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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路의 여행 -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대구 중구] (徐相燉 古宅, 李相和 古宅, Old Residence of Lee Sang-hwa & Seo Sang-don)

by 소이나는 2010.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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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路의 여행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대구 중구]

  (徐相燉 古宅, 李相和 古宅)
  (Old Residence of Lee Sang-hwa & Seo Sang-don)








대구 중구안에는
작고 오래된 집 두채가 있습니다.
바로 이상화의 고택과 서상돈의 고택입니다.
대구시에서는 이 두집과 함께 주변의 오랜 자취를 두고
근대로의 여행 이라는 컨셉을 잡고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과 서상돈 고택은 자그만하고
볼거리가 많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처의 약령시와 오래된 성당, 교회를 함께 보며
잠시 과거로 떠나갈 수 있습니다.









 

 

 

 

 

 












이상화 고택 (李相和 古宅, Old Residence of Lee Sang-hwa)



이상화는 일제 강점기에 비탄에 빠진 우리 민족의 정서를
언어로 승화시켜 한국 현대시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시인 입니다.

이 고택은 이상화가 말년인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상화[李相和, 1901.4.5~1943.4.25] 는 
대구(大邱)에서 출생하였습니다.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무량(無量)·상화(尙火, 想華)·백아(白啞)로 하고 있습니다.


7세에 아버지를 잃고, 14세까지 가정 사숙에서
큰아버지 일우(一雨)의 훈도를 받으며 수학하였습니다.

18세에 경성중앙학교(지금의 중동중학교)3년을 수료하고
강원도 금강산일대를 방랑하였습니다.

1919년 서울 중앙고보를 3년 수료하고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하였지요.

1922년 문예지 '백조(白潮)' 동인으로 활동하며
<말세(末世)의 희탄(欷嘆)〉 〈단조(單調)〉 〈가을의 풍경〉
〈나의 침실로〉 〈이중(二重)의 사망〉 등을 발표하고
이듬해 일본의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 및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1924년 귀국했습니다.
《개벽》지를 중심으로 시·소설·평론 등을 발표하고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에 가담하였으며
1935년부터 2년간 중국을 방랑하고
1937년 조선일보사 경북총국을 맡아 경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나이 40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여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불란서시정석〉 등을 시도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43세에 위암으로 죽었습니다.

특히, 〈나의 침실로〉는 1920년대 초기의 온갖 주제가 한데 결합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외적 금제로도 다스려질 수 없는
생명의 강렬한 욕망과 호흡이 있고,
복합적인 인습에의 공공연한 반역·도전이 있으며,
이 모두를 포용하는 낭만적 도주의 상징이자
죽음의 다른 표현인 ‘침실’이 등장합니다.

문학사적으로 평가하면, 어떤 외부적 금제로도 억누를 수 없는
개인의 존엄성과 자연적 충동(情)의 가치를 역설한
이광수(李光洙)의 논리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백조파’ 동인의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뛰어넘은 시인으로,
방자한 낭만과 미숙성과 사회개혁과 일제에의 저항과 우월감에
가득한 계몽주의와 로맨틱한 혁명사상을 노래하고, 쓰고, 외쳤던
문학사적 의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나의 침실로 -
                                                      - 이상화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 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음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숨는 두 별이어라. 

     마돈나! 구석지고도 어둔 마음의 거리에서 나는 두려워 떨며 기다리노라.
     아, 어느 덧 첫닭이 울고 - 뭇 개가 짖도다. 나의 아씨여, 너도 듣느냐. 

     마돈나! 지난 밤이 새도록 내 손수 닦아 둔 침실로 가자, 침실로!
     낡은 달은 빠지려는데, 내 귀가 듣는 발자국 - 오, 너의 것이냐 ?

      마돈나! 짧은 심지를 더우 잡고, 눈물도 없이 하소연하는 내 마음의 촛불을 봐라.
     양털 같은 바람결에도 질식이 되어 얕푸른 연기로 꺼지려는도다. 

    마돈나! 오너라, 가자. 앞산 그리매가 도깨비처럼 발도 없이 이곳 가까이 오도다.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 - 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마돈나! 날이 새련다. 빨리 오려므나. 사원의 쇠북이 우리를 비웃기 전에
     네 손이 내 목을 안아라. 우리도 이 밤과 같이 오랜 나라로 가고 말자. 

     마돈나! 뉘우침과 두려움의 외나무다리 건너 있는 내 침실, 열 이도 없으니 !
     아, 바람이 불도다. 그와 같이 가볍게 오려므나, 나의 아씨여, 네가 오느냐 ? 

     마돈나! 가엾어라. 나는 미치고 말았는가. 없는 소리를 내 귀가 들음은 --
     내 몸에 피란 피 - 가슴의 샘이 말라 버린 듯 마음과 몸이 타려는도다.

     마돈나! 언젠들 안 갈 수 있으랴. 갈 테면 우리가 가자, 끄을려 가지 말고 !
     너는 내 말을 믿는 마리아 - 내 침실이 부활의 동굴임을 네가 알련만.....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얽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느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마돈나! 별들의 웃음도 흐려지려 하고, 어둔 밤 물결도 잦아지려는도다.
     아, 안개가 사라지기 전으로 네가 와야지.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1926년 《개벽(開闢)》지(誌) 6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조국에 대한 애정을 절실하고 소박한 감정으로
노래하고 있는 이 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첫 연 첫 행의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구절입니다.

일제하의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몇 안 되는 시 가운데서도
이 시가 특히 잘 알려진 이유는 그 제목과 첫 연 첫 행의 구절이
매우 함축성 있게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대의 절약(節約) 속에 최대의 예술이 있다"라는 좋은 표본이 된 대표작입니다.












서상돈 고택 (徐相燉 古宅, Old Residence Seo Sang-don)



서상돈 고택은 1907년 국가 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국민, 한사람씩 돈을 모아 일본에게 진 나라의 빛을 갚자며
'국채보상운동'을 주장한 서상돈(徐相敦)이 살았던 고택을 복원한 것입니다.

서상돈은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13년까지 살았습니다..
민족운동가이며, 세례명은 '아우구시티노'로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증조부 때부터 천주교 가문이 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원도와 충청도로,
1839년 기해교난 때 경상북도 문경·상주 등지로 피난을 가고
1859년 대구에 정착하였습니다.
1866년 병인교난 때는 신앙문제로 문중에서 쫓겨나고 가산도 탕진해버렸습니다.
1871년 대구로 돌아온 뒤 독학을 하는 한편으로
지물(紙物)행상 및 포목상을 시작하였습니다.

1886년경 상당한 재벌로 부상하였으며,
이후 정부의 특명으로 경상도시찰관에 임명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대구교회 로베르(Robert, A. J., 金保祿)신부를 중심으로
교회발전에 힘썼으며, 시찰관에서 퇴임한 뒤
실업계의 중진으로 대구의 경제권을 좌우할 만큼의 갑부대열에 들었습니다.

그뒤 대구교구가 설립되자 이의 발전에 힘쓰는 한편,
성직자 돕기와 수녀보호에 솔선수범하였습니다.






한편, 외세의 국권침탈에 맞서 이의 수호에 앞장선
독립협회의 주요주도회원으로 활약하였는데,
독립협회 제4기 민중투쟁기에는
재무부과장 및 부장급의 일원으로 활약하였지요.

1907년 2월 16일 대구 광문사(廣文社)에서
그 명칭을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개칭하기 위한 특별회를 마친 뒤
광문사 부사장으로서 담배를 끊어
당시의 국채 1300만환을 보상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이 자리에 참석한 회원들이 2,000여환을 갹출하고,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로 하고 〈국채보상취지서〉를
작성, 발표하였습니다.

그 요지는 국채 1300만환은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된 것으로,
2천만국민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하지 않고
그 대금 20전씩을 거둔다면

1300만환을 모을 수 있으며,
나머지는 특별모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대구광문사 사장 김광제(金光濟) 등과 함께 전개한
국채보상운동은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 등을 비롯한
민족언론기관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여갔으나,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운동은 비록 일제의 방해로 뜻한 바를 이룰 수 없었으나









일제의 경제침탈과 국권침탈에 관하여 한국인들을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지요.

그러나 그 자금은
그뒤에 전개된 민립대학설립운동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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