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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안동 임청각 군자정 (Andong Beopheungsaji Seven Block Pagoda)

by 민아민핫 201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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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여행] 기차길을 따라 만나는 문화재, 국보16호 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安東法興寺址七層塼塔, Andong Beopheungsaji Seven Block Pagoda 





안동, 어디로 떠나볼까?


안동엔 하회마을, 도산서원, 병산서원 말고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발길 닿는 곳곳마다 이어져 있다. 






안동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께서 대표적 관광지로 불리는 하회마을 말고도 가볼만한 곳이 많다며 지도를 펼쳐놓고 열띤 설명을 해주셨다. 그중에 숙소에서 가까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먼저 가보기로했다.  이틀내내 뱅글뱅글 돌았던 요상한  법흥육거리를 피해 꼼수를 써서 주택가의 골목길로 차를 몰았다. ㅋㅋㅋ 가는길에 해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하늘을 찌를듯한 석탑이 묘한 인상을 주었다.  예전 신라나 조선시대 탑이 아닌, 요즘의 날것 그대로인것같은 석탑.   물론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석탑들도 예전 지어졌을 당시에는 새것티가 팍팍나는 것이었겠지만은 요즘 지어진 탑을 보니 가짜같단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어쨌든 이번엔 길을 헤매지 않고 목표지점에 무사히 도착.




기찻길 바로 옆으로 우뚝 서있는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신기하게도 탑은 중앙선이 지나는 기찻길 바로옆에 홀로 우뚝 서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기차가 오고갈텐데 저렇게 있어도 괜찮을까 싶을정도로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 벽돌 한장한장 정성스레 쌓아올린 탑



탑 아래쪽, 즉 기단의 윗면을 시멘트로 발라놓은 것 같아 몹시도 안타까웠다.  예전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봤을대 마찬가지로 기단 윗면 뿐만아니라 탑 뒷쪽으로 전부 시멘트를 발라진 것을 보고 화가날 정도였는데,,,  이 전탑 역시 시멘트가 발라져 있어서 안타까움이 더했다. 그래도 기단 위쪽으로는 무너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잘 보존이 되어있는듯 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전탑

50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오다




국보 제16호


1487년에 개축되었으며 원형이 보존된 한국 최고(最古)의 전탑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칠층전탑이라고 한다. 

전탑은 흙으로 만든 벽돌을 이용아혀 쌓아 올린 탑인데, 이 곳 일대의 지명을 법흥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법흥사에 세워진 전탑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보고  그 앞에 있던 고택도 궁금해졌다.

전탑 바로 뒷쪽에 있는 고택은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이다. 




안동 고성이씨 탑동파 종택



전탑 바로 뒤에 절터가 아닌 고택이 있어서 의아했는데, 예전 법흥사지가 있던 터에 1685년, 고성이씨 탑동파의 파조인 이적(李適)의 증손 이후식(李後植)이 안채를 건축하였고, 그 손자 이원미(李元美)가 사랑채와 대청인 영모당(永慕堂)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고성이씨(固城李氏) 탑동파의 종가집, 조선시대 양반집의 면모를 두루 갖춘 집으로 1984년 1월 10일 국가민속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보고싶었지만 아쉽게도 개방이 되어 있지않아 볼수는 없었다.









전탑이 있던 자리에서 다시 시내쪽으로 가다보면 조선후기의 정자가 있는 임청각 군자정을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임청각 역시 공사중으로 ㅠ ㅠ 들어가볼 수 없었다. 



안동 임청각 [安東臨淸閣] 은 보물 제182호 1519년(중종 14)에 형조좌랑 이명(李洺)이 건립한 양반주택의 별당형 정자이다.

정자의 평면은 丁자 모양이며, 서쪽으로 1칸 크기의 온돌방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두 개 연이어 있다. 다음 1칸 크기의 마루방을 두고 그 북쪽으로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일렬로 늘어선 방과 마루에 연이어 동쪽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의 큰 대청을 두었다.

방과 대청 주위로 툇마루를 두고 계자난간을 둘렀다. 막돌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주두를 얹었다. 주두 위에는 밑면이 초각(草刻)된 첨차를 놓고 소로들을 얹어 굴도리 밑의 장여를 받쳤다. 보방향으로는 쇠서 하나를 내밀어 초익공(初翼工) 구조를 이루고 있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화반을 두고 소로를 얹어 굴도리의 장여를 받치게 되어 있다.

가구는 오량(五樑)으로 앞뒤의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의 동자기둥에 첨차와 소로를 짜넣어 종보와 중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종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대청바닥은 우물마루로 마루 밑이 사방으로 터진 누마루식이다. 천장은 서까래가 노출된 연등천장이나 합각머리 아래만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대청 서쪽의 온돌방과 마루 쪽에는 방주(方柱)를 세운 굴도리집으로 간결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처마도 대청 쪽은 부연을 단 겹처마로서 팔작지붕을 이루나 서쪽 방 쪽에는 홑처마로서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정자의 동쪽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의 둥글게 다듬은 돌에 의도적으로 구멍을 세 개 뚫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정자의 몸채는 정자 서쪽에 있는데 정승이 세 사람이나 탄생하였다는 영실(靈室)이 있고, 그 평면은 양택론에서 길형으로 말하는 用자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임청각은 멀리서 보아도 규모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긴 터에 조밀하게 집을 앉혀 가로로 긴 채가 돋보인다. 집이 하도 장대에서 아흔아홉 칸집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일제시대에 중앙선 철로를 놓으면서 행랑채와 부속채가 철거되어 지금은 50여 칸만 남았다고 한다. 



안동 임청각 군자정




안동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는 옛 시대의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곳이다. 

안동의 대표적인 관광지 이외에도 놀라운 볼거리들이 곳곳에 있는 안동이 점점더 재미있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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