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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Book ■

만행 하버드에서 회계사까지 - 현각스님 (만행 - 현각)

by 소이나는 201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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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하버드에서 회계사까지

萬  行

현각





만행, 하버드에서 회계사까지 - 현각 스님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시장에 가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수행이며 萬行이다.

순간 순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모든것 -

이것이 바로 萬行이다.


For someone who pracitces storongly.

even walkin, eating, drinking tea, meeting friends.

peeling a ripe persimmon, using the toilet,

walking through the busy market,

feeling the sudden autumn wind on one's face,

watching a passing car on the busy city street-

all of these moments are our parctice,

or 'man haeng.'



Coffee & Book


2001년 여름.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검찰청에 일이 있어 잠시 들렸다가 다른 사람들이 볼 일을 보는 동안 시간이 남아 검찰청 뒤 그늘이 있는 낮은 계단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려 들고갔던 '만행'을 읽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다른 볼일을 보는 사람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 잠시 꺼냈던 것이고,

스님이 쓴 책이라서 생각을 많이하게 만들 것 같다는 생각에 천천히 조금씩 읽으려 했었는데, 읽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한번에 책을 다 읽게 되었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일도 나에게 이 책을 읽을 시간을 주려했는지, 책을 다 읽고 오후 늦게가 되서야 끝나 오히려 늦은 일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 후로 어떤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가 되면 한번씩 이 책을 읽게 되었고, 이번이 5번째의 만남이 되었다.



책의 내용은 미국인 Paul이 자신의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어려서 자신의 가정과 학교, 종교적인 고민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대학에서 숭산스님과의 만남, 젠센터와 불교, 한국으로, 출가,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순서로 진행이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어쩜 지겨울 정도로 고민하는 生의 가치를 찾는 자신의 고뇌의 답을 찾아 그만의 眞理를 찾아간다.









나는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세상 고통의 본질에 대한 이 심오한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그 수많은 철학책,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가르침을 받았던 종교는 나에게 해답을 주지 못했으므로 나 혼자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나 자신을 찾는다는 것은 그 어느 인간으로서도 한번쯤 고민을 해봤을 명제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물음에 쉽게 버려진 물음.

나 자신보다는 주변인의 시선에 얽힌 삶 속에 점점 희미해져간 자신에 나란 사람을 잊고 삶이란 선택으로 잊혀진 물음.

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 누구도 놓지 못할 것이 자신을 찾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진리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이 생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더욱 풀리지 않는 의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왜 사람은 죽어야 하는가? 왜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영원히 사라져야 하는가?

의미 없는 태어남과 의미 없는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 역시 마찬가지로 의미가 없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참으로 우연하게 일이 이루어졌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줄곧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물건이란 것은 왜 있는지, 이 좁은 지구란 공간은 인간에게 주어진 어떠한 의미인가, 죽고나면 과연 존재하는것이 있을까...

산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가 되어 결국 제자리를 맴도는 형태가 없는 생각은 여러 물음 속에 결국 찾은 것은 없었고, 스스로의 타협으로 작은 뇌의 한 구석에 몰래 숨겨두었다.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이다.

- 마태복음 7장 7절, 8절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녀와 형제 자매, 심지어 자기 생명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 누가복음 14장26절~28절


어쩜 나는 패배자가 되어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탈되었지만, Paul은 그 물음을 놓지 않아 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참으로 우연하게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모든 것은 그가 갈구하던 진리에 대한 노력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곧고 바른 것을 길(道)이라 하고 두려움 없는 곳을 목적지라 한다. 고요하고 한가한 수레를 타고 진실의 가르침을 덮개로 삼고 부끄러움을 고삐로 삼으며 바른 생각을 재갈로 하여 지혜를 훌륭한 말몰이 삼고 바른 소견을 안내자로 삼는다. 이 세상 어느 사람이라도 이것을 타면 생사의 험한 숲속을 지나 편안하고 즐거운 열반에 도달하리라.

- 잡아함경 제22:587경:2-156상, 별역잡아함경 제9:171경:2-437상




'나는 누구인가.'

그동안 살아오면서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신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라는 존재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존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인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종교적인 학교를 다니며, 격은 내적 갈등 속에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하버드대의 종교학을 공부하며 이상을 찾는 심적 여정을 갖는다.






'그래, 진리란 책에 나와 있는 지식이 아니야. 한낱 말의 성찬도 아니야. 진리란 행동이야. 더이상 교과서에서 진리를 외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야.'


"우리는 선과 악을 신이 만들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선이란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힘이 있으면 선이고 없으면 악이다."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신이 중요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어던 특정한 건물이나 성경을 통해 신을 만나느 것이 아니라 신 앞에 인간, 신 앞에 완전히 벌거벗겨진 존재로서의 나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키르케고르는 예수님을 단지 존경하고 섬겨야 할 전지전능한 성인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의 삶으로부터 무엇을 배워 내 삶 안에 녹여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라는 거울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는 것이다. 아,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그러던 Paul은 우연히 한 강의를 접하게 된다.
멀리 동양에서 온 큰 스님 숭산과의 첫 만남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즉 이 '나'라는 것은 생각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디서 옵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태어날 때 당신은 어디서 왔으며 죽을 때는 어디로 갑니까?"


나는 강의가 이어지던 두 시간 반 동안 그 강사의 대답을 들으면서 완전히 충격에 휩싸여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라인가.......

그는 한국에서 온 숭산 큰스님이었다.


"생각할 때 생각할 뿐, 들을 때 들을 뿐, 볼 때 볼 뿐, 먹을 때 먹을 뿐, 그게 다입니다. 생각할 때 생각하세요.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면 생각하지 마세요. 먹을 때 오직 먹으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생각이 어디서 오는 것이냐, 누가 만드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직 '모르는 마음'을 갖고 똑바로 가십시오.



존재와 나 자신에 대한 물음 속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간결하면서 다시 생각을 묻는 숭산의 방식에 그는 끝없는 망망대해의 끝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았을 지도 모른다.







저의 머릿속에는 지금 결혼을 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삶이 무엇이냐, 죽음이 무엇이냐, 라는 의문이 가득해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승려의 길을 선택한 것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으며 그런 인연을 가진 것에 대해 아주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작된 선불교와의 만남으로 젠센터의 수행을 알게되고, 다시 큰 스님을 만나게 되고, 한국의 불교를 접하게 되고, 불교와 함께 세계 속으로 그리고 그 자신 속으로 자유로운 여행에 빠지게 된다. 

속세에 남겨둔 미련을 버리고 하얀 피부의 색목인은 Paul이란 이름을 대신하여 '현각'이란 법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떤 이는 '신을 비롯한 모든 것을 다 버려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버려야 할 신이 있다면 아직 신을 품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우리가 사물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한다면 진정한 내면의 진리는 잃어버린다. 내면의 진리란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종교란 속박에 잡히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면을 찾는 이기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인물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인간의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속으로 가는게 

인생이다.

태어났을 때,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죽을 때, 어디로 가는가?

삶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본래 구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삶과 죽음, 우리 인생의 오고 감

모두 이와 같다.

그러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맑은 게 있다.

그렇다면 맑고 깨끗한 것이 무엇인가?

                                   - 숭산 스님


저는 바로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 현각 스님


그리고 책의 제목인 '만행'을 떠난다.

사람 살이 걷고 걸어 배울 것은 무엇이고, 깨달을 것은 무엇이겠느냐 많은...

어떤이는 추억에서, 어떤이는 술 한잔에, 어떤이는 사랑 속에... 자기 자신만의 진리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참선하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걸으면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 어느 순간 내 마음이 '확'하고 열린 것이다. 아주 깨끗하고 맑은 길이 내 앞에 열린 기분이었다. 더이상 잡생각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을 생각 이전의 원점인 생타라고 하는가, ~ 한 시간 명상이 1초처럼 지나갔다.



한결 같은 자기 자신을 찾는 길 위에서 노력한 자에게 보여지는 이정표.








1+2=3과 1+2=0 중에 어느 것이 맞습니까.

억지로 인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수(數)라든지, 색(色)이라든지, 공(空)이라든지 하는 것은 모두 개념입니다. 그리고 개념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생각이 있기 전엔 너도, 나도, 색도, 공도 없습니다. 생각이 있기 전에는 모든 것이 진공(眞空) 속에 있는 그대로 있을 따름입니다. 색은 색이요, 공은 공입니다.



아직 나는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한 시인의 말 처럼... 아직도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걷고만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찾는 길가의 들꽃은 아름답고, 바람은 시원하구나...






마지막으로 현각 스님이 바라본 한국인을 바라보는 인상적인 말과, 다시 한번 떠올리고 싶은 문구로 마치고자 한다.



한국의 절들은 하나같이 고난과 파괴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중건되었다.'

'이 절은 몽고군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

'이 절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었다.'

이러한 문구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가지다

어떻게 다른 민족을 한번도 침략하지 않은 이 나라 백성들이 이렇게 외침에 의한 고난에 찬 역사를 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들은 어김없이 '다시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 바로 그것은 한국인들의 불굴의 정신, 끈기라는 위대한 정신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현각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 마태복음 17장 25~27절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 잠보장경 제3:4-436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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