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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38. 한글 창제, 조선 역사서, (조선왕조실록, 의궤, 사정기, 기자실기, 동국통감, 고려사, 고려사절요, 고려국사, 동국사략, 훈몽자회)

by 소이나는 2014.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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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훈민정음 해례본 - 최고 한문 목판본, 훈민정음에 대한 해설서2. 훈몽자회(1527) - 최세진 : 자음 명칭☞ 처음에 ‘ㄱ'을 '기역’이라 부르지 않았다.T) '기역’, ‘니은’은 「훈민정음」 용자례에서 비롯되었다? (X)➝ 최세진이 훈몽자회에서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아, 야, 어, 여 등 표기 시작☞ 현대 한글맞춤법에 제시된 한글 자모 ≠ 훈몽자회 순서3. ‘한글’명칭 - 주시경4. ‘한글날’ – 1928         [참고]1. 국조보감 - 왕들의 선정과 훌륭한 언행만을 모아서 간행, 열람이 편리하도록 만든 책2. 시정기 - 각 관청의 문서를 종합하여 등록을 모아 춘추관이 정기적으로 편찬한 책,3. 사초 (1) 국왕 대신의 국정논의 기록, 국왕 옆에서 기록, 예문관 8명의 전임 사관이 작성(2) 열람이 엄격히 제한 (누구도 볼 수 없다.)4. 조보 - 관료임면5. 등록 - 관청 업무 일지6. 역사 서술 경향 : 성리학적 대의명분(세종이전) ➝자주적 입장에서 고려사 재정리(세종 이후) ➝존화주의, 왕도주의적 (16세기) ➝ 역사의 정통성 강조 (18세기, 실학)7. 조성시대 의궤(1) 궁궐, 영건, 궁궐의 행차, 왕실의 혼사, 궁중의 잔치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 참가자, 비용 등 행사의 진행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주요 장면은 그림으로 그려 후세에 남긴 것(2)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 들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하였다.(3) 경복궁의궤 - 사도 세자와 그의 비 헌경 왕후의 사당인 경모궁에서 제사 지낼 때 의식을 기록(4) 산릉도감의궤 - 왕, 왕비의능을 조성하는 데 필요한 의식•절차•행사의 경위 기록(5) 가례도감의궤 - 국혼의 절차를 기록(6) 화성성역의궤1) 화성의 성곽을 축조한 공사에 관한 내용을 기록2) 약 80만 냥의 경비 지출, 공사 기간 2년 4개월cf) 화성 - 199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Ⅲ. 한글 창제1. 배경(1) 한자의 불편(2) 피지배층의 도덕적 교화 - 양반 중심 사회를 유지(3) 농민의 사회적 지위 상승2. 창제, 반포 - 정음청을 설치 훈민정음 반포 (1446, 세종)1) 초성자 - 발음기관 상형, 가획원리도 관련, 28자T) 훈민정음의 초성 글자들은 음성기관의 상형을 기본으로 삼아 만들어졌다? (O)2) 중성자 a. 삼재, 팔괘의 원리b. 해례본 설명에 따르면 천지인 삼재를 기본으로 만들었다.                            [훈민정음해례본]3) 종성자 - 초성 중 8개로 충분 ㄱ~ㅇ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스물여덟 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고전(古篆)을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 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뒤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한문과 우리나라 말을 다 적을 수 있으니, 글자는 비록 간단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다.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부른다.” – 세종실록“사방(四方) 각국의 풍토가 다르고 성음 역시 이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중국 이외의 외국 말은 성음만 있고 문자가 없으므로 중국의 문자를 빌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끼워 맞추는 것과 같아 서로 맞지 않으니, 어찌 잘 통하여 막힘이 없겠는가~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스물여덟자를  창제하신 다음 ~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 전에도 깨우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 동안이면 배울 수 있다.” – 훈민정음 해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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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3. 한글의 우수성4. 보급과 이용(1) 한글 서적의 번역• 출간 1)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 왕실 덕 찬양2)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 부처의 덕3) 불경, 농서, 윤리서, 병서                      (X- 상공업, 지리서)(2) 행정 실무에 이용 5. 의의(1) 일반 백성들도 문자 생활 가능(2) 민족 문화의 확고한 기반 마련1. 이두는 고구려에서 발생하여 신라에서 발달하였다? (O)2. 향찰로 된 글은 문장 전체를 고유어 발음으로 읽을 수 있다? (O)Ⅳ. 역사서의 편찬1. 사서의 편찬(1) 건국 초기의 사서1) 목적 - 왕조의 정통성에 대한 명분 - 성리학적 통치 규범을 정착, 대의명분2) 고려국사 (태조 1396) a. 정도전이 이제현의 「고려국사」를 계승b. 조선 건국의 정당성 강조, 재상의 역할 강조“시경(詩經)에 “은나라에 비추는 거울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하나라의 우 임금 세대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대개 그 귀와 눈으로 듣고 본 일이다. 정치를 하시는 여가에 보시면, 착한 것은 따라가고 악한 것은 버리는 것과 정사를 돌보며 백성을 다스리는 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있을까 한다.” – 고려국사3) 동국사략 (태종 1402) a. 권근이 성리학 사관을 바탕b. 편년체c. 단군 → 기자 → 위만 → 한사군 → 삼한 → 삼국 (2) 15세기 중엽 이후의 사서1) 성리학적 대의명분 보다는 민족적 자각을 깨우고, 왕실과 국가 위신을 높이려는 시도2) 고려사 (세종 ~ 문종, 1451) a. 김종서, 정인지b.  기전체 c. 자주적 “이 책의 범례는 사마천의 사기를 따랐고, 기본 방향은 직접 왕에게 물어 결정하였습니다. ‘본기’라고 하지 않고, ‘세가’라고 한 것은 대의명분의 중요성을 보인 것입니다. 신우, 신창을 세가에 넣지 않고열전으로 내려놓은 것은 왕도를 도적질한 사실을 엄히 밝히려 한 것입니다.1. ~ 기록하는 방법은 한서, 후한서 및 원서에 따라 역사적 사실과 말들을 적었다. 무릇 ‘종’이나‘폐하’나 ‘태자’이기는 하나 여기에는 그때 부르던 그대로 써서 사실을 보존한다.”3) 고려사절요 (문종 1452) a. 김종서 등이 군주에게 교훈 주려는 내용 b. 편년체c. ‘신하의 역할, 관료제도의 정비’를 역사발전의 핵심으로 설정4) 동국통감 (성종 1485) a. 서거정 등이 편찬 b. 편년체 – 통사c. 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인식 (자주적 입장)d. 훈구 관료들이 골격을 세우고 사람이 사론을 씀으로 양자의 입장이 절충5) 동국세년가 - 단군 ~고려말6) 삼국사절요 (1476) - 고조선, 삼국(3) 16~17세기1) 존화주의적•왕도주의적 정치2) 기자를 더 높이 숭상, 단군 부정a. 기자실기 (선조, 이이 1581)   “우리 동방에도 백성이 살아온 지 중국에 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아직 예지(叡智)를 지닌 성신이 나오시어     군사(君師)의 구실을 다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물론 단군께서 제일 먼저 나시기는 하였으나 문헌으로     상고할 수 없다. 삼가 생각하건대 기자께서 우리 조선에 들어오시어 그 백성을 후하게 양육하고 힘써 가르쳐    주시어 머리를 틀어 얹는 오랑캐의 풍습을 변화시켜 문화가 융성하였던 제나라와 노나라 같은 나라로 만들어     주셨다.” – 기자실기b. 동국사략 (박상, 선조 무렵) - 동국통감 비판c. 동사찬요 (선조, 오운 1614) - 임진왜란, 애국 명장의 활약3) 영향 – 애국심고려국사 정도전 여말~태조 고려 시대의 역사 정리동국사략 권근, 하륜 태종 삼국 중심의 역사를 성리학적 사관으로 편찬한 통사고려사 김종서, 정인지 세종~문종 조선 왕조의 입장 (기전체)고려사절요 김종서 문종 고려사의 편찬과 병행동국통감 서거정 성종 고려사절요, 삼국사절요 토대로 한 편년체 통사삼국사절요 고조선~ 삼국의 자주적 입장, 재정리한 편년체 사서2. 조선왕조실록(1) 연대순 편년체, 조선 시대 연구의 기본 자료, 왕이 죽은 후에 기록(2) 편찬 자료 - 승정원일기, 의정부등록, 비변사등록, 일성록 ← 사초, 시정기를 중심 (개인 기록도 이용)(3) 편찬 기관 - 춘추관 내에 실록청을 두고 간행(4) 편찬 대상 - 태조부터 철종까지, 태종 때 ‘태조실록’을 처음으로 편찬 - 광해군, 연산군은 일기로 표시(5) 편집 과정 - 3차례 편찬을 거쳐 완성 = 초초 ➝ 중초 ➝ 정초 ☞ 사고에 보관(6) 사실의 서술과 함께 사관의 비판도 수록(7) 선조, 현종, 경종은 실록이 두 종류 - 이는 당쟁 때문이었다.(8) 세도정치 시기에는 분량이 축소되어 다양성을 잃게 되고 내용도 빈약해짐(9)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 (훈민정음도 지정)(10) 실록의 보관1) 춘추관과 더불어 지방의 사고에 분산하여 보관 2) 4대 사고에 보관 ➝ 왜란에 소실되어 전주 사고본을 토대로 광해군 때 5대 사고가 정비 [오대산 사고]세종 선조~광해군 이괄의 난 이후 현 재춘추관 사고 이괄의 난 때 소실충주 사고 오대산 사고 도쿄 대학으로 이전성주 사고 태백산 사고 부산 국가 기록 보관소전주 사고(임진왜란 때 보존) 마니산 사고 정족산 사고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묘향산 사고 적상산 사고 김일성대cf) 오대산 사고 - 동경 대지진에 소실되고 일부는 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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