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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덕궁 (궁궐) Chang Deok Gung (palaces)

by 소이나는 201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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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다녀왔습니다.^^
많이 가본 것은 아니고 이번이 두번째로 다녀온 것이네요.
전에는 중국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 쭤펑가 한국으로 교환확생으로 왔다고 해서
같이 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중국어로 설명해주시는 분을 따라서 한바퀴 보고 나왔었는데.
요번에는 한국어로 들을까 했는데..
처음에는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걸로 따라다녔는데. 어찌하다보니 또 중국어로 들으며
창덕궁을 보았습니다.^^;;;

입장권은 1인 3천입니다. 친구와 둘이서 오순도순 보았습니다.


  * 돈화문 : 보물 제383호. 창덕궁의 정문에서 시간을 기다려 입장하였습니다.
  돈화문 앞에는 외국인들이 돈화문과 함께 사진을 찍고 그러지요.
  그리고 창덕궁은 혼자 자유롭게 구경을 할 수 없습니다.
  나레이터라고 해야하나? 암튼 창덕궁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시는 분과 함께 이동을 해야 합니다.
  뭐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따로 다니고 싶어도 궁궐 중간 중간에 관계자들이 있어서 다시 무리를 따라다니게 하더군요.
  자유롭게 사진찍기가 조금은 불편하고, 또 아쉬웠던 것은 좀더 있고 보고 싶은데,
  그렇게 무리지어 다니니 더 보고 싶은 곳에서는 빨리 가고, 좀 빨리 지나치고 싶은 곳에서는 오래 쉬고
  그래서 아쉬 웠습니다.
 
  돈화문 은 1412년 태종시절에 지어졌다가, 1809년에 광해군이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현재 남아있는 궁궐 전문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네요. 백성들을 가르쳐 감화시킴으로 도탑게 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돈화문을 지나 한국어로 된 무리와 함께 들어가서 사진을 좀 찍고,
  자유롭게 지나다니려 했는데, 금천고 앞에서 제재를 당했습니다 ㅠ.ㅠ
  그래서 금천교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무리를 따라서 진선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돈화문과 금천교 사이에 멋진 나무들이 운치를 더해 줍니다.^^


금천교는 태종 때 1411년에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풍수지리에 좋은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위에 돌다리를 놓았지요. 비단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고 해서 비단이 흐르는 다리라고
해서 금천교 라고 한다고 합니다. 다리에는 해태, 거북이 상 등 수호신도 조각되어 있습니다.


금천교의 다리넘어에 있는 진선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인정전 쪽으로 향하였습니다. 주말인데도 무리를 지어 다니니 사람들이 없는 공간이 많아서 그것은 좋았습니다.


  * 인정전 : 국보 제225호. 임금이 높이 앉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어좌는 중앙에 두고 양쪽에는 대신들의 관직 순서대로 품비석을 세워 정사를 보던 정전.


인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 접견 등 중요 행사를 치룬 주요 공간입니다.
정면에 임금의 용상과 나무로 만든 곡방을 두고 뒤에 일월오악병을 둘렀다고 합니다.
천장에는 봉환 한 쌍이 새겨져 있지요.
그리고 인정전 안에는 1908년에 전등이 설치되었다고 하네요



  인정전 주변은 기둥들이 인상깊은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에 인정전으로 들어오는 문을 인정문이라고 합니다.
 인정문 : 영조 21년에 건립한 것이나 1912년 인정전을 전시장으로 만들면서 벽체와 바닥의 구성이 변형되었다고 하네요
 인정문에서는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임금 등이 여기에서 즉위하였다고도 하는 유래가 깊은 문입니다.

 
 인정전을 본후에 국사를 논의하던 신정전을 보고 다시 중앙 쪽으로 나갔습니다.
 
 중앙 쪽에 있는 희정당이묘한 지붕과 곡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희정당은 보물 815조로 임금의 침실이 딸린 편전이 있고, 나중에는 어전회의실로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소실되었다가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내부에는 서양식 가구가 놓여있습니다.

 


 희정당을 보고 왼편의 작은 길로 들어가 대조전 (잠자는 곳)을 지나 내의원인 성정각을 지나서 낙선재 쪽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의 자금성이라고 불리우는 고궁과 비교해보면
 같은 동양인데 참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일단 자금성은 엄청나게 큰 건물들로 위압감을 주고, 황금색으로 눈을 현혹시키고, 작고 아기자기한 건물과 정원으로 
 엄청 화려하고 넓고 웅장하지만 정신이 없었다면,
 창덕궁은 넓은 정원에 나와있는 기분이 듭니다.
 창덕궁도 꽤 넓은 편이긴 하지만, 담도 높지 않고, 궁궐안에 산도 있고,
 그냥 사람들이 사는 마을 같이도 느껴지며, 넓은 정원을 하나 보고 나온 것 같은 느낌도 받는다.
 넓은 대륙을 지배하던 힘이있는 웅장함과 다른 국가에게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지는 고궁과
 아늑하고 자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며, 운치있고,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창덕궁을 보며
 그 시대와 지역 민족의 차이점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궁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좀 질리고, 창덕궁은 소박하지만 운치가 있어 좋았습니다.


  바람도 지나갈 수 있는 연결동을 보니 마치 제 자신이 바람이 된 것 같습니다.

  궁궐 가운데 있는 소화전이 인상 깊네요,
  목조 건물이 많을 텐데,, 정말 잘 보존해야 하겠네요.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타던 날, 우리나라의 상징이 함께 불타버린 것이니까요.
  이제 부터라도 제대로 된 시설과 시스템으로 보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 누구든 들겠지요.
  홀로 모레위에 있는 소화전이 그 큰 임무를 맡고 외로이 서있네요


물이 흐르는 곳도 센스 있게 오리 모양으로 했네요 ㅎㅎ


  작은 건물들과 길이 옹기 종기 모여있는 곳을 지나 중앙으로 나온 후
  낙선재에 도착했습니다.

 * 낙선재 : 조선 헌종 13년(1847)에 건립된 것으로,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주하던 곳


 구름이 머무는 곳처럼 높은 곳에 지었지요.^^
 자연과 하나가 되기위헤서 이렇게 높게 띄워서 만들었다고 하네요.








  낙선재를 본 후에 언덕 하나를 넘어 연못이 있는 곳으로 가지요.


 그 연못에는 아름다운 부용정이 있습니다.
 그 연못의 이름은 부용지라고 하지요.
  네모난 연못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 부용정 : 비원 부용지 남쪽에 위치하며 어수문과 주합루를 올려다보는 자리에 있고 1792년 만들었다고 합니다.
               보는 각도 마다 지붕이 달라 보여서 멋지지요. 외국에 홍보하는 한국의 영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부용지와 영화당 옆에는 작은 매점이 하나있습니다.^^
창덕궁에는 음료도 반입이 안되는 것 같네요..
뭐 가방에 몰래 넣어가도 되긴 하겠지만요. 일단은 쓰레기는 버리지 맙시다.^^*

그 매점이 있는 곳 근처에서 조금 쉬다가.
언덕을 하나 더 넘어 밖으로 나갑니다.

그 전에 불로문을 지나서 숙종때 만들어진 애련지를 보고

* 애련정 : 주합루 후원으로 해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는 층층다리를 딛고 서면 건너편에 방지(方池)가 있고 그 북쪽에 단문의 정자가 애련정이다.


연경당과 선항재를 보고 밖으로 나갑니다.^^






* 관람시간

* 자유 관람은 목요일에만 하고 있네요. 만오천원 @.@
* 옥류천 코스는 추가 5000원을 내고 월요일 목요일은 제외하며, 10시 1시, 2시에만 가능 합니다.



관람코스별 안내 설명 아래 더보기 클릭 (http://www.cdg.go.kr/bulletin/view01.htm?TbCode=10&TopsFlag=&evt=&Page=1&Mode=&mode=&Num=1050&bbsSchOpt=0&bbsSchTxt=)




창덕궁 []

1963년 1월 18일 사적 제122호로 지정되었다. 1405년(태종 5) 완공되었으며, 면적 43만 4877㎡이다. 태종()이 즉위한 후 1404년(태종 4) 한성()의 향교동()에 이궁()을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하고 창덕궁이라 명명하였다. 그 후 계속 인정전(殿선정전(殿)·소덕전(殿)·빈경당()·여일전(殿)·정월전(殿)·옥화당() 등 많은 전당을 건립하였는데, 1412년 돈화문()을 건립하여 궁궐의 면모를 갖추었다.

이 궁전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7년(선조 40)에 그 복구가 시작되어 1610년(광해군 2)에 중건이 거의 끝났으나, 1623년 3월에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실화로 불탔으므로 1647년(인조 25)에야 그 복구가 완료되었다. 그 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특히 1917년 대조전(殿)을 중심으로 내전 일곽이 소실되어 그 복구를 위하여 경복궁 내의 교태전(殿)을 비롯하여 강녕전 동·서 행각 등의 많은 건물이 해체 전용되었다.

창덕궁은 많은 재앙을 입으면서도 여러 건물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는데, 1912년부터는 후원인 금원()과 아울러 인정전을 관람할 수 있게 하였고, 8·15광복 후에도 창덕궁과 금원을 공개하고 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가장 중요한 고궁의 하나이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세계가 보존하는 세계문화유산
사진
  창덕궁은 서울에서 두 번째로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장 먼저 종묘가 선정됐고 이어 창덕궁이 등재됐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이자 세계가 함께 보존하고 지켜가는 문화재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은 진정성과 뛰어난 보편적 가치를 전제로 한 10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 이상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창덕궁은 ‘동아시아 궁전 건축사에 있어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대표적 궁으로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창덕궁은 평지가 아닌 산자락에 지어진 궁궐로 전체 면적의 2/3가 북악산의 응봉산 자락에 있다. 산세를 적절히 활용한 궁궐인 셈이다. 창덕궁 후원의 가치가 각별한 이유도 이같은 자연의 지세를 거스르지 않고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한국적인 건축과 조경의 특징이다.
  
  창덕궁은 1405년 태종에 의해 세워졌다.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조선 왕조의 이궁(離宮)이었다. 하지만 조선 왕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오랜 시간 법궁(法宮)의 역할을 한 궁궐이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경복궁과 창덕궁을 모두 잃었다. 그 후 경복궁은 터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방치됐고, 광해군 2년(1610)에 재건된 창덕궁은 약 270년간 조선의 법궁으로 쓰였다. 이웃한 창경궁과 특별한 경계를 두지 않고 사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선 궁궐이 그렇듯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훼손됐다.
  1917년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 내전의 대부분이 손실되고 말았다. 이에 일제는 창덕궁을 복원한다는 미명 아래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서 사용했다. 경복궁의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을 허물어 창덕궁의 희정당(熙政堂)과 대조전 등을 지었다. 창덕궁과 경복궁을 동시에 훼손시킨 것이다. 순종의 승하 이후에는 더욱 심하게 훼손됐다. 창덕궁은 1991년에 들어서야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그리고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다시금 입증했다.
  
옥류천에서 낙선재까지
  창덕궁은 1960년 일반에 개방했다. 하지만 훼손이 심해지자 1977년부터 3년간 폐쇄했고 1979년부터 지금까지 안내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 여타의 궁궐과 달리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야 하며, 자유로운 관람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 창덕궁 관람이다.
  창덕궁은 크게 세 가지 관람 프로그램을 가진다. 첫 번째는 일반 관람이다. 정전인 인정전(仁政殿)을 중심으로 후원(後苑)의 입구에 해당하는 부용지(芙蓉池)까지 아우르는 기본적인 관람 코스다. 두 번째는 특별 관람이다. 특별 관람에는 다시 낙선재(樂善齋) 특별 관람과 옥류천(玉流川) 특별 관람으로 나뉜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로 쓰이던 공간이다. 검소한 헌종의 생활과 서양 문물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소박한 단청과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창살과 벽체 무늬가 두드러진다. 곁에 있는 석복헌(錫福軒)은 경빈의 처소로 궁궐 안에 후궁을 위해 건물을 지은 건 이례적이다. 낙선재에는 수강재(壽康齋)도 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마지막까지 간직했던 덕혜옹주의 거처였다.
  또 하나의 특별 관람인 옥류천 코스는 후원의 초입 부용지에서 후원의 백미 옥류천에 이르는 코스다. 후원은 창덕궁의 뒤편에 자리한 궁궐 정원으로 일제에 의해 비원(秘苑)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나 후원이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다. 북쪽에 있다 하여 북원(北苑)이라고도 한다. 후원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데에 있다. 생태계의 보존 상태가 좋고 연못과 정원 등에는 차경의 흔적이 두드러진다.
  옥류천은 그 제일 안쪽에 자리한 계곡으로 인조 14년(1636)에 소요암을 깎아내고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즐기기도 했다. 소요암에는 인조가 새긴 옥류천(玉流川) 세 글자가 또렷하다.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 등이 자리한다. 그 가운데 청의정은 볏짚으로 지붕을 인 정자로 주변에는 왕이 직접 농사를 지은 논이 있다.
  특별 관람은 일반 관람과 코스가 다르며, 두 관람은 서로의 공간을 넘나들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자유 관람으로 달랠 수 있다. 자유 관람은 매주 목요일 하루 동안 안내원의 통제 없이 궁궐 곳곳을 자유로이 감상할 수 있는 코스다. 하지만 일반 관람이나 특별 관람에 비해 입장료가 비싼 편이다. 물론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그만한 가치를 가지고도 남음이 있다.

* 출처 서울시(http://www.visitseoul.net/visit2006/newdb/article/article_view.jsp?place_id=489)



창덕궁에는 감시카메라가 잘 숨어 있습니다 .ㅋㅋ
중간 중간에 많이 있으니까 잘 찾아보세요. 카멜레온처럼 색을 둔갑하고 있어요 ^^;;












창덕궁 위치 : 안국역 3번출구, (종로구)




외국인 분들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네요..
중국어로 들었는데 간간히 아는 말도 나오지만, 거의 대부분이 모르는 말이라 설명을 잘 듣지는 못해도,
낯설어하고, 새로워하는 분들과 다니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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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좋아서 사진찍기에도 최고입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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