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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고려 후기의 상황 (원의 내정간섭, 홍건적의 침입, 공민왕)

by 소이나는 200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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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정치 변동


Ⅰ. 의 내정 간섭

 

 1. 일본 원정 : 정동행성 (원정 준비기관) ➝ 태풍으로 실패

  

 2. 영토의 상실

  (1) 쌍성총관부 설치 (1258~1356) : 원 고종 말년 화주(양흥)에 설치 : 철북 이북의 땅을 직속령으로 편입

  (2) 동녕부 설치 (1270~1290) : 자비령 이북의 땅 차지, 서경에 동녕부 설치

  (3) 탐라총관부 설치 (1273~1301) : 목마장 경영


 3. 영토의 수복

  1) 충렬왕 : 동녕부, 탐라총관부

  2) 공민왕 : 쌍성총관부


 4. 관제의 개편

  (1) 부마국 : 원의 공주와 결혼,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다.

      cf. 원의 공주가 데려온 시중 ‘겁령구’의 횡포가 심함

  (2) 관제의 격하

   1) 2성인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

   2) 6부를 4사로 통합 → 전리사(이부·예부), 판도사(호부), 군부사(병부), 전법사(형부) / 공부는 폐지

   3) 도병마사 ➝ 도평의사사(독자적, 최고 상설기구)

   4) 중추원 ➝ 말직사

  (3) 호칭 격하

     짐 ➝ 고 / 폐하 ➝ 전하 / 태자 ➝ 세자 / ~조·종 ➝ ~왕 / 선지 ➝ 왕지 / 상서 ➝ 판서 /

     시랑 ➝ 총랑 / 사 ➝ 유 / 주 ➝ 정/


 5. 원의 내정 간섭과 수탈

  (1) 원의 내정 간섭 제도

   1) 심양왕 제도 : 남만주 심양 일대에 포로, 유민 고려민 통치하기 위해 설치

   2) 독로화 제도 : 고려의 세자가 북경에 인질 후 돌아와 왕이 되었다.

  (2) 원의 내정 간섭 기구

   1) 정동행성 : 일 원정 준비 기구 ➝ 연락소, 고려 내정 감독의 성격

      cf) 몽고인으로 임명되어야 할 평장정사, 우좌승, 참지정사는 비워두는게 보통이었다.

   2) 순마소 : 반원 인사 색출, 개경 치안 담당 = 감찰기관

   3) 만호부 : 5개의 만호부, 천호부 등 십진법에 따른 군사 편제가 영향력을 행사 (국방, 치안)

   4) 다루가치 : 감찰관 파견, 내정간섭, 공물 징수 감독

  (3)몽골의 수탈

   1) 결혼도감 : 처녀들 뽑아감 (원종 1272) - 과부처녀추고별감이라 함 (cf. 조혼이 유행)

   2) 응방 : 매 징벌 ➝ 해동청 사육

   3) 자주성의 손상, 통치 질서의 와해

  (4) 지방제도

   1) 5도 - 안렴사 파견 → cf. 려말 도관찰 출척사로 변경,  상설관청 - 경락사 설치

   2) 양계 - 병마사 → 도절제사 →도관찰출척사 (‘도’의 성격으로 변화)

 

6. 원 간섭기의 사회 변화

  (1) 친원 세력의 대두

  (2) 풍속의 교류

   1) 몽골풍 : 변발, 복장 등

   2) 고려양 : 음악, 예절, 무용, 병, 고려아청, 고려만두 등이 원에 전해짐

  (3) 만권당 (충선왕) : 원나라에 학문연구소를 설치 (조맹부, 이제현) ➝ 문화, 학문의 교류

   cf) 조맹부 - 송설체로 유명

  (4) 권문세족의 성장


Ⅱ. 원 간섭기 개혁정치

 

 1. 원 간섭기 고려의 상황 : 권문세족의 대두(부원세력), 사회 모순의 심화

  

 2. 원 간섭기 개혁 정치


 (1) 충선왕, 충목왕 때부터 시도

     - 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을 상대로 개혁을 추진할 만한 세력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실패


 (2) 충렬왕의 개혁 정치

   1) 전민변정(正)도감 : 권문세족의 농장을 혁파

   2) 홍자번편민 18사 건의 : 국가 재정난, 민생 문제 해결  (無 - 토지개혁안)

   3) 세자의 대리정치

   4) 필자적(비칙치)의 설치

   5) ‘무비살해사건’으로 퇴위


  (3) 충선왕의 개혁정치

   1) 사림원 (예문관)설치 : 정방 폐지시도, 왕명 출납 담당, 고문기능

   2) 정방폐지 → 한림원으로 이관

   3) ‘조비무고사건’으로 폐위 → 충렬왕 재즉위후 1308년에 충선왕 재위

   4) 전지시행

   5) 만권당 설치

   6) 재정 개혁 :   의염창 (소금 전매제)  / 전농사 설치 (농장, 노비 조사)


  (4) 충숙왕

   1) 제폐사목소 설치 - 시폐 개혁 위한 교서 반포 → 찰리변위도감으로 명칭 변경 했으나 실패

   2) 입성책동 - 고려를 원의 한 성으로 하려는 것 → 충렬왕 시기의 ‘세조구제’를 내세워 저지

      * 세조구제 - 양국관계 변경말자 (원 세조)


  (5) 충혜왕 (1344) - 편민조례추변도감 설치


  (6) 충목왕의 개혁정치

   1) 정치도감 : 토지 노비를 본인에게 돌려줌

   2) 권문세족의 견제


  (7) 실패 : 원의 간섭


 3. 공민왕의 개혁 정치


  (1) 14세기 중반 : 원 명 교체기


  (2) 반원 정칙

   1) 친원파 숙청 - 기철, 노책, 권겸 주살

   2) 정동행성이문소 폐지

   3) 관제 복구 (문종 때로)

   4) 몽골풍 폐지

   5) 쌍성총관부 회복 - 철령 이북

   6) 요동 수복 정책 : 지용수, 이성계(요양 점령)

   7) 기자사 수축 - 자주의식


  (3) 왕권 강화책

   1) 권문세족을 견제

   2) 정방 폐지 :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활성화 → 왕의 인사권 실시 (인사권을 전리사와 군분사로 이전)

   3) 교육·과거제도 정비 : 성균관

   4) 전민변정(整)도감 설치 : 승려 신돈을 등용 ➝ 노비해방, 토지 돌려줌 ➝ 국가 재정 수입 기반 확대

   5) 성균관 강화 - 신진사대부 등용


 4. 군제 개편

  (1) 중앙

   1) ‘충용위’설치

   2) 8위제 복설

   3) 방리군, 한산군(전함관, 참설관 주축) - 신설

  (2) 지방군

   1) 진수군 - 5도 중심  / 지휘관 - 도순문사

   2) 만호부, 익군 - 양계

  (3) 특수군

   1) 연호군 - 왜구

   2) 수군


 5. 공민왕의 개혁 실패

   1) 원의 간섭

   2) 권문세족의 반발 : 신동 제거, 공민왕 시해

   3) 신진 사대부 세력의 미약 → 근본적 실폐이유 (주체 세력 미약)

   4) 홍건적, 왜구의 침입

  

Ⅲ.  홍건적왜구의 침입

 

 1. 홍건적 격퇴

  (1) 홍건적 : 원 말기 백련교도 중심 한족의 농민 반란군 → 왕이 복주(안동)까지 피난

  (2) 제1차 침입 (공민왕 8년, 1359) : 모거경 침입 ➝ 이승경, 이방실이 격퇴

  (2) 제2차 침입 (공민왕 10년, 1361) : 개경 함락 ➝ 정세운, 안우, 이방실, 이성계 격퇴


 2. 왜구의 침략

  (1) 14세기 중반부터 본격적, 쓰시마, 규수 지역

  (2) 무력 토벌 해결과정에서 신흥 무인 세력이 성장

  (3) 왜구의 격퇴

   1) 최영(우왕 2년) : 부여의 홍산

   2) 최무선 (우왕 6년) : 진포에서 화포 이용 (최초 화포사용) - 나세, 최무선, 심덕부 등

   3) 이성계 (우왕 6년) : 남원의 황산 (아지발도 사실)

   4) 정지 (우왕 9년) : 남해의 관음포

   5) 박위 (창왕 1년) : 쓰시마섬 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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