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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SOY ♣/하루의 흔적 Life

추석나기 (성묘) - 일상

by 소이나는 2009.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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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지내기를 조금은 늦게 올립니다.^^
가족이 전부 가까이에 살아서 귀향 정체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해 너무 좋습니다.
친가 쪽은 합덕에 사시는 큰 고모를 빼시고는 전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작은 고모 모두 천안에 살고 있어서
추석 아침에 살짝쿵 이동하면 되기에 좋습니다.
추석 전 날에는 오랜만에 윷놀이도 했지요. 언제나 그렇지만 윷놀이는 하기 전에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한번 씨작하면 극한 상황과 역전의 연속으로 최고의 게임이되고는 합니다.
저희도 그런 상황은 있었네요..
두개 팀으로 나눠서 했는데.
두 팀 모두 3개를 나고, 한팀이 마지막 칸에 있고, 한팀이 걸이면 나고 개면 마지막 칸에 있는 상황에서 ㅎㅎ
마지막 칸에 있던 팀이 빽도가 나왔죠 ㅎㅎ,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도면 잡고, 걸이면 나는데..ㅋㅋ
상대방은 개 ㅜ.ㅜ, 그리고 연속 빽도 들,,ㅋㅋ 한번만 던져 끝날 것을 엄청 던졌답니다. ㅎㅎ

추석이라고 가족 중에 가장 어린 진이가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었습니다. ㅎㅎ
쇼파에 앉아서 황제놀음을 하고 있네요 ㅎㅎ


차례상은 예전에 비해 많이 간소해 졌습니다. 전에는 훨씬 넓게 잘 차렸었는데..
점점 필요한 것만 올리게 되는 모양 입니다 ㅜㅜ



차례를 마치고, 맛있는 추석요리를 먹었습니다.
추석에 먹는 토란국은 참 맛있어요 ^^;
저는 개인적으로 전과 산적을 좋아합니다. ㅎㅎ


그렇게 아침도 먹고, 성묘를 지내러 홍성으로 갔습니다.
추석연휴가 짧았는데, 홍성에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좋았지요.
홍성 금마 에는 저희 성씨의 집성촌이 있습니다.^^;
집성촌이라니 조선시대 같이 들리기도하네요 ㅎㅎ
선산도 홍성에 있습니다. 산들이 많이 차기도 하고, 그래서 이번에 선산을 정리해서 납골묘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납골묘로 바꾼 후의 첫 성묘였습니다.


새로만든 납골묘를 보니, 벌써 제자리가 마련되어있더군요. ㄷㄷㄷㄷ
미리 사후에 있을 곳이 있으니, 뭐 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나쁜거 같지도 않고,
살아있는데 벌써 사후의 자리가 있는게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

저희 쪽 납골묘 말고도, 멀리에 같은 성씨의 다른 갈래에서 요번에 바꾼 납골묘도 멀리에 보입니다.
추석이라고 추석의 상징같은 밤들이 땅에 무수히 떨어져 있더군요, 묘 옆에 있는 밤들을 엄청 많이 주서왔습니다.^^;;

사촌 동생들이 요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증손자와 함께 할머니는 그늘에서 쉬고 계십니다. ㅎㅎ


저는 성이 '윤'씨 입니다.
윤이라는 성은 생각보다 많은 인구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성씨의 인구는
김 이 박 최 정(鄭) 강 조(趙) 윤 장 임 한 신 오 서 권 황 송 안 류 홍 전 고 문 손 양 배 백 조(曺) 허 남 심 유(劉) 노 하 유(兪) 정(丁) 성 곽 차 구 우 주 라 임 전 민 신 지 진 엄 원 채 천 방 ~~
이런 순서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보면 '윤'씨는 8번째로 많은 인구수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윤씨의 대부분은 파평 윤씨이지요. 거의 90% 정도는 파평윤 씨와 그 계열 인 것 같습니다.
파평 윤씨 는 태사공 신달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고려 태종의 개국공신이지요.
파평 윤씨의 유명인 물은 다들 아시는 윤관윤봉길, 윤증(성리학의 명사 - 문성공)이 있습니다.
그리고 1563년 영의정을 지낸 윤원형 또한 유명합니다.
또한 대대로 왕비가 많았지요.^^;

파평 윤씨는 단지 파평 윤씨 뿐아니라 큰 인물을 많이 배출하며 분적한 가문이 있습니다.
파평 윤씨의 시조 신달의 8세손으로 고려 명종 때 문과에 급제 남원의 반란을 막은 공을 얻어 분적한 남원 윤씨 가 있습니다.
남원 윤씨는 조선 숙종, 순조에 영의정에 추증된 윤휴, 윤행임이 유명하구요.
또 고려 원종 때 함안의 반란을 평정한 공을 세워 시작한 함안 윤씨가 있습니다.
중종 때 영의정에 오른 윤은보가 유명합니다.

이렇게 파평 윤씨와 그 분적의 윤씨가 윤씨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냥 윤씨이다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파평 윤씨이거니 하곤 합니다.

하지만 파평 윤씨 말고도 독자적인 본관을 가진 윤씨가 또 있습니다.

해평 윤씨는 시조를 문하시중을 지낸 신준으로 하고 고려 인종 때 시작하였지요.
가구수가 많지는 않지만 학자를 많이 배출한 훌룡한 가문입니다.
윤보선 대통령이 해평 윤씨입니다.

해남 윤씨 는 고려 때 존부가 시조입니다.
해남 윤씨에는 유명한 화가 윤두서와 시인 윤선도가 유명합니다.

또 윤씨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원 윤씨는 신라 무열왕에 시영이 시조가 되어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송 윤씨는 고려 예종 때 보승낭장 양비를 시조로하여
조선 성종때 영의정을 한 윤자운이 유명합니다.

양주 윤씨 는 시조를 고려시대 시사공 덕방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천 윤씨 는 고려때 호장 절생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예천 윤씨 는 고려 추밀부사를 지낸 충을 시조로 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윤씨에는 본관이 다른 많은 윤씨가 있습니다.
대부분이 고려시대에 시작하였구요.
칠원 윤씨만 신라시대에 시작하였지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본적이 있어도,
거의 대부분이 파평윤씨입니다.


저는 좀 드문 윤씨인 무송 윤시 입니다.

:: 무송윤씨(茂松尹氏) :: 
 
시조는 고려시대 보승낭장(保勝郞將)으로 호장(戶長)을 지낸 양비(良庇)이다. 그의 증손 택(澤)은 정당문학·첨의찬성사를 지냈고, 택의 손자 소종(紹宗)은 조선시대 병조전서(兵曹典書)로 《고려사》 편찬에 참여, 회군공신(回軍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소종의 아들 회(淮)는 세종 때 병조판서·대제학을 지냈는데 주호(酒豪)로 유명하였고, 그의 손자 자운(子雲)은 우의정·영의정을 지냈다. 또 자운의 5세손 형(泂)은 선조 때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호조판서·중추부판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4,119가구에 1만 338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백과사전)


▣ 유래 

  시조 : 윤비(良庇)
무송 윤씨는 원래 소호씨이다. 상고시대에 소호 금천씨 차비의 아들 반이 궁정이 되었는데 왕이 옹주의 윤성에 봉해서 윤씨로 하였다고 한다.
오계시대에 후손인 윤경이 병란을 피하여 무송(전북 고창)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송으로 하였다고 한다. 그후의 기록은 알 수가 없다.
시조 윤비는 고려 예종 때 보승랑장으로 무장현 호장을 지냈다.

- 윤비의 묘소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에 있다.

   
▣ 인물 
- 윤택(澤) : 윤비의 증손. 정당문학, 첨의찬성사를 지냈다.
- 윤소종(紹宗) : 윤택의 손자. 조선시대 병조전서(兵曹典書)로 '고려사' 편찬에 참여, 회군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 윤회(淮) : 윤소종의 아들. 세종 때 병조판서, 대제학을 지냈는데 주호(酒豪)로 유명하다.
- 윤자운(子雲) : 윤회의 손자. 우의정, 영의정을 지냈다.
- 윤형(泂) : 선조 때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호조판서, 중추부판사를 역임하였다.
 
▣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윤자운(尹子雲, 1415 乙未生) : 문과(文科) 세종26년(1444) 식년시 병과(丙科)
윤원(尹源, 1415 乙未生) : 문과(文科) 연산군1년(1495) 별시 병과(丙科)
윤사익(尹思翼, 1478 戊戌生) : 문과(文科) 중종9년(1514) 명경별시 을과(乙科)
윤자견(尹自堅, 1478 戊戌生) : 문과(文科) 태종11년(1411)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윤옥(尹玉,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윤지서(尹之瑞,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병과(丙科)
윤미견(尹彌堅,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세종8년(1426)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윤자영(尹子濚,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세조12년(1466) 발영시 삼등(三等)
윤회(尹淮,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태종1년(1401) 증광시 을과(乙科)
윤심(尹沈, 1511 辛未生) : 문과(文科) 중종29년(1534) 식년시 병과(丙科)
 
▣ 항렬자 
 



저는 아버지를 '세'자 돌림으로 하고,'선'자 돌림을 쓰는 26세손입니다. ^^;;
 

▣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
무송(茂松)은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무장면(茂長面) 지역에 있던 옛 행정구역명이다. 무장면은 무송과 장사(長沙)가 합쳐진 이름이다. 백제 때에는 송미지현(松彌知縣)과 상로현(上老縣)이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무송과 장사현으로 개명하였으며, 1417년(태종 17)에 두 현을 통합하여 무장현(茂長縣)으로 개편하였다. 1906년에 전라북도로 소속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무장군이 폐지되고 무장면으로 축소되어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무송윤씨는
1985년에는 총 2,470가구 10,320명,
2000년에는 총 4,119가구 13,38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시조는 고려시대 보승낭장(保勝郞將)으로 호장(戶長)을 지낸 양비(良庇)이다. 그의 증손 택(澤)은 정당문학·첨의찬성사를 지냈고, 택의 손자 소종(紹宗)은 조선시대 병조전서(兵曹典書)로 《고려사》 편찬에 참여, 회군공신(回軍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소종의 아들 회(淮)는 세종 때 병조판서·대제학을 지냈는데 주호(酒豪)로 유명하였고, 그의 손자 자운(子雲)은 우의정·영의정을 지냈다. 또 자운의 5세손 형(泂)은 선조 때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호조판서·중추부판사를 역임하였다. 2000년 인구조사에서 4,119가구에 1만 3384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http://www.surname.kr/ (성씨 사이트)
http://www.rootsinfo.co.kr/ (이하 뿌리 찾기 싸이트)



* 소호씨에 대해서 포스트를 찾았지만, 그 내용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http://blog.daum.net/nongaak/6774826 - 글을 읽어보니 소호씨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군요.
물론 소호씨가 무송 윤씨가 되었다고 소개를 하고 있구요.
위 글을 읽어보니 소호씨가 새를 섬기던 민간신앙과 관련이 있고, 동이족 중의 하나이며, 치우의 후예라고 써놓았군요.
진나라 '본기'에 진시황이 소호 금천 씨라고도 써 있고, 무슨 가야와도 관계가 있다고 하고,... 이 포스트는 소호씨를 동이 쪽으로 보려하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howon_choi?Redirect=Log&logNo=100062999186
이 포스트의 경우에는 소호씨가 황제의 아들이라고 하고 소호 금천 씨가 김해 김씨로 바꿨고
김부식의 사기에 김유신이 소호 금천씨라고도 쓰여있다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위 포스트 들은 재미로는 읽어 보았는데, 위 포스트가 사료를 바탕으로 쓴 것인지,
그냥 추측성이나 자신이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호씨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어서 ㅜㅜ 그냥 읽어만 보세요.



그리고 이런 책이 있습니다.^^; 소호씨 이야기라구요.



이 책에서도 소호씨가 새와 관련되었다고 하는 것 같고, 산동지방에 사는 동이족이였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번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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