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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조화가 아름다웠던 나바위성당, 화산천주교회 (Nabawi Catholic Church in Iksan-city, 羅岩聖堂, 華山天主敎會), 전북 익산 나바위 성당

by 소이나는 2014.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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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위성당 


Nabawi Catholic Church in Iksan-city

羅岩聖堂, 華山天主敎會



나바위 성당, 화산천주교회



나바위 성당



 명 칭

 익산 나바위성당 (益山 나바위聖堂), 화산성당

 유 형

 천주교 성당

 건립시기·연도

 1906년

 규모(면적)

 27만 8989㎡

 수량/면적

 628㎡

 소재지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6

 소유자

 (재)전주구천주교회유지재단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318호

 문화재 지정

 1987년 7월 18일







나바위 성지 가는 방법 

자가

 

서울 경기방면 (서울에서 약 2시간40분 소요)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천안분기점-'광주,전주,세종' 방면) → 연무IC에서 '강경' 방면으로 우측방향 → 산양사거리에서 '익산, 함열' 방면으로 좌회전 → 화산교차로에서 '나바위성지, 나바위' 방면으로 우회전 → '나바위 성지' 간판을 보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부산. 대구방면(부산에서 약 3시간 40분 소요)

남해고속도로(대저분기점-'창원,김해'방면) → 통영대전중부고속도로(진주분기점-'대전,통영'방면) → 익산포항고속도로(장수분기점-'익산장수고속도로, 익산,장수' 방면)→호남고속도로(익산분기점-'호남고속도로, 천안, 익산' 방면)) → 천안논산고속도로(논산분기점-'논산천안고속도로, 천안,공주 방면) → 연무IC에서 '강경' 방면으로 우측방향 → 산양사거리에서 '익산, 함열' 방면으로 좌회전 → 화산교차로에서 '나바위성지, 나바위' 방면으로 우회전 → '나바위 성지' 간판을 보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목포. 광주방면(목포에서 약 2시간 20분 소요)

서해안고속도로(죽림분기점-'군산,광주,일로' 방면) → 무안광주고속도로(함평분기점-'무안공항, 북무안' 방면) → 서해안고속도로(함평분기점-'서울,함평' 방면) → 군산IC('군산,북새만금' 방면) → 군산톨게이트 지나 계속해서 '익산', '논산' 방면 → 화산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나바위 성지'간판을 보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강경역 하차 → 대흥시장 정류장에서 333번, 50-1번 버스 → 화북 정류장에서 하차 (약 15분소요)

* 강경역에서 택시 이용시( 시간 : 5분), 요금 : 5000원

* 강경역에서 나바위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하실 수 있습니다. (약 한 시간 소요)


 고속버스


서울남부터미널 → 익산고속버스터미널(약 2시간 40분 소요) → 333번 버스를 타고 화북정류장 하차 

(익산에서 버스로 1시간 가량 소요되므로 서울에서 오실 경우 기차가 편리합니다.) 


부산종합버스터미널 → 익산고속버스터미널 (3시간30분 소요) → 333번 버스를 타고 화북정류장 하차 








강경에 들려 근대건축물의 매력에 빠져 해가 가는 줄 몰랐다.
해가 떨어질 때가 되어서 급하게 나바위 성당을 가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나바위 성당으로 향했다.
강경에서는 그렇게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채운산 부분의 정수장과 관사건물 등을 놓쳐 아쉽기는 했지만, 나바위 성당은 꼭 들려보고 싶었기에 아쉬움을 뒤하였다.
나바위성당은 전북 익산에 위치를 하고 있는데,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서 차로 5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강경은 전에는 전라북도였는데, 논산과 통합을 하면 논산시가 되고 강경이 충청남도의 관할로 바뀌게 되었다.
예전에는 논산보다 강경이 더 번화하였다.
강경은 일제시대에는 충청도 황금 같은 평야의 곡식을 금강 하구인 강경포구에서 실어 나르며 번창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유명한 장시였다.
현재는 젓갈 시장으로 유명하고 검찰청과 법원, 경찰서도 논산 시내에 있지 않고 강경에 위치하고 있다.
전에는 강경이 익산이었기에 익산에 위치한 나바위 성지와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다.
나바위 성지는 많이 들어만 보았지 사실 '성당이 하나 정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으로 들려 본 것인데, 나바위 성지에 도착하자마자 감탄사가 나왔다. 


처음에는 계단 아래 쪽에 있어 성당 건물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어 몰랐는데, 계단을 밟고 하나 하나 오를 때마다 점점 시야가 늘어나며 성당이 보이는데 독특한 하단부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난 것이다.

성당의 정면에 서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성당을 바라보았다.

계산성당, 공세리성당, 답동성당, 중동성당 등 한국에 있는 여러 성당 건출물 들을 보았는데, 이렇게 잠시 멍하게 바라본 성당은 나바위 성당이 처음인것 같다.



그런 성당의 모습에 놀란 후 성당의 옆 면으로 가보았는데, 정면에서 받았던 감탄사가 감동으로 바뀌었다.
성당 본당의 건물은  한식의 합각지붕이 아닌가!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한국의 건축 양식이 이렇게 조화롭게 만들어 졌다니...

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공세리 성당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나의 마음을 빼았아 버린 성당은 바로 이 나바위 성당이다.



나바위 성당은 조선 현종 11년(1845년) 한국의 최초의 신부로 유명한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금강 하구인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1906년 처음 성당이 만들어졌을 때에는 한옥 모습이 더욱 많이 남아 있었는데 1916년에 일본에서 온 페랑신부의 도움으로 외벽을 벽돌벽으로 바꾸는 공사를 하였으며, 이때 바깥 툇마루를 없애 회랑을 만들고, 전면에 벽돌조 종탑을 증축하였다. 

그 후로 1922년에 회랑을 보수하였고, 1980년대 이후 6차례이상 보수 및 주변 증축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이러한 역사성과 건축양식으로 인해 나바위 성당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318호) 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나바위 성당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미사가 진행 중이기에 따로 성당 내부의 사진을 찍지는 못하였고, 어찌 인터넷에서 사진 한장을 구해 보았다.



내부공간은 중앙 열주에 의해 양분된다. 남녀석을 구분하기 위해 기둥 사이는 칸막이가 있었으며, 제대가 있는 부분에서는 중앙 열주를 멈추어 시각을 확보하였다. 

이 지점에 양 기둥 사이에 영광의 아치를 설치하여 성단과 회중석 공간을 분절시켜 주고 있다.

완전한 중층구조는 아니지만 낮은 툇칸의 부섭지붕에 의해 광창의 설치가 가능하고 종축성이 강조된 점 등이 되재성당(1894) 보다는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이다. 

특히 남녀 구분의 내부공간 구성은 유교문화의 바탕 위에 가톨릭을 수용한 한국 천주교회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성당 내부의 오른쪽 작은 제대 감실 안에는 성 김대건 신부의 목뼈 일부 유해와 다블뤼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고, 성당 제대 주변에 있는 세례대와 성상들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한 것으로 성당 건축 때 들여와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나바위 성지가 있는 곳은 금강이 보이는 작은 산이다.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에는 화산(華山)이 있는데, 산이 너무 아름다워 우암 송시열이 붙여 준 이름이라고 한다.

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 위대한 성리학자이고, 정치계와 사상계를 호령하던 인물로 대전 출신인데, 대전과 멀지 않은 이곳까지 들려본 모양이다.

산의 한쪽으로는 금강이 굽어보이고, 한쪽으로는 은진과 충청도로 펼쳐지는 광활한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언덕이었다. 

이 산의 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넓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나바위(羅巖)’라고 하여  이 성당을 화산천주교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바위 성당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다른 지역의 명칭과 혼돈이 되기도 하고 해서 1989년부터 지금은 나바위 성당이란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나바위가 있던 곳은 평야와 가깝고 금강이 흐르고 있어 정부미를 실어나르는 나루였고, 정부미 창고가 있었는데 이것을 나암창(羅巖倉) 또는 황산창(黃山倉)이라 하였다. 

또한 포구가 있던 이 곳에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던 장소가 되었고, 신자들도 모이게 된 장소이다.

전라도 지방의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907년의 신자수는 2,900여명이 되었고 1930년경에는 3,200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의 주변 교회, 성당들과 마찬가지고 일제시대에는 신사 참배 거부에 앞장섰고, 한국전쟁 중에도 미사가 끊이 않은 유일한 본당으로 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도 갖추고 있다. 

성당의 뒤편의 성모 동산을 오리면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볼 수 있고 그 옆에는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베로모렐 신부가 드망즈 주교를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도 있다.

망금정 아래까지 금강 강물이 넘실거렸으나 1925년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간척하면서 금강 줄기가 바뀌어 지금은 비닐하우스로 뒤덮인 평야로 변했다.

이 곳의 모습은 다음에 다시 소개해 보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성모동산 뒤편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어, 예수의 고난 과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나바위 성당이 미사시간은 다음과 같다.

나바위성당 홈페이지 : www.nabawi.kr/


또한 성지 답게 피정의 집이 있어 숙박과 식사가 가능하고, 위에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현재 피정의 집 숙박은 1박에 12000원을 하고 있다.



성당을 둘러보고, 천천히 십자가의 길을 지나, 작은 산인 화산에 올라 김대건신부의 순교탑을 보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니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성당의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니, 낮에는 전국에서 많은 신자들이 나바위 성지를 들리고 갔다고 한다.

처음에 도착하여 시작한 토요일 저녁 미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었고, 흰머리의 노부부가 성경책을 손에 들고 내가 내려왔던 산 위로 올라가고 있다.











한국적인 가 살아 있는 나바위 성당


나바위성당(羅岩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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