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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개화기] 8. 개화당 (온건개화파, 급진개화파)

by 소이나는 2014.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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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화당의 개혁운동Ⅰ. 개화당1. 형성(1) 정치 - 박규수, 유홍기 →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2) 온건 개화파1) 양무운동 [洋務運動] 에 영향 받음 (중세처용)2)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3) 동도 서기론 - 윤선학, 곽기락 “바꾸려는 것은 기이지 도가 아닙니다.”4) 청, 사대당, 수구당5) 민씨에 참여6) 기술만 수용“외국의 ‘교’는 즉 ‘사’로 멀리 ‘기’는 ‘이’로 이용후생의 바탕”“저들의 종교는 사악, 음탕한 소리, 여자 멀리 ~ 기술은 이롭다” – 김윤식(3) 급진 개화파1)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에 영향 받음 (문명개화론)2) 김옥균, 박영호,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3) 개화당, 독립당4) 갑신정변5) 사상, 제도까지 수용cf) 홍영식 – 보빙사, 우정총관, 병조참판“우리는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금 빈손으로 돌아가면 집권 사대당이 나를 비판하며 궁지에몰아넣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당(개화당)이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며, 우리 개혁안도 없어질 것이다.조선은 청에 영구히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당과 사대당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최후의 선택을할지도 모르겠다.” - 김윤식의 일기 「속음청사」“처음 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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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박규수 선생의 문하에서 배웠다. 자못 천하대세에 밝았고 일찍이 동지들과 나랏일을 염려하여한탄했다. 1881년, 나는 영선사로 톈진에 들어갔고 김옥균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건너갔다. 다 같이 나라를 위해 힘쓸 것을 기약했다. 이때로부터 청나라는 우리나라 일에 자주 간섭하고나는 청국 당으로 지목되었다. 김옥균 등은 청나라가 우리 자주권을 침해하는데 분노하여 마침내 일본 공사와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마침내 일본 당으로 지목되고 일이 허사로 돌아가자 세간에서는 그를 역적으로규탄했다. 나는 정부에 몸담고 있었기에 소리를 같이 하여 그를 죄인으로 몰아 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4) 충의계 (忠義契) (1870년대)1) 김옥균 중심 정치적 결사체 2) 유생, 궁인, 궁녀, 내시, 상인 등 여러 계층 포함3) 실학적 요소, 세계흐름, 자본주의 지식 습득하여 조선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믿었다.2. 개화 시책 추진(1) 개화당이 고종의 신임을 받음(2) 유학생 파견 (3) 박문국 [博文局] (1883) - 최초 신문 ‘한성순보’ [漢城旬報](4) 우정국 [郵政局] (1884) - 최초 우편(5) 치도국, 순경국 설치(6) 자금 부족, 일본 냉담, 청 견제로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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