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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Book ■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여행산문집, 도서출판 달)

by 소이나는 2016.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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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여행산문집

도서출판 달

 


 

 

 

 

 

 

/ 행복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며 그 욕구 또한 강렬해지는 것. 그 또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점이다.  그리고 왜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정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 산은 단풍으로 고왔다. 산에 오르면서 내려오면서 산마을에 억실억실 매달린 사과들을 보면서 어르신을 만난 것이 어느 해 이 무렵이었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서걱거렸다.

 

 

 

 


/ 아침공기는 팽팽했다.  간밤에 비가 조금 내린듯  거리는 얼룩져 있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 출발 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빠른 걸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두어 달에 한번쯤 강연을 핑계삼아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는길.   창가자리에 앉아 내다보는 계절의 민낯들은 책상에 앉아 차례차례 이어갈 조긱들이 되기에 충분해서 좋았다.  기차를 타면 오랜만에 시인이 된 것도 같았다.

 

 

 

 

 

 

/ 동백이 피었는데요

  봄이 가네요

 


  내 마음이 피었는데

  조금만 머물다 봄이 가려고 하네요

 


  나에게도 글씨가 찾아와서

  이제는 쓸 수 있게 됐는데

 


  봄이 왔는데요

  당신이 가네요

 

 

 

 


/ 내 정수리에 초승달이 비추고 있었다. 달은 양끝에다 칼날을 매달고 있었다.

 

 

 

 


/ 내 마음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랄때가 많다.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라 나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이아니라 일개 나무라든가 구름같은 것이어서 제발 조각처럼 떨어져 나부꼈으면 하는 것이다.   깝죽대지 않으며 넘실거리지도 않게 한번 나간 마음이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너무 싸돌아다녔다.

집에 있으면 안 되는줄 알고 종일 이리로 저리로 쏘다니다 덜컥 병들어버렸다.  그게 잘 안 되었다.   마음을 쓰고 사는 일만이 최선인 줄 알았다.  내 마음이 닿는 곳이면 이러나저러나 편안할 줄 알았다.   이 우주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대상을, 어떤 순간을 껴안는다는 것이 실은 고작 마음이나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술 한잔 마시는 일은 결국 나에게 술 한잔 사주는 일이 아닌가 한다. 결국 내 마음에다 술 한잔 부어주는 일이 아닌가 한다.

 


/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계십니까?

 


봄에 내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은 당연 모란이다.  …   무엇을 기다렸던가. 봄인데, 봄이라는데 무얼 망설이는가. 미친 듯  홀린 듯 번져야 하지 않겠는가. 봄에는.

여름은 여름 특유의 여름 맛으로 끌고 가는 힘이 있다. 나는 그 맛을 베어먹는 재미로 여름을 난다. 무성히 익어가는게 있고 열렬히 짙어가는 것이 있다.

…  일 년에 네 번 바뀌는 계절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  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  …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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