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교회 중 유일한 한옥교회
북옥감리교회
북옥교회, (구) 강경교회
Bugok Methodist Church in Ganggyeong,
江景 北玉監理敎會
강경 덕유정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아 상쾌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덕유정에서 나와 강경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인 옥녀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옥녀봉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옥녀봉으로 향하였는데, 옥녀봉으로 가는 길이 오래전과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옥녀봉 입구에는 많은 벽화가 그려져 정겨운 이미지를 만들었고, 옥녀봉으로 올라가는 길도 정비된 것인지 깔끔해져 있었다.
벽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그저 띄엄 띄엄 있는 그림들이 적게 느껴지지만, 너무 많은 벽화가 있어 산만해 보이는 느낌 보다는 이렇게 어쩌다 보이는 벽화가 고즈넉한 강경과는 더욱 어울리는 것 같다.
옥녀봉 가는 길
벽화가 그려있는 옥녀봉 주변 마을
작은 담벼락의 정겨운 그림들
벽화들을 보며 옥녀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오래된 교회가 하나 보이는데, 예전에는 북옥감리교회라고 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교회 앞에 (구)강경교회 라는 이름으로 되어있기도 하다.
예전에 아침마다 조깅을 하여 옥녀봉에 올랐을 때에는 길도 좋지 않고, 이런 북옥교회도 보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옥녀봉 주변이 깔끔하게 정비되니 북옥교회도 더욱 눈에 띈다.
강경에는 강경상고 관사·구 한일은행·중앙초등학교 강당·남일당한약방·북옥감리교회 등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 많다.
그중에 등록문화재 제42호인 북옥감리교회는 현존하는 개신교 교회 중 유일한 한옥 교회로, 강경뿐 아니라 금강 연안지역 기독교 선교역사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강경 북옥감리교회
강경교회, 북옥감리교회
위치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73번길 8
등록문화재 제42호(2002.09.13 지정)
강경은 작은 마을이지만 유독 교회가 많이 있는 곳이며, 의미 있는 장소도 많이 있다.
우리 나라의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한반도에 도착한 천주교 성지인 나바위 성지가 강경 근처에 있으며, 강경에는 김대건 신부의 유숙지가 있다.
또한 한국 침례교회의 최초 예배지이자 발원지가 옥녀봉 아래에 있고, 또한 기독교의 유일한 한옥교회인 이 북옥감리교회도 있다.
여러 역사적인 종교 성지가 주변에 많이 있기에 많은 교인들이 강경을 찾아 오기도 하지만, 비단 종교인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역사적인 곳이기에 의미가 있다.
북옥교회는 강경성결교회로 출발했다.
1918년 12월 정성달 목사가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후 1923년에 이 교회는 한옥 예배당을 건축하여 38년 간 성결교회로 있다가 교회가 부흥하여 홍교동으로 이전하였다.
북옥교회는 당시 홍교동으로 옮기지 않은 교인들이 송기섭 목사를 중심으로 교파를 감리교, 교회명을 강경교회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구임호 목사가 현재의 북옥교회로 교회명을 다시 변경하였다.
건물은 1923년 이인법 목사가 설계했는데, 기와지붕을 얹어 한옥의 구조를 차용하면서도 교회라는 기능에 맞게 사각형 평면으로 설계한 점이 전통적인 한옥비례와는 다르다.
구조는 전체적으로 나무를 끼우고, 얹고, 맞추어 연결한 가구식 구조이며, 단면에 있는 도리(道里)의 수가 9개인 9량 구조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한국 전통 목조건축에서 가구란 기둥을 중심으로, 창방(昌枋)·평방(平枋)·도리·서까래를 가리키는데, 건축물의 틀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라 할 수 있다.
북옥감리교회는 가구 기법과 내부 형태 등은 전통 기법을 따르고 있지만, 고주(내부에 있는 기둥으로 외부 기둥보다 높이가 높아 고주라고 함)에 결구된 대들보 위에 중보를 얹고 그 상부에 종량을 얹은 방식은 초기 기독교 한옥 교회의 건축 양식을 따른 것이다.
서까래는 추녀에 뿌리를 결구시킨 말굽서까레 배열로 일제강점기의 배열 기법을 나타내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로 팔작지붕을 이룬다.
내부는 벽돌조 위 회반죽 마감으로 처리하고 연등 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단순한 목조 건축의 구조미를 나타낸다.
당시 남녀유별의 유교적 풍습에 따라 교회 전면에 문을 2개 만들어 남자와 여자의 출입구를 따로 구분하였다.
또한 대들보를 좌우로 남녀 신도가 따로 앉았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당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옥녀봉으로 향하는 길의 벽화 중에는 이곳 북옥감리교회의 역사적 모습을 그려 놓은 벽화도 있기에, 그림으로 북옥감리교회의 지나온 세월을 쉽게 느낄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구 강경성결교회는 존 토마스 목사가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일본인 들이 방해를 하여 영국과 일본간의 외교문제가 되었고,
존 토마스 목사
주일학교 최초로 일본의 신사참배에 거부 운동을 한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벽화가 먼저 보인다.
신사참배 거부운동
또한 예배는 일제시대부터 6.25가 치려지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한번은 폭탄이 예배당으로 떨어졌으나, 불발이 되어 사람들이 살아남기도 했다고 한다.
6.25와 예배당
한국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은 예배
이러한 역사적 의미가 깊은 북옥감리교회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다가, 요즘에 되어서야 관리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 강경지역의 오래된 역사적인 근대화 건물들이 재정비 된 것이 모두 얼마 되지 않았다.
구 한일은행 건물 같은 경우에는 젓갈 창고같이 쓰여지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시장으로 다시 개관하였다.
이제라도 이렇게 보존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또 이런 보존을 거쳐 강경이 더욱 여행하기에 좋은 장소가 되었다.
구 강경성결교회 환원 소사 기념비
북옥감리교회를 지나면, 강경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옥녀봉에 오를 수가 있다.
북옥감리교회 근처의 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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