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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식당 ♠/전라 제주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주 전동성당 (全州殿洞聖堂, Jeondong Catholic church in Jeonju-city, 殿洞聖堂司祭館, 전동성당 사제관)

by 소이나는 2015.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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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주 전동성당

全州殿洞聖堂, Jeondong Catholic church in Jeonju-city





전주의 전동성당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그리고 들려보았을 곳이다. 그리고 나 또한 전주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들리고 싶었던 곳이 바로 전주 전동성당이었다. 익산의 나바위 성당, 아산 공세리 성당, 대구 계산성당, 인천 답성성당, 서울 명동성당 등 바로크 양식, 로코코양식, 고딕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등 오랜 유럽의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 주는 아름다움은 얼마나 벅찬 감동이겠는가... 많은 곳을 여행하였지만, 이제서야 전동성당을 들러보았다는 것이 스스로도 의아스럽게 다가왔다. 



전동성당에 도착하여 한눈에 펼쳐진 성당의 모습은 기존에 보아왔던 성당과는 다르게 웅장함이 먼저 느껴졌다. 이전까지는 작고 아기자기하고, 자연과 조화스러운 느낌의 성당 분위기를 많이 느꼈는데, 전동성당은 압도적인 힘으로 마음을 잡는 멋을 가지고 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곳이 있다면 인천의 답동성당인 것 같다. 답동성당 또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인데, 나는 로마네스크에서 웅장함을 느끼는가 보다. 규모면에서 인천의 답동성당보다 전주의 전동성당이 더 크고, 부드러운 선이 살아있는 답동성당에 비해 전동성당의 선이 더욱 곧아서인지 더욱 샤프하고 웅장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다. 답동성당이나 전동성당이나 189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비슷한 시대의 개화기에 로마네스크 양식 또한 많이 지어졌나보다.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서울에 위치한 성공회성당이 유명한데, 성공회성당은 전동성당과 답동성당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서울성공회성당의 건축시기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기로 시기적인 차이와 카톨릭과 성공회 성당의 차이점이 나타난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은 10세기 후반에 일어나 12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발전한 유럽의 건축을 설명하는 용어이다. 잉글랜드의 로마네스크 건축은 노르만 건축이라고도 불린다. 그러하기에 잉글랜드에서 유행한 성공회 또한 그러한 양식의 성당을 만들고 있다.


서울 성공회 성당


로마네스크 건축은 그 당시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석재구조를 사용함으로 육중한 특질, 두꺼운 벽, 둥근 아치, 튼튼한 기둥, 그로인 볼트, 큰 탑과 장식적인 아케이드(늘어선 기둥 아래의 공간)로 잘 알려져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 비잔틴 양식


모든 건물은 명확히 정의된 형태를 가지고 상당수가 규칙적이고 대칭적인 평면을 가진다. 그래서 전체적인 외관은 그 뒤를 잇는 고딕 건축에 비교하면 단조로워 보인다. 이 양식은 지역적 특징과 다른 재료들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역에 잘 알려져 있다.



전주의 전동성당은 호남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처음 이 성당은 천주교 순교지인 풍남문 밖에 세웠으나 후에 현재의 자리에 확장해 지은 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장방형의 평면에 외부는 벽돌로 쌓았으며 중앙과 좌우에 비잔틴 양식의 종탑이 있다. 성당건축에 사용된 일부 벽돌은 당시 일본 통감부가 전주읍성을 헐면서 나온 흙을 벽돌로 구웠으며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에서 나온 돌로 성당의 주춧돌을 삼았다고 한다.



1891년(고종 28)에 보드네(Baudenet)신부가 성당의 대지를 매입하고, 그 뒤 1908년 프와넬(Poisnel)신부의 설계로 착공하여 1914년에 준공을 보았다. 


전동성당 초대 주임신부인 보드네 신부 (윤사물 신부)


벽돌로 된 완전한 격식을 갖춘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 건물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외양상 유사한 점이 많으나 건축양식상으로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회색과 적색의 이형(異形) 벽돌을 사용하여 섬세한 모양을 꾸며낸 점은 같으나 반면에 아치의 모양이나 종탑의 양식은 전혀 다르다. 


피에타 상 (자비를 베푸소서)


내부 열주(列柱)는 8각의 석주(石柱)로 되어 있으며, 정면 중앙의 종탑부는 12개의 채광창을 돌린 12각형 고상부(鼓狀部) 위에 12각의 총화형(葱花形)으로 된 둥근 지붕을 얹었고, 좌우에는 그보다 약간 작은 8각형의 고상부 위에 8각의 지붕을 얹었다. 두툼한 외부 벽체와 반원아치의 깊숙한 창이 로마네스크양식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명동성당이 내부 열주 사이를 뾰족한 아치로 연결한 아케이드인 데 반하여, 이 성당은 8각 석주 사이가 반원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전동성당은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을 꼽을 때에 충남 아산에 있는 공세리 성당과 순위를 다투고 있는데, 두곳 모두 영화 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것은 비슷하나, 두 성당의 분위기는 정반대의 느낌이다. 전동성당이 곧은 선과 웅장함으로 남성적인 힘을 보여준다면, 공세리성당은 고딕양식으로 지어졌지만, 고딕양식의 특징과는 다르게 섬세하고 아담하며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어느 사람의 판단에 따라 두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의 선정이 바뀌기는 하지만 아름다움의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고, 경험해 본 자가 더 아름답다고 하는 곳이 두 곳 중에 더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것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말을 함에서 지극히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느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은 전동성당도... 공세리성당도 아닌.. 전북 익산의 나바위 성당이었다.



전동성당을 보고 첫 느낌은... '와~ 멋지다.'. 공세리 성당을 보고 첫 느낌은... '아~ 아름답다.' 분명 내게 멋진 찬사가 나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나바위 성당은.. 그러한 감탄사가 나오지도 못했다. 그저 시야에 들어온 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성당이었기 때문이다. 한옥과 고딕양식이 만난 조화로운 모습이 놀라운 것도 있었지만, 성당 뒤편의 한옥 양식을 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고, 그 뒤로 보이는 기와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오는 정말 최고의 성당이었다. 전동성당이나 공세리성당은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이 나바위성당이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어찌되었건.. 규모와 웅장함 면에서는 전동성당이 최고이다. 외부의 모습에서도 그 웅장함을 살펴볼 수 있고, 내부에서도 웅장함을 볼 수 있다. 높고 둥근 아치형 천장을 바라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분명 전동성당은 멋지다.



전동성당의 뒤편에는 다른 성당과 마찬가지로 사제관이 자리하고있다. 1889년 초대 주임신부인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보두네(한국명 尹沙物)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푸아넬(한국명 朴道行) 신부의 설계로 본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사제관은 본당을 세운 뒤 2대 주임신부였던 라크루(한국명 具馬瑟) 신부가 1926년에 건축하였다. 이 건물은 1937년 전주교구청사와 교구장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이후부터는 주임신부와 보좌신부의 생활공간으로 쓰였다. 3층 건물로 전동성당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본당과 같이 북향하고 있다. 건물 중앙에는 2층 현관으로 연결되는 주 출입구가 있으며 1층의 출입구는 건물의 남쪽에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데 1층 부분은 깬돌 허튼층쌓기를 하였고 창 주변은 벽돌로 둘러싸여 있다. 2, 3층 창대에는 화강석을 설치하였고 창틀 외곽은 벽돌로 리아스식 쌓기를 하여 치장하였다. 지붕의 형태는 모임지붕으로 골함석잇기를 하였는데 지붕면 네 곳 중앙에 도머창을 설치하였다. 


전동성당 사제관


전동성당의 사제관은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외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당시의 건축기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1926년에 세워진 서양식 건축으로 전동성당의 본당과 더불어 역사적 가치가 큰 근대 건축물이다. 2002년 4월 6일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78호로 지정되었고, 전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에서 소유, 관리한다. 



전주 전동성당은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尹持忠:1759∼1791)과 권상연(權尙然:1751∼1791)의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있었으므로 천주교회사에서 전동은 자연히 순교지의 하나가 됐다. 



감영이란 조선시대 각도의 관찰사가 거주하던 곳으로 지금의 도청과 비슷하지만 군사, 경제, 정치, 사회, 법률 등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였기에 지방에서의 권한이 막강한 기관이다. 개화기에 유교사상 및 왕권사상에 충돌하는 서학인 천주교가 들어오고 많은 박해가 이루어지며, 감영이 있던 곳에서 천주교인들을 처단하게 되었고 그러한 곳들은 지금 천주교의 순교 성지가 되어 있다. 정조 15년(1791)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순조 원년(1801)에 호남 첫 사도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윤지헌(프란치스코) 등이 전라 감영이 있던 이곳에서 박해를 받고 처형됐다.



또한 조선 후기에 충청 감영이 있던 공주에서도 이러한 박해가 이루어졌고, 지금은 황새바위성지가 되어 순교자를 기리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도 천주교 성지가 많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또한 감영이 있던 곳에 천주교 교인들의 활동은 더욱 두드러져 멋진 성당이 역사속에 세워졌기에 공주와 대구를 찾는다면 공주의 중동성당과 대구의 계산성당을 찾아가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한반도 남쪽 충청, 전라, 경상... 삼도의 감영과 박해 그리고 현재, 헌법 제20조에 쓰여진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비단 천주교만이 아닌 기독교, 불교, 유교, 민간신앙에 이슬람에 이르기 까지... 진정한 종교의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아름다운 성당만큼... 아름다운 신을 받아 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전주 전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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