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림의 정계 진출 - 성종 때 김종직 등이 진출
2. 훈구 세력과 대립 - 훈구세력의 대토지 소유를 제한하기 위해 한전법을 주장
3. 활동 - 과거로 진출 ➝전랑, 3사의 언관직 차지
4. 결과 - 사림과 훈구의 균형
(1) 성종 - 김종직 진출 - 이조 전랑, 3사 차지 - 훈구의 비리 비판, 여론 중시
(cf. 성종 대 정계 진출자의 대부분은 길재의 학풍을 받음)
(2) 연산군 - 사림의 억제 - 무오사화, 갑자사화 - 영남 사림 몰락
(3) 중종 - 사림 재등용 - 조광조의 개혁 (현량과 실시, 급진적 개혁) - 기묘사화로 축출
(4) 명종 - 사림 정계에서 축출 (을사사화) - 서원과 향약으로 세력 확대
[사림] * 정몽주 - 길재 - 김숙자 - 김종직 → 정여창, 김굉필, 김일손 → 이언적, 서경덕, 조광조, 김안국 → 영남 : 조식(북인 → 정인홍), 이황(남인 → 류성룡) 기호 : 이이(노론 → 송시열), 성혼(소론) |
* 이언적 - 원리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론의 선구자
5. 사화의 발생
(1) 사화(士禍) - 조선 중기 훈구 세력과 사림 세력의 대립
무오 |
연산군 1498 |
조의 제문, 사초 문제 |
갑자 |
연산군 1504 |
윤씨 폐비 사건 |
기묘 |
중 종 1519 |
조광조의 혁신 정치, 위훈 삭제 |
을사 |
명 종 1545 |
왕위 계승 문제 외척 간 대립, 수렴청정 |
(2) 무오사화 (연산군 1498)
1) 언론 3사에 진출 ➝ 성종 죽고 연산군 즉위 ➝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김일손이 사초에 실은 것이 구실
2) 유자광, 윤필상 등 훈구 세력이 김종직을 부관참시, 김일손 처형 → 사림 위축
3) 조의제문 - 초나라 항우에게 죽은 의제를 조상한다. - 단종을 조상하고 세조의 찬탈을 비난한 글
(3) 갑자사화 (연산군, 1504)
1) 윤씨 폐출 사건에 연루 - 임사홍 등 궁중파 주도
2) 한명회 등 일부 훈구 세력들과 김굉필, 정여창 등 다수 사림 세력이 피해 (영남사림 몰락)
➝ 중종 반정 (1506, 훈구파)
cf) 연산군
1) 민생 피폐 2) 신언폐 시행 - 말조심 위한 것 3) 신문고, 언문청 폐지 4) 중종반정
cf) 중종
1) 중종 반정 - 연산군 1506년 2) 반정 공신 비리 발생 3) 삼포왜란, 임신약조
4) 비변사 설치 5) 기묘사림(1515) → 기묘사화(1519)
(4) 기묘사화 (중종, 1519)
1) 급진적 개혁 추진
2) 원인 - 위훈 삭제 사건
3) 결과 - 훈구파(남곤, 심정) 공신들의 반발로 조광조 등(김정, 김식, 김구) 제거
* 조광조의 개혁 정치 (사림)
1. 이상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학 정치(성인 군주, 현철 군주) 강조 → 성리학 질서 2. 현량과 실시 - 사림등용, 어진 자 추천 (천거제 시행) → 경기 출신 젊은 사림을 대거 등용 3. 위훈 삭제 사건 - 훈구 비리 척결 (가짜 공 삭제) → 기묘사화의 원인 4. 불교·도교 과련 행사 폐지 - 승과, 소격서 폐지 5. 소학 교육 장려 - 유교적 가치관 (cf. 소학 - 사화 이후 일시적으로 금서처럼 여기기도 하였다.) 6. 경연 강화 - 언론 활성화로 왕도 정치 강조 → 자신들 의견을 공론이라 표방 (급진개혁 요구) 7. 방납의 폐단 시정 - 농민 부담의 해소를 위한 수미법 건의 8. 향약의 전국적 시행 노력 - 향촌 자치 실현 (유향소, 경재소 제도 혁파 제의) 9. 토지개혁 - 자영농 육성 10. 균전제 주장 11. 내수사 장리의 폐지 - 고리대 문제로 12. 낭관권 강화 - 언론만으로는 한계, 영향력 행사를 위해 형성 → 낭관이 사안 결정에 참여하는 권한 13. 자천제 시행 - 자기 후임을 천거하는 관행 (능력보다 인품 중시) 14. 소학, 주자가례 중시, 장례 15. 기묘사림
☞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듯이 하고 ~ 내 붉은 충정을 밝혀 비추리라.”
☞ “그가 비록 그 행실이 뛰어난 점이 있다 하더라도 아직 30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학문에 큰 뜻을 두고 있으므로, 지금 만약 그 뜻을 빼앗아 미미한 관직에 임명하게 되면 반드시 그의 뜻이 꺾이게 될 것입니다. ~ 그의 학문에 대한 명성이 크게 알려진 다음에 등용하여도 결코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 “지금 거론되는 천거로 뽑은 일은 놀랄 일은 아닙니다. 처음에 천거로 하면 덕행이 있는 자가 빠지지 않을 것이요, 또 책(策)으로써 시험하면 그 재행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이는 지극히 좋은 방법입니다.” <중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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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백운동 서원 건립 - 풍기 군수 주세붕이 최초로 건립
(5) 사량진 왜변
(6) 인종 - 윤임 정권, 사림등용(이언적)
(7) 명종
1) 서원 사액 - 소수서원
2) 을묘왜변 → 비변사 상설화
3) 사림 재개
4) 임꺽정의 난 - 황해도 구월산
5) 붕당에 대한 인식 전환 → 주자의 「답유정지서」가 실린 「주자대전」이 이해되며 전환
6) 방납폐단 극심
7) 불교가 일시적으로 부흥 - 문정왕후의 호불 (soy 한국사)
(7) 을사사화 (명종 1545)
1)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 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 ➝ 인종의 외척인 윤임과 명종의 외척인 윤원형의 반목
2) 윤원형 파에 이기, 임백령, 정순봉, 최보한 등 결탁
3) 윤원형(소윤파) 등 외척 척신들이 윤임(대윤파)을 몰아냄 - 사림도 꺾임 ➝ 그러나 서원, 향약을 통해 세력 확대
4) 결과 - 척신 정치 (윤원형)
* [조선] 11. 조선시대 - 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예송 논쟁, 선조, 광해군, 현종, 기해예송, 갑인예송, 건저의 사건, 정여립모반사건, 회퇴변척) -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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