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From-SOY ♣/하루의 흔적 Life

나를 눈물 짓게 한... 역사 (그냥 한번 읽어보셨으면...)

by 소이나는 2013. 6. 13.
반응형



구 서울역사 앞에 만들어진 강우규 의사 동상



오늘 'soy한국사'를 만들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부분을 작성하며, 한참 이런 저런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기분이 울컥하더니 눈물이 나왔다.

이 한국사를 정리한 것도 벌써 3년째이고 4번이나 내용을 바꾸었는데,

유독 이번 정리 기간에 눈물이 났다. 전에 한국사를 정리할 때에는 간략한 내용들을 요약해서 올렸는데,

아마도 좀더 자세한 사료들을 읽다 보니 마음이 심란해진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대한민국의 사람이 맞기는 한가 보다.


내가 눈물을 흘리게 된 것은  '이상설 선생'의 일상을 정리하다가 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였는데,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한 말이 갑자기 가슴에 와닿았다.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했으니, 몸과 유품은 불태우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


헤이그 특사로 한반도를 떠나 일제에게 사형선고를 받고 그리운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해외에서 살던 그가 50세도 되지 못하고 죽으며 남긴 말이다.


과연 그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이상설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독립운동가의 생을 보면, 

한평생 나라에 목숨을 바쳐 살아온 그들에게 어찌 추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상설 선생의  이 마지막 말에 눈물이 나며,

한국사를 만들며 내 마음을 슬프게 했던 내용들을 모아 올려본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해 투사가 되어라......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의 술을 부어 놓아라....."

윤봉길 의사의 편지의 애절함은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 후 멀리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하여 노동자로 일하다가

광복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단 2년만 더 살았다면, 그는 조국의 광복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는 청산리 전투에 대한 이범석 장군의 기록이다.

"아낙네들이 치마폭에 밥을 싸서 가지고 빗발치는 총알 사이로 올라와 입에 넣어 주었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여러 산을 속을 뛰어 다니던 자신의 고난을 잊고 아낙들의 감사함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우리의 뜨거운 피로! 보답하리!"

이미 그들의 헌신은 보답을 하고 남을 정도로 고맙다.


나라를 빼앗긴 후에 힘든 한반도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슬픈 노래를 보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시련을 볼 수 있다.

고향이란 곳이 가고 싶어도 갈 수없는 곳이 되었을 때의 심정은 가슴 한 켠을 비워 둔 것과 같으랴...



이는 청산리 전투 봉오동 전투 이후에 북간도 용정에서 일본이 저지른 참사에 대한 기록이다.

"늙은이든 어린이든 눈에 띄는 대로 사살하였다. 총알을 맞고도 죽지 않은 사람은 짚을 덮고 불로 태웠다. ~ 일본 병사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

일본 군에게 조선인은 늙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그저 반일본적인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윤동주가 살던 용정의 일송정에 올라본적이 있다.

아무도 내게 어떤 말을 건넨 사람도 없었거늘, 눈 앞에 펼쳐진 해란강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은 이런 과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송정에 있는 소나무는 조선인들이 신성한다는 이유로 나무를 뽑고 땅에 소금을 뿌려 다시 심지 못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지금은 다시 심은 작은 소나무가 하나 있는데 다시 세계속에 발전하는 우리의 태동을 보는 것 같았다.




개항이후 한일합방을 하기 전에는 3번의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 났다.

그 중에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인하여 일어난 을미 의병,
을사조약 으로 일어난 을사의병,
그리고 군대해산과 황제의 퇴위로 일어난 정미의병이 그것이다.


을사조약을 할 때 자결한 선조들은 나라에 대한 애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


이는 이러한 항일 의병 운동을 막으려 일본에서 추진한 대토벌작전에 대한 자료이다.

"촌락이 지금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회색의 잿더미가 ~ 의심이 나면 모두 죽였다."

위의 간도 참사와 비슷한 사건으로 수없이 죽어간 우리의 옛 선조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전에 뉴스에서 3.1절이 어떤 날인지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삼점일이라고 읽기까지 한다고...

그런데 그 당시의 외국인 들은 3.1절 소식을 접하며 크게 감동을 했다.


"조선에서 학생과 젊은 여성, 소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너도 틀림없이 감동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네루'가 한 말이다.

이런 감동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의 국민에게 잊혀져 간다는게 아쉽기만 하다.



그 당시에는 모든 동포들이 힘을 모아 함께 독립을 위해 힘썼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는 상해 임시정부를 만들며 운영해 오던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의 한 내용이다.

"지불할 여력이 없어 집주인에게 여러 번 송사를 겪었다. ~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얻어먹었다."

이 상황이 바로 대한민국의 가장 존경 받아야 할 인물 중에 한 분의 생활 상이다.



다들 학교 생활하면서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시를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을 올린다.



나의 소원


김 구

 

 

민족 국가

 

소원(所願)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大韓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 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自主獨立)이오.”

하고 대답할 것이다.

동포(同胞)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達)하려고 살 것이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칠십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 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하였거니와, 그것은 우리 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의 가장 미천(微賤)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貧賤)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富貴)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에 갔던 박제상(朴堤上)이

“내 차라리 계림(鷄林)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

한 것이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제상은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준다는 것을 물리치고 달게 죽음을 받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리라.”

함이었다.

근래에 우리 동포 중에는 우리 나라를 어느 큰 이웃 나라의 연방(聯邦)에 편입(編入)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하니,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 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 놈이라밖에 볼 길이 없다.

나는 공자(孔子), 석가(釋迦), 예수의 도(道)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聖人)으로 숭배(崇拜)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天堂), 극락(極樂)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댄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피와 역사(歷史)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못 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는 없는 것이, 마치 형제도 한집에서 살기 어려움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 명령(命令)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服從)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左翼)의 무리는 혈통(血統)의 조국(祖國)을 부인(否認)하고 소위 사상(思想)의 조국을 운운(云云)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國際的) 계급(階級)을 주장하여, 민족주의(民族主義)라면 마치 이미 진리권(眞理圈) 외에 떨어진 생각인 것같이 말하고 있다.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哲學)도 변하고 정치(政治), 경제(經濟)의 학설(學說)도 일시적이거니와,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내에서나 혹은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하여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거니와, 지내 놓고 보면 그것은 바람과 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에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左右翼)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風波)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信仰)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흥망성쇠(興亡盛衰)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사는[生]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오 내오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希望)이요 이상(理想)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四海同胞)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일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最善)의 국가(國家)를 이루고 최선의 문화(文化)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民主主義)요, 이것이 인류의 현 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任務)는, 첫째로 남의 절제(節制)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依賴)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 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精神力)을 자유로 발휘(發揮)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平和)와 복락(福樂)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 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 사회상으로 불평등, 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의, 민족과 민족의 시기(猜忌), 알력(軋轢), 침략(侵略),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報復)으로 작고 큰 전쟁이 끊일 사이가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人心)의 불안(不安)과 도덕(道德)의 타락(墮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끊일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生活原理)의 발견(發見)과 실천(實踐)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한 천직(天職)이라고 믿는다.

이러하므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 리 삼천만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自屈之心)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侮辱)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序曲)이었다. 우리가 주연 배우(主演俳優)로 세계 역사의 무대(舞臺)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武力)으로 정복(征服)하거나 경제력(經濟力)으로 지배(支配)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空想)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 나라의 청년 남녀(靑年男女)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使命)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樂)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댄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確信)하는 바다.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의 세계 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 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 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 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도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 투쟁은 끝없는 계급 투쟁을 낳아서 국토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이 이번에 당한 보복은 국제적, 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거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漢土)의 기자(箕子)가 우리 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였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 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몸소 국민 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요즘 한류라는 것이 전세계에 퍼져나가고 있다.

음악 장르에서 영화, 드라마, 쇼 그리고 이제는 여러 한국의 문화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땅 덩어리가 분단되어 더 작은 땅을 가진 나라에서 
지구촌의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문화를 만들고 있는 요즘의 대한 민국을 보면,
김구 선생의 소원이 조금씩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이렇게 또 다시 아까 흘렸던 눈물을 생각하며 소개글을 쓰니 괜시리 눈물이 고이네. ㅠㅠ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