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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조선] 29. 조선 사회, 경제 (양천제도, 반상제도, 중인, 조선 천민, 조선 상민, 호적, 호패)

by 소이나는 201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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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 19c말 1,000만2) 서울 : 세종대 10만 이상 → 양란 후 줄어듬 → 18c 20만 정도4. 조선시대 특정 지역 특정 성씨의 혼인 관계에 필요한 자료를 고르는 문제O - 보첩, 호구단자, 호적대장X - 향규, 규지, 산송 문서2. 중인(1) 넓은 의미로는 중간 신분 계층이지만 좁게 보면 기술관만 의미 – 역관, 서리, 향리 등(2) 서리와 향리, 기술관은 직역 세습(3) 서얼(중서, 中庶) - 서얼 금고법 (庶孼禁錮法 , 양반의 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법)에 따라문과 (생원∙진사시)에 응시하는 것 금지 (무과, 잡과에는 응시 가능)(4) 멸시 하대(5) 전문 기술이나 행정 실무를 담당함 - 역관, 향리 “수령으로는 많은 백성을 통솔하여 다스릴 수가 없으므로 아전을 두어 배치~ 엎드려 바라옵건대 다른 벼슬처럼 똑같이 월급을 지급하도록 분명한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 연조귀감   “채수가 아뢰었다. “어제 전하께서 역자(譯者)와 의자(醫者) 중 능통하고 재주 있는 자를 동∙서 양반에 발탁하여    쓰라고 특별히 명하셨다는 말에 크게 놀랐습니다. ~ 모두 미천한 계급 출신으로 사족이 아닙니다. ~ 어찌 역자와    의자로 하여금 그 사이에 섞여 있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성종실록 (중인 차별)3. 상민(1) 농민, 수공업자(관영, 민영, 장인세 부과), 상인 (시전상, 보부상)(2) 조세, 공납, 역의 의무를 수행(3) 신량역천(身良役賤, 七般賤役) - 양인 중 천역을 담당하는 계층 : 조례, 나장, 일수 등에 종사 (4) 유외잡직 (流外雜職) : 관청 소송 하급 기술직(5) 상민에게는 법제적으로 정치적 출세의 기회가 허용되었다.4. 천민(1) 비자유민, 재산취급(매매, 상속, 증여), 국역에서 제외, 성을 가진 이도 있다.(2) 주인에게 사역되거나 신공을 바쳐야 했다.(3) 노비 신분 세습 - 일천즉천 (一賤則賤) (조선 전기까지)(4) 공노비 (납공노비, 선상(입역)노비) - 관청에 → 유외잡직(하급기술직)으로 진출 가증(5) 사노비 - 외거노비(독립), 솔거 노비 (주인집에 함께, 생계보장) (6) 백정, 무당, 창기, 광대(7) 평민이나 노비도 노비를 소유할 수 있었다.(8) 기타1) 1801 - 내시노비 혁파2) 1894 - 공사노비 혁파“무릇 노비의 매매는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 몰래 ~ 몰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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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근세 사회, 경제<1> 양반 관료 중심의 사회Ⅰ. 양천 제도와 반상제도1. 양천 제도 (良賤制) (15세기)(1) 양인과 천민으로 구분하는 제도를 법제화 ➝ 갑오개혁 이전까지 지탱(2) 양인 - 과거 응시, 조세, 국역(3) 천민 - 비자유민 - 천역 담당2. 반상 제도 (16세기)(1) 실제 양반 특권 강화(2) 양반과 상민 간의 차별(3) 실제 : 4신분제 정착 - 양반, 중인, 상민, 천민3. 신분 이동 가능 : 개방적 사회 - 법령상 양인이면 과거 응시 가능 (한계가 있다.)cf) 친영제도 - 17세기 이후 여자가 남자 집에서 혼례를 치루고 곧바로 남자 집에서 생활cf) 남존여비, 이성불양, 장자 상속, 여성 재가 금지T) 권세가의 비리와 불법이 커져 유망이 심해지자 본관제가 무너져 갔다.Ⅱ. 신분 구조1. 양반(1) 의미 변화1) 초기 (15세기) - 문반, 무반                                       (항구적 세습 x)2) 중기 (16세기) - 가족이나 가문까지 양반이라 부름 (신분 세습)(2) 특권 유지책1) 사족(士族)의 범위 축소 - 양반 사대부들은 자신의 기득권유지2) 중인층의 배제 3) 서얼층 배제(3) 양반의 지위와 분화1) 과거, 음서 천거로 독점2) 지주층3) 유학자, 국역 면제4) 분화 - 양반, 중인, 상민(4) 생활1) 성밖 촌락에 주로 거주2) 대부분 현직, 예비 관료로 생활3) 각종 국역을 면제 받을 수 있었다.4) 경제적 지주층, 정치적 관료층(5) 일반적 양반의 주택구조1) 하인들의 거처는 대문 근처2)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3) 성리학적 기본 윤리인 내외법을 주택에서도 찾을 수 있다.4) 때때로 안채와 사랑채를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여자들이 남자에게 시중들기 편하도록 한 것이다.cf) 노비의 수를 늘리기 위해 자신의 노비를 양인 남녀와 혼인시키는 경우도 있었다.“하늘이 백성을 낳았는데, 그 백성이 넷이다. 그 중에 으뜸은 사(士)이다. 양반이라고 일컬으며 이익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밭을 갈지 않고 장사를 하지 않으며, 글과 역사를 조금만 공부하면 크게는 문과에 합격하고 적어도 진사가 된다. 문과 합격 증서인 홍패는 ~ 돈 자루라고 할 수 있다. ~ 시골에 사는 가난한 선비도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양반전1. 호패법은 인신 구속적 성격이 강하였다.2. 일종의 신분 증명서3. 신분에 따라 호패의 재료를 달리 하였다.4. 양반과 노비도 착용5. 인력의 징발이 주목적6. 오가작통법 시행과 보완 관계7. 16세 이상 丁男에게 - 여자에게는 발급되지 않았다.1. 호주의 부친, 조부, 증조부, 외조부를 기재하였다.2. 16세 이상 60세 이하 남성, 여성을 기재                        (X-남자만)3. 소유한 토지의 면적과 가옥 규모를 기재 (호구대장)4. 태종대에 호적의 기능을 보완하기 위하여 인보제를 새로이 만듦   (X- 세종대)5. 지방의 경우 호적은 3부를 작성하여 해당 주군, 감영, 호조에 각각 보관6. 주인과 같이 사는 노비들은 그 주인의 호적에 기재되었다.7. 호주의 신고를 바탕으로 작성하였다.1. 호구단자에 적은 사조 - 부, 조부, 외조부, 증조부2. 호구 조사 - 주로 군역 부과, 조세 부과 등 역역자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실시, 각 군현의 실제 호구를 충실하게 파악하였다.3. 인구 관련 내용1) 왜란 이후 500만 → 17c 600만 → 1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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