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것은 - soy

남아 있는 것은

중국 소림사 탑림

무협지 같은 판타지 소설은 쓰여지는 배경 또한 작가의 허구의 세계이기에 어떠한 모습의 세상을 만들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송, 원, 명의 시대 배경과 중국대륙이라는 틀은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무협의 소재로 나오는 것 중에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구파일방과 마교, 혈교 정도 일 것이다.

어느 때 부터인가 오대세가라는 것이 나와 가문의 세력 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러한 세가들은 마치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성행하듯 유행하는 흐름일 뿐이다.

결국 변하지 않는 기본 적인 단체는 구파일방일 것이다.

구파일방은 소림, 무당, 화산, 아미, 청성, 점창, 공동, 종남, 곤륜 이렇게 9개의 파와 개방 이라는 1방을 말한다.

구파는 그 세력이 우세한 파가 끼어 들기도 하기에, 종종 형산이라든지, 해남 같은 곳이 공동, 종남 같은 곳 대신에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장소는 단지 허구적인 부분을 넘어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는 곳들이 있다.

특히 소림사와 무당산, 화산 등은 이미 중국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중국을 여행을 할때에 여러 가지 컨셉을 두고 일정을 만들어 갈 수 있는데, 이러한 무협적인 부분을 염두해두고 여행을 하는 여행객도 많이 있다.

내가  뤄양(洛阳)으로 향한 것 또한 롱먼스쿠(龍門石窟)라는 석굴을 보기위해서였지만,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숭산의 소림사를 들리기 위해서였다.

무턱대고 '소림사에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뤄양이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을 하고, 중국의 오악 중 하나인 숭산으로 들어갔다.

소림사는 무술의 본고장 답게 근처에 소림 무술학교를 짓고 무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작은 공연장에서는 소림사를 들린 여행객들에게 당랑권, 호권, 원숭이권법, 봉술과 외공 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소림사 안으로 들어가니 절이라는 느낌이 들기 보다는 단지 관광지라는 느낌만이 들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수많은 무협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소림사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생각 보다 아담한 절과 대웅전이 있고,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여행객이 가득있어 소란 스러웠다.

분명 주지스님도 계시고 소림의 명맥을 이어오는 스님들이 계실 것 같았는데, 스님 복장을 한 분들을 한분도 볼 수 없었다.

소림사 주변으로는 여행객들이 많아지고 있어서인지 누각들을 짓고 있는데, 공사하는 모습을 보니 무협의 세계를 빼앗겨 버린 것 같았다.

내가 꿈꾸던 무협의 공간은 그저 허구 소설의 한 장면 뿐인가 하는 허탈함이 느껴졌다.

차라리 소림사에 와 보지 않았더라면 상상 속의 소림사는 더욱 웅장하고 신비스러움이 넘치는 곳으로 남아있었을 텐데,

이제는 눈으로 직접 바라본 모습만이 소림사의 모습이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소림사 보다 더 산 쪽에 위치한 소림사의 탑림을 보고 모두 털어버릴 수 있었다.

탑림(塔林)은 말 그대로 탑의 숲이다. 

그저 시각적으로도 많은 탑이 모여 있어 멋지기도 하지만 스님들의 사리가 모여있는 사리탑(舍利塔)이라는 것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수많은 부처들이 잠들어 있을 탑들의 숲을 보니 전에 상상하던 소림의 모습이 다시 피어났다.

16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탑림을 보며 소림에 대한 인식이 다시 바뀌는 내 자신을 느끼며,

'단지 남아있는 건축물과 장소만이 소림사가 아니고 죽어서도 소림의 영광을 일깨워줄 소림의 스님들이 진정한 소림의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를 반복하고, 그렇게 떠나가는 사람들의 이름 또한 잊혀지게 마련이지만,

사람이 살고 사람이 만들어간 세상이기에 남겨 놓은 흔적보다 더 값진 것은 그 흔적을 남긴 사람의 영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