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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식당 ♠/해외

[중국 북경 (베이징)] 베이징의 상징, 천안문과 천안문광장 [the Tiananmen Square (Tian an men guang chang)]

by 소이나는 201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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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베이징)] 베이징의 중심, 천안문과 천안문광장

[China Beijing -  Symbol of Beijing, Tian an men & The Tiananmen Square]



<천안문, 톈안먼 [天安门] Tian an men>

북경(Beijing)은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3천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의 수도입니다.
뭐 중국의 수도이기에 누구나도 알 수 있는 말이지요.
중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만리장성, 자금성(고궁), 이화원, 원명원, 북해공원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거리들이 풍성한 곳입니다. 

총면적은 16000㎢이며, 서·북·동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또한 기후는 온난습윤하며 사계절이 분명하지요. 봄·가을이 짧은 반면, 겨울과 여름이 비교적 깁니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506㎜이라고 하네요.

제가 베이징에 가본 것이 두번이었습니다.
한번은 중국내에서 기차를 타고 20시간이 걸려 북경에 도착한 것이 7월 중순인 한 여름이었고,
한번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톈진으로가 버스를 타고 북경에 온 것이 1월 초 한 겨울이었습니다.
한 여름의 북경은 정말 완전 덥더군요. 또한 한 겨울의 북경은 칼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였습니다.
대륙의 수도다운 더위와 추위었습니다. ^^;;
여름의 여행은 덮기는 하지만, 여러 공원의 푸르름과 관광객들을 느끼기에 좋은 여행이였고,
겨울의 여행은 사람들이 조금은 적어 한산하여 좋기는 했습니다. 비수기이라 입장료도 싸고 방을 구하기도 쉽고 그러더군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겨울보다는 여름의 여행이 볼거리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좀 덥고 땀은 나지만 겨울보다는 여름여행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을에 여행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지만요.

일단 북경의 중심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금성(고궁)이 있습니다.
자금성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고, 중국에서는 고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 고궁을 들어가기 바로 전에 천안문이 있고, 천안문의 앞쪽으로 천안문광장이 있습니다.





첫 북경여행에서는 기차를 타고 북경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전문역에서 내리자 마자,
어떤 아저씨가 자기의 숙소에 묵으라고 권유하여 졸졸 따라가 쉽게 숙소도 구하고, 북경에 편하게 도착하였는데,

두번째 북경여행에서는 처음에는 약간 복잡했지만, 바로 적응이 되었습니다.
사실 톈진에서 베이징이라고 써있는 글씨가 적힌 버스를 무작정 타고 한 두시간인가 한참을 달렸는데,
알고보니 북경대학이 종점이던 버스이더군요. 그런데 어디서부터인가 중간에 멈추어 사람들이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대충 여기 북경 같은데? 하면서 그냥 내려버렸지요.
그런데 외국의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내리고 나니 참 대책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행의 백미이겠지요. ㅎㅎ

역시 여행 답게 구세주가 있었습니다. 바로 버스에서 같이 내린 한 아주머니께서 조선족이시더군요.
이런 엄청난 행운을 받으며, 아주머니께 여기가 북경이 맞는지 물어보고, 이 근처에 지하철 역이 있냐고 하니,
북경이 맞고 몇번인지는 모르겠고, 시내버스를 타고 좀 가면 ~~~지하철역을 탈 수 있다고 하는 것이였습니다.
그 지하철역 이름이 무슨 ~~문 역이였는데, 그곳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아무튼 시내버스를 타려고하니 문제는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였습니다. ㅠ.ㅠ
멀리 큰 사거리가 보이길래 그곳까지 걸어갔더니, 다행이 그 지하철역을 가는 버스가 있더군요.
버스를 탔는데, 잔돈 없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보고 지폐를 내야겠구나하고 지폐를 넣으려하니,
기사 아저씨가 뭐라~ 뭐라~ 합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거슬러주는 사람이 없으니 잔돈으로 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잔돈이 없어, 괜찮다며 그냥 그 지폐를 넣으려하자. 기사 아저씨 엄청 큰 목소리로 또 뭐라~ 뭐라~ 합니다.
귀가 어찌 듣고 싶은 말만 들리는지, 마지막에 그냥 돈 넣지말라는 소리는 들리더군요. ㅋㅋ
그래서 버스를 무료로 타고 지하철역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중국에 오니 말도 못하겠고 쑥스럽더군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근처에 젊어 보이는 사람에게 샬라 샬라~  "쩌이 푸친 띠티애쨘 이요우마?" (이 근처에 지하철역 있나요?) 라고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가르켜 줍니다. ^^;

그러고 보니 전에 상해를 여행할 때, 숙소를 못 구해 힘들어서 난징루 중앙에 짐을 다 내려놓고 앉아있는데,
한 중국 남자분이 갑자기 다가오시더니 "쩌이 푸친 왕바 이요우마?" (이 근처에 PC방 있나요?) 라고 제게 물어 본 것이 생각납니다.
하필이면 한 달 쯤 중국여행 배낭여행을 하며 상해에 도착하여 인터넷이 가능한 동네에 왔다 하고 좋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인터넷 카페였습니다. 바로 다녀왔기에 위치를 알려 주었지요. ㅎㅎ
사실 중국에 있으며 길을 알려준 적이 몇번 있는게 신기합니다. ㅋ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전문역에 도착하여 전문 길 넘어에 있는 여관에 짐을 풀었습니다.



도착하고 해가 떨어져, 동인당약국이 있는 시장골목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고, 천안문광장의 야경을 조금 보고 잠들고,
다음 날, 본격적인 여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문주변 야경>


<천안문 야경과 전문(Qianmen)>

전문이 보이는 3층에 숙소를 잡고 너무나 황홀한 풍경을 본 후에 잠이 들었네요
아래 보이는 첫번째 사진이 거의 제 숙소에서 보이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전문의 전루, 전문과 천안문, 고궁 동쪽에 위치한 도심의 거리인 왕푸징거리>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북경을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전에도 와봤지만 확실히 북경은 볼거리가 상당히 많은 장소입니다.
물론 북경이 오랜시간 중국의 수도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중국의 수도인 북경은 3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고대 전국(戰國) 시대에 잠시 연(燕)나라의 수도였다가, 원나라 때 몽고족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북경을 수도로 정한 이후
거의 1000년 동안 수도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북경은 발달된 현대적 도시입니다.
중국의 정치, 문화, 과학, 상업 등의 중심 도시이자 과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어 관광 도시로서도 유명합니다.


<북경역>

일단 북경에 오면 북경 5대 명소 인 고궁, 만리장성, 이화원, 천단, 명13릉를 비롯한 명소 중의 명소만 대충 본다고 해도 
빡빡하게 4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만리장성은 고궁에서 한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데, 황제의 무덤인 명13릉이나 협곡인 용경협 등을 같이 보고 돌아오곤 합니다.
대부분 북경근처의 만리장성은 팔달령장성으로 다녀오지만, 조금 더 가서 사마대 장성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중국 북경] 만리장성의 겨울 (팔달령 만리장성 - 八达岭长城, Ba da ling ChangCheng) - 보기클릭

이화원은 넓은 호수가 있는 공원으로 서북쪽에 있던 것 같은데, 이화원 한 곳만 보러가도 하루가 걸릴 것 같네요,
근처에 원명원이라는 곳도 함께 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심가의 천안문광장 고궁과 북해공원 경산공원 왕푸징거리를 하나로 잡아야 겠네요.
솔찍히 천단공원도 약간 가깝기는 하지만 하루에 같이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경극, 서커스, 마사지 이러 것을 활용하면, 북경여행은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일단 중심가인 천안문광장을 보아야겠습니다.

전문 앞에서 숙소를 잡았기에 아침을 길건너 시장에서 만두와 죽을 먹고, 간식으로 빠오즈, 만토우를 사서 전문으로 향했습니다.


정양문 전루를 지나니 정양문이 보입니다.


<전문(前门, 前門),  치안먼 (Qianmen)>

전문은 중국 베이징의 중심지 텐안먼광장 남쪽 끝에 위치하는 과거 베이징 내성의 정문입니다.
1419년 명(明)의 영락제 때 처음 건축되었으나 화재와 전란으로 인해 여러 번 소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1914년에 재건축된 것이라고 합니다.
자금성 남쪽의 텐안먼과 정면으로 마주보던 치안먼은 1977년 마오쩌둥 기년관이 완성되면서 텐안먼 광장에서는 지붕의 누각만이 조금 보입니다.

전문의 높이는 42m로 베이징에 있는 문루 중에 가장 높습니다.
1949년 공산당이 승리한 후 중국인민 해방군 베이징 수비대에 의해서 점령되었고 1980년까지 군대가 주둔하기도 하였다는군요.

치안먼의 남쪽 정면에는 과거 화살을 쏘는 망루로 이용되었던 전루(箭樓)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는 전문과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도로를 직선으로 정비하면서 성벽을 허물어 현재는 망루만이 남아있습니다.


<전루와 정양문(전문)>

과거 베이징 성은 황제의 거주지인 내성과 일반인의 거주지인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모두 20개의 성문이 있었습니다.
이 중 내성에 설치된 9개의 성문 중에서 외성에서 내성의 중심부로 출입할 수 있는 정문이 바로 전문입이다.
이 문은 황제가 천단으로 제사드리러 가기 위해 통과하던 문으로, 과거 명청시대에는 황제의 마차만이 출입할 수 있었으나,
장례행렬이나 장례마차는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중국 당국에 의해서 베이징성의 성문은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전문은 그 웅장함과 독특한 모양 때문에 과거 베이징의 상징으로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눈으로 보면 상당히 거대하여 그 웅장함에 자신이 숙연해 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저런 엄청난 문을 만들은 것도 신기한데, 고궁에 들어가면 저만한 건물이 몇 채나 있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전문을 지나면 우선 보이는 것이 모택동 기념당입니다.
 


모주석 기념당(毛主席紀念堂)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있는 마오쩌둥의 묘입니다.
내부에는 방부처리 후 보존된 모택동의 사체를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모택동 사망 직후에 다음 공산당 주석인 화궈펑에 의해서 건설이 결정되어 1976년 11월에 착공해 모택동 사망 1주년인 1977년 9월 9일에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입구의 〈모주석 기념당〉이라는 글자는 화궈펑의 휘호입니다.
정말 모택동은 중국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긴 합니다. 화폐에 모주석의 얼굴이 전부 그려저있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중국의 큰 화폐인 100원 (한국돈 1만 8천원 ~ 1만 5천원)의 뒷면에는 인민대회당이 그려있습니다.



바로 천안문광장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지요.


<인민대회당>

인민대회당은 톈안먼광장·중국역사박물관·민족문화궁(民族文化宮)·베이징잔[北京站 中央驛] 등과 함께
중국정부 수립 후 10년간 중국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전국 각지의 설계부국, 건축가들이 제출한 설계안을 기초로 1959년 8월 완성되었지요.
인민대회당의 건축면적은 17만 1800㎡, 평면은 산자형(山字形)이며, 중앙의 큰 홀 뒤쪽에 정면의 너비 76m, 안쪽으로의 길이가 60m로
탁 트인 인민대표대회의 회의장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전에 1월 1일(신정)에 천안문광장에서는 무언가 하겠지? 하며 00:00분에 광장에 나와봤는데,
그때에는 아무것도 안하더군요. 오히려 넓은 광장을 주차장으로 만들어 놓고 검고 큰 차들이 들어와 인민대회당에 들어가 더군요.
물론 인민대회당 근처를 모두 통제하구선요. 나름 화려한 새해를 기다리던 때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 기억이 있습니다.





<광장의 박물관>

다시 광장쪽을 보니 붉은 기발이 펄럭이고 있습니다.
붉은 기발은 너무 중국과 잘어울리는 상징 같군요. 물론 공산당의 상징이니 말입니다.


[天安门广场 (천안문광장), Tian an men guang chang, the Tiananmen Square] 

천안문 광장은 베이징의 정중앙에 있습니다.
규모는 남북 길이 880m, 동서 폭이 500m, 총 면적 44만㎡로 약 100만 명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장소입니다.
천안문광장의 전신(前身)은 명대(明代) 1419년에 확장된 '청톈먼[承天门]'  전면에 위치한 협소한 광장이었다는 군요,
이후 여러 차례의 대규모 보수와 확장공사를 통하여, 세계 최대 규모의 시내 광장이 되었습니다.
그 광장의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가 있습니다.


<인민영웅기념비 [人民英雄纪念碑, Monument to the People's Heroes] >

인민영웅기념비는 1949년 제1차 중국인민정치협상회 전체회의에서 19~20세기 중국 혁명과정에서 희생된 인민들을 위한 기념비를 제작하기로 결정하여
량시쳉(梁思成)의 설계로 톈안먼광장 중앙부 톈안먼과 마주하는 위치에 1958년에 비를 세웠습니다.
1958년이면 우리나라의 광복과 6.25전쟁이 끝나고 몇해가 지난 후이군요.

기념비는 높이 약 38m, 면적 3000㎡, 무게 약 10,0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조 비석으로, 
약 17,000개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들었습니다.
비석의 대리석 받침대 네 면에는 근대 약 100년간의 혁명 역사를 조각한 8개의 거대한 부조(浮雕)가  있습니다.
각각의 내용은 1840년 아편전쟁 중 아편의 소각 장면, 1851년 태평천국 운동 당시 진텐마을(Jintian:金田村)의 봉기,
1911년 우창봉기, 1919년 5.4운동, 1925년 5.30운동, 1927년 난창봉기, 1931~1945년 항일유격전쟁, 1949년 홍군의 양쯔강 도하 성공 등으로
혁명과정의 기념비적인 사실들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근현대사의 큰 변천을 알아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공산당의 이 혁명기념비는 연변쪽에서도 많이 보이더군요.
연길이나 도문, 용정 등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간도지방에도 기념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기념비의 정면에는 '인민 영웅들은 영생불멸하라(人民英雄永垂不朽)'라는 마오쩌둥의 친필 명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념비의 후면에는 마오쩌둥이 초안을 잡고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쓴 비문이 있습니다.

기념비가 세워진 자리는 1976년 저우언라이 사망 시 그를 추모하는 민중과 이를 저지하려는 당국과의 사이에 발생한 충돌사건인
천안문사태가 일어난 현장이기도 합니다.
또한 1989년 6월 4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연좌시위를 벌였던 톈안먼사태 당시 생긴 총탄 자국이 기념비에 남아 있습니다.
비문이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큽니다. 거의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했나? 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민기념비를 보면 바로 그 유명한 천안문이 보입니다.

<천안문>

천안문하면 너무 중국의 상징처럼 보이기에 현대에 만들어 놓은 것인가도 하겠지만
천안문은 명나라 때인 1417년(영락 15)에 착공되어 1420년(영락 18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옛 궁의 한 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완공 당시에는 지붕에 황색기와를 얹고 처마 귀퉁이가 하늘로 치켜든 패루(牌樓)였으며 이름도 승천문(承天門)이었습니다.
1457년에 화재로 훼손된 것을 1465년에 재건하면서 정면 폭이 9칸인 문루식(門樓式) 패루로 만들고,
 이 문루식 패루는 1644년 이자성(李自成)이 이끈 농민봉기군이 베이징을 공격할 때 소실되었으며, 1651년에 다시 복구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목조 패루에서 성루(城樓)로 증축하고 승천문을 천안문[天安門]이라고 변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천안문의 중앙 문을 지나가면, 또하나의 거대한 건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고궁의 시작이지요.
그렇게 천안문을 지나며 천안문 광장의 주변 볼거리를 지났습니다.

도심 한 가운데 넓은 광장이 있는 것이 보기 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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