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례교 최초 예배지
江景浸禮敎會, Ganggyeong Baptist Church
한국 침례교 최초 예배지, 한국 침례교회 발상지,
구 강경침례교회
구) 강경침례교회, 한국 최초 예배지
강경이란 마을은 예전의 영광을 뒤로하고 작은 마을이 되었는데, 이 작은 마을에 유독 많이 보이는 것이 교회이다.
강경제일교회, 강경성결교회, 강경침례교회 등 현재의 교회 들도 많이 있는데,
전에 소개했던 북옥교회 (구 강경감리교회)와 강경 근처에 있는 나바위 성지를 비롯하여, 지금 들려보는 한국 침례교회의 최초 예배지까지 역사적인 장소도 많이 있다.
강경의 옥녀봉에 올라 금강의 수려한 풍경을 즐기다 보면, 정자 아래 초가집이 하나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최초의 예배지이다.
옥녀봉의 정자
옥녀봉 아래 초가집
강경의 갑문 방향이나 전망대 부근에서 옥녀봉으로 온다면 옥녀봉에 오르는 길에 구 강경침례교회인 이 초가집을 볼 수 있고,
강경의 동편이 덕유정과 오래된 골목길을 지나서 옥녀봉을 온다면 옥녀봉을 내려가는 길에 이곳을 들려볼 수 있다.
옥녀봉 올라가는 입구에 쓰여진 한국 침례교회 발상지 길 안내
구 강경침례교회는 한국 침례회 국내 최초 예배지이기도 하면서,
1889년의 창립예배 이후 1896년에 창립된 강경침례교회는 논산 지역 개신교 중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슬레이트를 친 무너진 집 한채였는데, 2013년에 복원을 하였다.
오랜 기간 방치되어있다가 근래에 들어 복원이 된 것이다.
구 강경침례교회
당시 초가 가옥 모습과는 다르게 슬레이트 지붕에 덧 달아낸 모습이었던 최초 예배지 강경 침례교회는 충청남도 문화재위원의 자문, 당시 모습을 기억하는 침례교회 관계자의 고증과 회의를 거쳐 현재 모습으로 복원을 완료했다.
한편 한국 침례교회의 역사는 지난 1889년 12월 초 서울에 도착한 캐나다의 독립선교사인 말콤펜윅(Malcom C. Fenwick)의 선교사업과 더불어 시작됐다.
엘라 씽 기념 선교회에서 1895년에 파울링 선교사 부부, 아만다 가데린양 등 선교사 3인을 제1진 한국 선교단으로 파송했다.
이때 인천에서 강경으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씨가 1895년 전도되어 서울에서 침례를 받고 강경으로 내려와 1896년 2월 9일 주일에 강경 북옥리 자택에서 파울링 선교사 부부, 아만다 가데린양, 부인 천성녀씨 등과 예배를 드리면서 한국침례교회의 첫 예배를 하게 됐다
1906년 본 교회에서 침례회 최초의 총회가 열렸으며, 그때부터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로 발전하였다.
1943년 5월 일제의 탄압으로 옥려봉 일대 교회 대지 9,900㎡가 신사당으로 몰수됨으로써 강경침례교회는 잠시 문을 닫기도 하였다.
그러나 8·15 해방이 되자 윤석훈·라상순 집사와 성도들의 노력으로 강경읍 홍교리에 있던 일본인들의 사찰을 교회당으로 삼아 다시 교회를 열었으며, 이종덕 목사가 초대 담임으로 부임하였다. 6·25전쟁 당시 교단 총회장이었던 이종덕 목사는 9·28 서울 수복 시 퇴각하던 공산군에게 금강 변 갈방으로 끌려가 순교하였다.
1951년 김용해 목사, 1953년 박성태 전도사, 1956년 김장해 목사, 1960년 윤석훈 목사, 1963년 김종운 전도사, 1966년 최낙규 전도사, 1968년 유흔태 전도사의 사역과 성도들의 믿음으로 1971년 유흥래 목사 안수, 윤칠원과 문헌봉을 집사로 안수한 후 1972년 강경읍 남교리 82-12번지[옥녀봉로 10] 660㎡를 매입하여 강경침례교회 건물을 신축 이전하였다.
1974년 정호일 목사 부임 및 성전 완공과 목사관을 건축하였고, 1977년 윤칠국 집사 안수 헌당예배를 드렸다.
1986년 교회 부지를 확장하기 위해 강경읍 남교리 103번지[옥녀봉로 10] 712.8㎡를 매입하였으며, 익산시 성당면 성당리 산71-8번지의 대지 4,620㎡를 묘지로 매입하였고,
1991년 박창근 목사 부임 부활의 신앙으로 순교회 전통을 이어받아 1996년 강경침례교회 100주년을 맞았다.
오랜 역사를 가진 초가집 교회는 그 기억을 찾아 발전하는 중이지만, 아직은 작은 초가집으로 복원된 것이 전부이기에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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