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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바람과 함께 쉬는 곳 [경희궁] Seoul KyeongHuiGung - palaces

by 소이나는 2013.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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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사직] 바람과 함께 쉬는 곳 경희궁

경희궁에 다녀왔습니다.
경희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작고 아담하여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기에 좋습니다.
형식적이고 체계적인 경복궁은 조금 황량한 듯한 느낌이 든다면,
자연과 어울리는 창덕궁은 균형과 조화가 비조화 속에 어우려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곳 경희궁은 작고 개방적이어서, 궁궐같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궁궐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은 친숙한 분위기 속에 궁궐이 아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한 공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특히 주말의 서울에서 이렇게 사람의 자취가 없는 곳은 드물지요.
잠시 사람을 떠나고 싶다면, 경희궁에  책 한권을 가져가 읽고 오라고 하고 싶습니다.
경희궁 한 쪽 구석에 앉아 과거로 돌아가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그와 함께 오래된 나무의 냄새로 빠져들어, 정말 멋진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숭정문의 멋스러운 기와와 인왕산은 조선의 하늘 아래 있는 느낌을 들게 해줍니다.



보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입장료도 받고 있지 않지요^^

광화문 근처에 가신다면, 걸어서도 갈 수 있습니다.

 

관람시간

  - 평 일 : 09:00 ~ 18:00
  - 공휴일 : 10:00 ~ 18:00
  - 휴관일 : 1월1일 , 매주 월요일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반대 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서 동궐이라고 불렀다고 하지요.
인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거쳐 경희궁을 이궁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원래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집이 있던 곳으로 광해군 때 왕궁을 지어 경덕궁이라 부르다 1760년에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280여년 동안 동궐인 창덕궁, 창경궁과 더불어 서궐의 위치에서 양대 궁궐의 자리를 키웠다고 합니다.



왕맥이 흐르는 터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있는 궁궐’이라 부르는 경희궁. 조선 왕조의 이궁(離宮)이요, 조선의 5대 궁궐이라지만 여전히 무명(無名)이다. 풍모 또한 결코 그 위상과 같지 않다. 서울의 대표 도심인 신문로와 접한 터임에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경희궁의 터가 서울역사박물관을 아우를 만큼 너른 땅이었음을 기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경희궁은 1623년 광해군이 지었다. 건립 당시만 해도 230만 제곱미터가 넘는 부지에 1500칸에 이르는 대궐이었다. 광해군 이후 철종 때까지 이궁으로 사용했으며 전각만도 100여 동이 넘었다. 광해군이 경희궁을 지은 데는 사연이 있다. 경희궁은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었다. 하지만 그 터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이 돌자 광해군이 이를 몰수해 궁궐을 지은 것이었다. 인조반정(1623)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뒤를 이어 인조가 왕위에 올랐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지리가 현실이 된 셈이다. 경희궁은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라 불렀으나 영조대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인 경희궁(慶喜宮)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난과 역경의 일제강점기
사진   경희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가장 철저하게 파괴됐다. 일사늑약(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부터다. 학교를 세우기 위해 궁궐 내의 건물을 철거했고 이를 위해 땅의 지형도 바꿨다. 또한 경희궁 터의 8만2500㎡에는 전매국 관시를 지었고 전각들도 대부분 팔아버렸다. 초창기에는 회상전, 융복전, 집경당, 흥정당, 숭정전, 흥화문, 황학정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융복전과 집경당은 화재(1829 순조 29년)로 소실되고 나머지 전각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숭정전과 회상전은 조계사로, 흥정당은 광운사로, 황학정은 사직공원 뒤로, 흥화문은 박문사로 각각 옮겨졌다. 1988년 복원 작업에 착수한 후에야 몇몇 전각의 이전 작업이 추진됐다. 경희궁의 흥화문도 이때 이전 복원했다. 흥화문은 신라호텔의 정문과 똑같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기념한 박문사(博文寺)를 장충동에 지으며 절문으로 흥화문을 옮겨 사용한 탓이다. 해방 후에는 신라호텔의 영빈관 정문으로 쓰이다 경희궁으로 돌아왔다.
  경희궁 내 흥화문의 현 위치도 창건 당시의 자리는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금천교가 있다. 금천교는 보통 궁궐의 정문 안쪽에 세우는 다리다. 이로 보아 그 앞쪽에 흥화문이 자리했을 것이다. 지금의 구세군회관에 해당해 어쩔 수 없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섰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은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이 낡고 이전의 어려움이 있어, 현재의 경희궁 숭정전은 새롭게 지어 복원했다. 국왕이 공무를 수행하던 자정전과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태령전도 새로이 복원했다.
  경희궁은 2002년 일반인들에게 개방한 뒤로 21세기의 후손들과 함께 다시금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이후 조금씩 궁궐의 위용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떤 모습으로 옛 위상을 회복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우리의 문화 유산이다.
  
http://www.visitseoul.net/visit2006/newdb/article/article_view.jsp?place_id=189
 

 여기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정보를 읽을 수있습니다.
<경희궁 홈페이지 정보>

경희궁의 첫 관문에는 흥화문이 있습니다.  
돈화문이나 광화문에 비해서는 작지만, 언제나 들어가는 입구는 큰편이군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 빌딩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흥화문을 떼어갔었다. 광복 이후 박문사를 폐지되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남아있었다.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경희궁터로 옮겨 왔는데 원래의 자리에는 이미 구세군빌딩이 세워져 있어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흥화문을 지나니 미술관과 바로 숭전문이 나왔습니다.
사실 흥화문의 위치가 바뀌었지요. 더 멀리에 있고, 흥화문을 지나면 금천교를 지나 궁궐로 가야하는데^^;;

금천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이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이다. 1619년(광해군 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서울시에서는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경희궁이 대체적으로 작아지고 복원되면서 흥화문의 위치도 바뀌었네요..

격동한국, 한국민주화, 근대화 사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냥 오래되고 소중한 사진을 몇개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민주화 사진은 지하철이나 역 등에서도 자주 보곤 했는데, 경희궁에서도 보게 되는 군요.^^





정말 격동이란 말이 잘어울리는 것 같이 우리나라의 경제와 민주화의 발전은 급격하게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빨리 빨리라는 우리의 습관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중한 많은 사람들의 피와 투쟁으로 이루어진 나라에 갑자기 감사함을 느껴지게 되더군요.

경희궁을 들어가는 곳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분관도 있습니다.



서울 시립 미술관 맞은 편은 공사중인 건물이있더군요. 독특한 조형물로 만들고 있던데..^^
무엇이 만들어 질지 궁금합니다.

계속 걸어가면, 숭정문이 나옵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이 한적하게 경희궁이 혼자 서있습니다.


숭정문 구석에 한 외국인과 한국인 아저씨가 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숭정문을 올라가는 계단에 새의 조각이 있습니다. 어떤 새일지 궁금하네요. 왕과 관련있다면 주작이겠지요^^?

숭정문을 지나면 숭정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이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숭전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다. 우물천정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겨두었다.



숭정전과 그 주변이 경희궁의 보존된 몇 안되는 건물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건물이 있었을 텐데 소실되었다니 안타깝더군요.











사실 가보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본디 상당히 넓고 큰 궁궐이였으나 현재는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ㅠ.ㅠ
사람도 거의 없고, 분위기도 좋아 휴식을 취하기에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친구와 배낭여행을 하듯이 한국여행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엄청 오래 걸어서 힘이 많이 들었는데. 경희궁 문턱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몸과 마음의 충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경희궁 - 서울역사박물관 - 홈페이지>

 [서울 종로구] 창덕궁 (궁궐) - 보기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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