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정권 시대
Ⅰ. 무신정변(1170)
1. 무신정변의 배경
(1) 문벌 귀족 지배 체제의 모순 심화
(2) 숭문 천무 정책
1) 무신 차별
a. 과거제도에 무과가 없음, 강예재(무학재)의 폐지
b. 2품이상의 재상이 될 수 없었다. (∵ 정3품 상장군까지만 마련)
2) 의종의 실정
3) 무신의 경제권 침해 : 전시과 차별, 지휘권 독점, 의종의 향락생활, 군인전 폐지 ➝ 무신정변
2. 경과
- 정중부, 이의방 등 정변 ➝ 왕을 폐하 ➝ 명종을 세움 (1170, 경인난)
3. 무신 정권의 변천
(1) 제1기
1) 이의방
2) 정중부 (1170 ~ 1179) : 중방 중심 (∵ 무신지위의 불안정 때문에)
3) 경대승 (1179 ~ 1183) : 정중부 제거 ➝ 도방 (신변경호) 설치
4) 이의민 (1183 ~ 1196) : 김보당의 난 때 의종을 제거한 공으로 진출, 천민 출신, 중방 중심, 최충헌에게 피살
(2) 제2기
1) 최충헌 (1196 ~ 1219)
가. 봉사 10조 제시 (사회 개혁안 - 명종에게)
a. 새 궁궐 b. 관원의 수를 줄일 것 c. 농민 토지 돌려줄 것 d. 선량한 관리 임명
e. 곡물 진상 금지 f. 승려의 고리대 금지 g. 탐관오리 징벌 h. 관리의 사치 금지
i. 함부로 사찰을 건립하는 것 금지 j. 신하의 간언 용납
cf) 건의한 것 : 시무10조 → 시무28조(반영O) → 봉사 10조 → 조준(정도전) : 과전법 (반영 O) → 이이
나. 무단 정치의 강화
a. 도방 부활 : 사병집단 - 가동(사병의 하층부), 문객(사병의 상층부)을 무장시켜 만듦
b. 교정도감 (敎定都監) 설치 : (인사, 세무, 감찰, 반대 세력 제거 등 최고 집정부)
* 무신 정권기 사병의 구성원 - 가동, 문객, 악소(무뢰배), 사사(무사집단), 용사, 장사
다. 조계종 후원 : 교종과 사원은 억압
라. 흥녕부 설치 : 지방의 관리 담당하는 최고 집정기관
2) 최우(최이) (1219 ~ 1249)
가. 정방 : 인사권 장악, 정색승선 등 문인을 등용 (신진사대부)
→ “문장에 능하고 행정실무도 능한 자 첫째로 ~”
나. 서방 : 문사들의 숙위 기구, 고문 역할 (이규보, 최자)
다. 삼별초의 조직 : 좌별초(야별초에서 분리), 우별초(야별초에서 분리), 신의군(몽골에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병사)
→ 본래 ‘야별초’로 성립 (치안), 사병적 성격이 강함, 국고에서 지출되는 녹봉을 받음
라. 대몽 항쟁 : 강화도 천도, 팔만대장경 조판
마. 마별초 조직 - 내도방·외도방 편성 / 최씨 사병, 의장대 역할
3) 최항, 최의 : 무오정변 (고종45, 1258) - 최의 살해, 최씨 정권 막
4) 최씨 정권의 특징
a. 정치적으로는 안정, 통치 질서는 약화, 백성에 소홀 (경제 개혁은 無)
b. 진주지역을 식읍으로 삼아 미곡 저장 (X- 전주) soy한국사
교정도감 |
최충헌 |
인사, 세무, 감찰, 반데 세력 제거 등 최고 집정부 |
도 방 |
경대승 |
신변 경호 |
서 방 |
최우 |
문학적 소양 행정 실무 능력의 문신도 등용, 고문 역할 |
정 방 |
문무백관의 인사 행정 담당 |
cf) 기존 정부 기구인 3성 6부제는 존속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
중방 |
도방 |
중방 |
봉사10조, 도방, 교정도감, 농장확대, 조계종 개창 |
정방, 서방, 삼별초, 팔만대장경 |
김보당, 조위총 | ||||
망이 망소이의 난 |
전주 관노의 난 |
김사미, 효심의 난 |
만적의 난 |
이연년의 난 |
➝ 제3기 붕괴기 : 김준, 유경 ➝ 임연(향리출신), 임유무
T) 이규보의 동명왕편이 최씨 무신 집권기에 편찬되었다.
cf) 이자겸→묘청→정중부→김보당→조위총→명학소→전주관노→만적
Ⅱ. 사회의 동요
1. 무신 정권에 대한 반발 (정중부)
(1) 김보당의 난 (1173) : 명종 때 의종의 복위를 꾀함, 반 무신난 성격 (∵ 무신 지배가 강화되는 계기)
* 김보당 - 동북면 병마사
(2) 조위총의 난 (1174) :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신에게 항거 (∵ 농민 전쟁적 성격도 띄고 있다.)
(3) 승려의 난 : 귀법사 등 교종 계열 ➝ 개경공격 (최충헌 때)
2. 무신 집권기 하층민의 봉기
(1) 배경 : 신분 제도의 동요, 백성 수탈의 강화, 지배체제붕괴, 새 국가 건설 의식 등장
(∵ 정중부, 이의민 집권 - 이의민은 천민 출신)
(2) 천민·노비들의 난
1) 전주 관노의 난 : 경대승 집권기 (노비가 최초로 참가한 민란)
2) 만적의 난 : 최충헌의 사노가 신분 차별에 항거, 정권 탈취 시도 ➝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
☞ “공경장상은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다. ~ 매만 맞고 살아야 하는가?” <고려사, 동사강목>
(3) 양민, 농민들의 난
1) 김사미·효심의 난 : 명종 때 신라부흥운동 전개, 양인 최대 규모의 민란 (이의민 때) (X- 노비의 난)
2) 망이·망소이의 난 : 공주 명학소에서 신분해방 주장 (정중부 때)
➝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하며 향·소·부곡이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 “산행병마사라 칭하고 ~ 홍경원을 불태우고~” <고려사>
3) 정부는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제한적이나마 빼앗긴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조부를 감면하고
권농 정책을 실시
T) 무신란 이후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나, 최씨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 무신정권안정, 탄압과 회유)
3. 부흥 운동
(1) 최광수의 난 (1217) : 서경에 고구려 부흥 표방 (최충헌 때)
(2) 이연년의 난 (1237) : 담양에서 백제 부흥 표방 (최우 때)
(3) 김사미·효심의 난 (1193) : 운문, 초전에서 신라 부흥 표방 (이의민 때)
4. 기타 항쟁
1) 노군 (충주), 정방의 (진주), 이비 (경주), 금단 (울진)
2) 민란에 참여하는 계층이 다양하였다.
5. 무신 정변의 영향
(1) 문벌 귀족의 붕괴 : 관료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
(2) 왕권 약화, 국가 통제력 약화
(3) 전시과 체제 붕괴 - 대토지소유 증가 (권문세족 : 토지 겸병진행)
(4) 민생 피폐, 신분제 동요 - 천계출신 집정자의 등장으로 하층민의 사회의식 성장
➝ 귀족 중심의 엄격한 신분 사회가 변화되는 계기
(5) 신앙 결사 운동, 조계종 개창, 선종발달
(6) 문화 침체 - 은둔적 시조 문학은 발달, 경기체가 유행 , 패관문학 발달
(7) 민족 주체적 문화발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