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글은 교원이 1인칭으로 회상하듯 일기를 쓰듯 자신의 건우에 대한 학생과 조마이섬에 대한 사연을 표현하고 있다.
일류중학교인 K학교에서 교직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나온다.
비가 많이 오던 날 건우라는 학생은 지각을 하였고 사유는 '나룻배 통학생'이라는 것이었다.
명지면이라는 섬에서 낙동강 하류를 건너 부산으로 통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가정 방문으로 건우의 집에 들렀다.
건우는 홀어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건우의 아버지는 6.25에 죽었고, 삼촌은 사모아로 삼치잡이를 갔다가 죽었다.
건우가 살고 있는 조마이섬은 원래 섬사람들의 조상들이 물과 싸우며 일궈 놓은 땅인데,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동척 명의의 땅으로 되어있었으며, 그 후 어느 국회의원,
그 후 어느 유력자의 땅으로 소유자가 변해갔다.
이 내용은 건우가 쓴 작문을 보고 알게 된 것이었다.
"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이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고 봐. 언젠가는 너희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거야. 우선은 어떠한 괴로움이 있더라도,
억울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꾹 참고 살아가야 해."
선생님은 섬의 사연을 알고 마음이 격해져 있었다.
"없는 놈이 할 수 있나. 그저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기지 머."
~
나는 이미 따그르르 따끄르르하는 그 소리가, 바로 나룻가 갈밭에서
요란스럽게 들려오는 진자 갈밭새들의 약간 처량스런 울음소리와 비슷한데 연유되지나 않았을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술마시며 오 아무개의 고시조도 불른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니러보니
작은 아이 글 이르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 한다.
마조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 하더라.]
건우네 집에서 돌아가려던 선생님은 길에서 우연히 윤춘삼과 건우 할아버지를 만난다.
윤춘삼은 선생이 육군 특무대에서 만났던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사람이다.
송아지 빨갱이는 청년단인가 하는 패들이 송아지를 그들이 잡아먹은 게 분해서,
송아지를 물어내라고 화풀이한 것이 동기가 되어
잡혀갔고 또 조마이섬에 문둥이떼가 왔을 때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싸운 일도 있었다.
세사람은 목로집에서 술을 마셨다.
건우 할아버지 갈밭새 노인은 조마이섬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였다.
건우의 작문을 읽어서 알고 있던 조마이섬의 소유권 이야기이다.
"그까짓 국회의원이 다 먼교? 돈만 있는 x라도 다 되는 기고,
되문 나랏땅이나 훑이고 팔아 묵고 그런 놈들이 안 많던기요?
왜, 내 말이 어데 틀릿입니꺼?"
갈밭새 영감은 말이 차차 엇나가기 시작했다.
선생이 조마이섬에 다녀간 후 몇달 뒤 폭우가 내렸다.
조마이섬이 걱정된 선생은 다릿목으로 가보았지만 통금이 되어있었고,
뜻밖에서 윤춘삼과 마주쳤다.
그에게 건우네 안부를 물었다.
"남은 건 물바다뿐임더. 우짤라꼬 이놈의 하늘까지...."
춘삼은 건우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준다.
건우 할아버지는 폭우가 내리자 둑을 허물어 버리려 하자 유권자의 앞잡이가 방해를 하였고,
"섬사람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오?"
~
"이 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그때 섬을 통째로 삼키려던 유권자의 앞잡이를 물속에 태질 했는데
탁류에 휘말려 죽고 말았고, 건우 할아버지는 감옥에 가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말 우리 조마이섬을 지키다시피 해온 영감인데... 살인죄라니 우짜문좋겠능기요?"
법과 유력자의 배짱과 선량한 다수의 목숨... 나는 이방인 처럼 윤춘삼씨의 캉캉한 얼굴을 건너다 보았다.
폭풍우는 잠잠해지고 9월 새학기가 되어도 건우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의 일기장에는 어떠한 글이 적힐는지.
'모래톱이야기'는 1966년 '문학'지에 발표되었고
조마이섬 사람들이 겪은 자연환경의 피해 뿐만 아니라 정권을 이용해서 섬을 빼앗고자 하는 등의
피해를 토애 민중의 삶을 직시하고자 한 사실적인 묘사를 볼 수 있다.
양반, 정치가, 유력자 이런 자신이 특출난 것처럼 생각하는 몇 명의 소수때문에
단지 태어난 것이 가난하고 소박한 여러 사람들은 이래저래 힘들뿐이다.
모든 인간 사가 그런 것 같다. 돈이 많고 권력이 많은 사람은 세상에서 적은 수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으로서의 짧은 생을 이익과 교만으로 욕심을 채우겠다고,
소박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뉴스에서 나오는 '서민'이란 말은 더욱 층을 나누는 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지구의 대부분의 사람이 서민 임에도 말이다.
그저 태어나고 그저 죽어가는 것이 다인데..
인간의 야욕은 정말 큰 악덕인 것 같다.
소설에서 처럼 사람들은 이기적인 유력자의 소유욕 덕분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비록 어려운 삶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부산 사하구에 을숙도라는 조마이섬의 이야기를 글로 하였기에
사투리를 많이써 토속적인 분위기를 한층 살렸다.
사투리 덕분인지, 글을 읽을 때면 어느덧 조마이섬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괜시리 조마이섬의 유력자가 미워지고, 정부가 미워지는 느낌이 생겨난다.
소설이 주는 파급효과인가 보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는 나처럼
소설에서의 '나(선생님)'라는 사람은 단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만을 해버리고, 정작 스스로 한 것은 없다.
할아버지와 건우, 윤춘삼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소연 하듯 글을 썼지만,
단지 '나'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다.
물론 마음은 무언가를 하고 싶었겠지만,
진짜로 그 섬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기에 말로만 뭐라 거들 수 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인생속에 스쳐지나간 잠깐의 기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다.
과연 우리가 소설의 '나' 였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단지 이렇게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도와주고 싶지만, 그건 결국 남의 일이니까...
하는 생각이 드는 씁쓸한 마음에 책장을 덮기 주저되는 글이 아닌가 한다.
1943년 절필한 이래 20여 년 가까이 침묵을 지키다가 문단에 복귀하여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낙동강 하류의 명지면에 살았던 건우라는 소년과 그의 할아버지 갈밭새 영감, 그리고 소년의 젊은 홀어머니를 중심으로 이 작품은 전개된다. 화수는 중학교 교사로서 '나룻배 통학생' 건우의 생활에 관심을 갖게 된다. 화수는 소년이 살고 있는 섬이 실제 주민과는 무관하게 소유자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쓴 건우의 글을 읽는다. 화수는 어느 날 섬을 방문하게 된다. 건우의 아버지는 일제 때는 징용에 끌려 갔고, 6·25전쟁 때 전사했다.
이 '조마이섬'은 일제시대에는 동척의 소유였고, 광복 후에는 나환자 수용소로 변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윤춘삼 영감은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였다. 그후 어떤 국회의원이 간척사업을 한답시고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렸다. 논밭은 섬사람들과 무관하게 소유자가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홍수가 범람하게 되자 섬사람들은 홍수를 피하기 위해 눈가림으로 만들어 놓은 둑을 헐어버리려 한다. 이것을 제지하는 '유력자의 앞잡이'가 나타나자 건우의 할아버지는 이 깡패를 물 속에 던져버린다. 섬사람을 홍수에서 구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하지만 건우의 할아버지는 '법과 유력자' 때문에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붙들려 간다.
이 작품은 김정한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낙동강 모래가 쌓여서 이루어진 이 섬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는 총독부 권력에 의해 수탈당한 비극적 역사를 지니고 있다. 농민층에 대한 수탈은 일제시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광복 후에도 지속된다. 주민들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이리저리 빼앗기고만 살아온 것이다.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가며 살아온 우리는 대관절 우찌 되능기요?"라는 농민들의 피맺힌 절규는 '조마이섬'의 현실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마이섬'을 둘러싸고 있는 이같은 현실적 모순은 홍수를 계기로 하여 폭발된다. 섬 주민들은 홍수가 나자 둑을 파괴하려 하고, 건우 할아버지는 이러한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이 작품은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는 건우 할아버지의 투옥으로 귀결되는 비극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구봐. 언젠가는 이 땅의 주인인 너희들의 것이 될거야"라는 말은 비록 작가의 역사발전에 대한 신뢰와 미래의 전망에 의한 것이지만, 농촌 현실의 모순의 철저한 규명 위에서 나온 것이기에 예술적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조마이섬 - 지금의 을숙도>
위치 : 부산 사하구
01
요산(樂山) 김정한 (1909)
1936년 [사하촌]으로 신춘문예 당선
흐름이 매우 강렬하며 현실을 생생학 그리는데 주력하고,
토속, 전통을 추구, 불의에 항거하는 농민을 주로 그렸다.
작품 : 수라도, 사하촌, 축생도
호 요산(樂山), 경남 동래 출생이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1928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대원보통학교에 재직하던 중 조선인교원동맹을 조직하려다 검거되었다. 1929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해 수학했으며, 1931년 조선유학생 학우회에서 펴낸 《학지광》의 편집을 맡았다. 1936년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촌의 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함을 그린 《사하촌》이 《조선일보》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후 《항진기》 《기로》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민중을 선동하는 요주의 작가’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고문과 1987년 그 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초대 의장을 맡았다. 한국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으로는 《낙일홍》 《인간단지》 《수라도·인간단지》 《삼별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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