찬 (경기도 양주에 1만여명 집결)

    <허위가 일제에 제시한 요구안 中>

    「* 태황제(고종)를 복위시켜라  * 외교권을 환귀시켜라.   * 통감부를 철거하라.  * 일본인의 서임을 시행치 말라.」


   3) 국내진공작전 - 홍범도, 이범윤


 4. 의사

   1) 장인환, 전명운 (1908) - 외교 고문인 스티븐슨 사살 (샌프란시스코)  (X - LA)

   2) 안중근 (1909) -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

    a. 천주교 신부에게 서구의 지식을 배웠다.

    b.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관서지부를 조직

    c.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워 구국 영재 양성에 힘썼다.

    ☞ “동양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

    ☞ “오늘날,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점차 밀려오는 환난을 동양 인종이 일치단결해서 온 힘을 다하여 방어해야 하는

        것이 제일 상책임은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바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일본은 이러한 순리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인 이웃나라를 약탈하고 우의를 끊어, 스스로 도요새가 조개를 쪼려다 부리를 물리는

        형세를 만들어 어부에게 둘 다 잡히기를 기다리는 듯하는가?”

   3) 이재명(1909) - 이완용 중상


  5. 전환

   1) 위축 = 일본의 남한 대토벌작전 (교반작전 : 방화, 살상, 약탈) - 전탐의병 전멸

      ☞ “내가 제천에 도착한 것은 이른 가을 더운 날이었다. 눈부신 햇빛이 언덕 위에 나부끼는 일장기를 쪼이고

          일본군 보초의 총검을 비추었다. 나는 말에서 내려와 잿더미 위를 걸었다. 나는 일찍이 이렇게 철저한

          파괴를 본 적이 없었다. 불과 1개월 전까지는 번잡하고 유복하던 촌락이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기와 조각과 회색의 잿더미가 줄지어 있었다.”   <맥켄지,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

          ➝ 의병 진압한 일본의 만행 (1907), 초토화 작전

   2) 무력 족립 전쟁으로 전환 - 국외 이주 (만주, 연해주 독립군)

   3) 마지막 의병장 - 채응언

  (6) 의장 - 민긍호, 이강년, 김수민, 연기우, 차도선 

 




Ⅲ. 항일 의병 전쟁의 의의

 

 1. 한계성

  (1) 무력적 열세  (2) 유생, 전통질서를 고집  (3) 외교권 상실 - 국제적 고립


 2. 의의

  (1) 대표적 민족 구국운동  (2)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  (3) 반 제국주의적 민족운동


을미의병

1895

1) 을미사변, 단발령 2) 문석봉, 유인석, 이소응

3) 유생주도, 농민, 동학이 참여 4) 단발령 철회, 국왕해산권고

을사의병

1905

1) 을사조약 2) 민종식, 최익현, 신돌석 3) 평민의장 등장

4) 외교권박탈, 통감부 설치

정미의병

1907

1) 고종퇴위, 군대해산 2) 민긍호, 이강년, 홍범도, 차도선, 이인영, 허위, 이범윤

3) 해산 군인 합류 4) 확산, 서울진공작전, 국내진공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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