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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여행은 이곳에서 부터~ 강경제일감리교회 근대역사전시관 (江景 近代 歷史 展示館, Ganggyeong modern history museum)

by 소이나는 201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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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여행은 이곳에서 부터~ 

강경제일감리교회 근대역사전시관

江景 近代 歷史 展示館

Ganggyeong modern history museum






강경 근대역사전시관


강경을 여행을 하며 가장 먼저 들려야 할 곳이 있다면 강경의 근대역사전시관이다.

이곳을 가장 먼저 들려야 할 이유는 강경여행의 모티브를 잡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경여행이라함은 190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의 근대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고, 두번째가 젓갈과 관련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젓갈은 금강 주변에 있는 젓갈 전시관에 들려 그 모습을 살펴보면 좋고, 근대화의 여행은 이곳인 근대역사전시관에서 시작하면 좋다.

그리고 특히 강경여행을 하기에 좋은 가이드 카탈로그를 근대역사전시관에서 얻을 수 있기에, 그 카탈로그를 보며 강경여행의 순서를 잡는다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강경의 근대역사전시관은 강경역과 강경터미널에서 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기에 가장 먼저 들리기에도 최적이다.

터미널 뒤 쪽의 황산초등학교 맞은 편에 강경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교회인 강경제일감리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 안에 근대역사전시관이 자리잡고 있다.


황산초등학교 앞의 모습


예전에도 강경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교회였는데, 강경의 모습이 변한 것이 없어 아직도 큰 규모에 눈에 띄는 교회이다.

강경의 건물들이 전부 낮아서 어찌보면 중세 유럽의 큰 교회와 주변 농노들이 사는 모습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강경제일감리교회



강경제일감리교회


강경은 개화기 시대에 금강을 따라 번성했던 마을이고 조선시대 3대 시장인 은진장이 있던 곳이기에 근대의 서양 문물도 많이 들어오고, 그러던 중에 서양 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가 유입되어 역사가 깊은 교회가 많이 있는 곳이고, 강경제일감리교회 또한 그러한 곳이다.



근대 역사 전시관은 강경제일감리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근대역사전시관




근대역사전시관의 관람시간은 화요일~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5시)에 운영이되고 있다.

하지만 근대역사전시관으로 향하여 문을 열려한다면 문이 굳게 닫혀있을 것이다.



사실 이곳을 관람하는 여행객이 그리 많지는 않아 평소에는 문을 닫아 두고 있는데, 이곳을 관람하고 싶다면 근대역사전시관 맞은 편에 교회 아래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말을 하면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관람을 다 한 후에 다시 그곳에 관람이 끝났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근대역사전시관은 전체적으로 옛사진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개화기시대의 사진과 강경의 근대화 시절의 사진을 즐길 수 있어 좋은 곳이다.




개화기 시대 모습



역사적인 개화기의 시작으로 처음으로 시작되는 인물은 흥선대원군인 이하응이다.


흥선대원군


우리에게 쇄국정책으로 유명한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로 서울에 위치한 운현궁에 들리면 그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흥선대원군은 당시 외세에 밀리던 청나라의 상황에 위기를 느끼고, 위정척사파의 영향을 받아 쇄국정책을 펼치며, 한편으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경복궁을 재건하고 호포전, 동포전을 발행하고, 서원을 철폐하는 등 많은 변혁을 노렸지만 결국 열강의 침입을 이겨내지는 못하였다.


순종과 고종


열강의 침입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갑오개혁, 을미개혁, 광무개혁 등을 통하여 나라의 발전을 도모 하였고, 러시아, 청, 미국 등을 활용하여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대한제국은 설자리를 잃게 되었고, 순종대에 이러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게 된다.


1900년대 광화문의 모습

명성황후와 개화기 대한제국

삼일천하로 끝이 났던 갑신정변외교권을 빼았긴 을사조약, 사법권을 빼앗긴 정미조약





일제강점기의 사진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후 일본의 통치가 시작되고 나라를 찾기위한 동포의 처절한 독립운동이 전개된다.

그러던 중 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잃는다.



전시관에는 안중근과 이상재, 유관순, 안창호, 김구, 이승만, 윤봉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비밀정치결사단체 신민회안중근 의사이상재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이봉창

일본의 학살이 자행된 훈춘사건

일본의 만행이 이루어졌던, 간도참변, 남한대토벌위안부의 슬픔1930년대 일본의 창씨개명 여부일제의 강제수탈

독립신문

독립문




한국전쟁 6.25


한강철교를 건너는 사람들

전쟁 중 모든 경찰관이 순직한 강경경찰서





근대화 시대와 종교


전시관은 교회에서 만들어진 곳이고, 강경 지역이 근대화 시대에 서양 종교의 유입이 많았던 곳이기에 근대화 시절 천주교와 개신교의 발전상을 전시해 놓기도 했다.



구한말 한반도에 들어와 활동을 한 외국 선교사들의 사진과 활동 모습을 살펴 볼 수도 있다.


침례교, 남 장로회, 북 장로회, 성결교, 구세군, 성공회


강경이란 작은 마을에 유독 교회가 많이 있는데, 아마도 교회 역사적으로도 강경이란 곳이 뜻 깊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침례교 최초의 예배지가 있는 곳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한반도에 발을 딛은 곳이며 또한 김대건의 유숙지가 있고, 최초로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강경성결교회인 북옥감리교회가 있는 곳이 강경이다.



서양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들어와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부분이 병원과 학교인 것 같다.

대한제국의 최초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 광혜원(제중원)이 안견으로 이름을 바꾼 선교사인 알렌에 의해 운영되었고, 그밖의 많은 의료활동을 거치게 된다.

학교의 설립도 많았는데, 지금도 유명한 최초의 사립 학교인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최초의 여자 사립학교인 스크랜튼이 세운 이화학당, 최초의 지방 사립학교인 배어드가 지은 숭실학교 등이 이때에 세워진 것이고, 그밖에 언더우드가 지은 경신학교, 앨러스가 지은 정신여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강경의 옛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강경의 옛 모습을 볼 수 있는 전시로 이어진다.

1900년대의 강경의 건축물 사진과 그 후 이어지는 강경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아직도 사진의 건물이 강경에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대화 건물은 사라진 상태이다.


강경의 근대 건축물 사진신한다이아몬드 공업 건물강경의 옛 상점


강경의 오래된 집들


사진을 통하여 강경의 과거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사진의 모습을 강경을 여행하며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전시관의 전시가 마을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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