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라고 하는데 십자가도 없고, 건물은 활용이 된지 오래되었는지 문이 잠겨있고 방치되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저 독특한 집을 쓰던 어떤 종교의 교회이구나 하며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Family Federation for World Peace and Unification, 世界平和統一家庭聯合)이란게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통일교라고 한다.
1954년 문선명(文鮮明)이 창시한 종교로 한번쯤은 다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사실 통일교라는 것을 많이 들어보기도 했고, 예전에는 뉴스에서 간간히 어느 나라에서 합동 결혼식을 한다는 것을 듣고 했는데, 통일교에 대해서 아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
합동결혼은 통일교의 큰 사업중에 하나가 '축복'이라고 부르는 합동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문선명 교주의 주례하에 1960년부터 수차에 걸쳐 합동결혼식이 실시되었고, 1992년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 개최시에는 3만쌍의 국제가정을 탄생시켰는데, 그래서인지 이렇게 가정교회라고 부르나 보다.
1995년 36만쌍, 1997년 3960만쌍, 1998년 3억6천만, 1999년, 3억6천만쌍의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거행하였고, 2000년 2월 13일에는 제1차 4억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이 서울 잠실스타디움에서 열린 바 있다.
그러고 보니 2000년쯤 경부고속도로로 대전에서 상행선을 타고 가고 있었는데, 수많은 버스에 저 합동결혼을 달고 서울로 향하던 걸 본 기억이 나기도 한다.
사실 뉴스에서 들어본 그 합동결혼식 말고는 별로 아는게 없는게 통일교인데, 갑자기 호기심이 나서 알아보니...
일반적으로는 ‘통일교(統一敎)’ 또는 ‘통일교회’라고 한다.
이 종교의 교리와 사상 속에는 무속신앙·단군신앙·풍수지리사상·참위사상·유교사상·불교사상·도교사상 등 우리 나라와 동양의 전통사상이 깊이 깔려 있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따라서, 기성 기독교에서는 이 종교의 교리가 기독교의 정통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이단으로 간주한다고 한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본부를 두고 있는 통일교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958년 해외선교가 시작된 이후 2000년에 들어 193개국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교세를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고 한다.
통일교는 종교활동을 비롯하여 사상·정치·경제·문화·예술·학술·언론·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갖고 사업을 펼쳐치고 있고, 이러한 통일교의 활동방향에 대해 기독교계는 반기독교적인 종교임을 강조하며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통일교의 활동을 보면 종교단체라기 보다는 기업집단으로써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통일교가 국내에 투자한 기업으로는 일화를 비롯, 세일중공업·성일기계·일신석재 원일기계 등이 대표로 꼽힌다.
교육기관으로는 경복초등학교,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선정여중과 선정고등학교, 선문대학교, 미국의 브리치포트대학교, 통일신학대학원, 등 여러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또한 중국연변대학교에 공과대학을 건립해 기증하기도 했다.
유럽 쪽에도 일찍이 진출하여 독일 철강산업에 참여하였으며 토지와 빌딩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언론기관 이외에 원양어업및 어류처리업·소형조선소·자동차수리공장을 운영했다.
이렇게 통일교에서 운영되는 사업이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통일교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통일교의 신조는 다음과 같다.
① 유일신인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의 아버지로 믿는다.
② 신·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든다.
③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인간의 구주(救主)인 동시에 복귀된 선의 조상으로 믿는다.
④ 예수님께서 한국에 재림하실 것으로 믿는다.
⑤ 인류세계는 재림하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하나의 대가족사회가 될 것을 믿는다.
⑥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최종목표는 지상과 천상에서 악과 지옥을 없애고 선과 천국을 세우는 데 있는 것으로 믿는다.
통일교의 ‘원리’
① 신관(神觀):신, 즉 하나님은 미(美)·진(眞)·선(善)과 같은 원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인격적 존재로서, 인간의 몸과 같은 형상과 인간의 마음과 같은 성상(性相)으로 된 이성성상(二性性相)의 통일적인 주체이며, 또한 남성적인 양성과 여성적인 음성의 중화적 주체(中和的主體)이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이러한 특성을 닮아, 양성의 실체와 음성의 실체로 분립(分立)된다.
② 인간관(人間觀):인간은 하나님의 이성성상을 닮아 육신과 영인체(靈人體)의 통일적인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성과 주관성(主管性)을 상속받아 제2의 창조주가 되고 만물에 대한 주관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인격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인간이 지상에서 생애를 마치고 육신을 벗는 날, 그 영인체가 무형세계로 가면 그대로 천상천국인(天上天國人)이 되는 것이다.
③ 원죄론(原罪論):완성한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 중에 이상적인 상대자를 만나 영원한 부부를 이루어 선한 가정을 꾸미고 선한 자녀를 낳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시조인 ‘해와(Eve)’가 타락한 천사장(天使長)인 ‘루시에(Lucier)’와 불륜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은 원죄를 가지게 되었고, 이 세상은 사탄(Satan)이 주관하는 죄악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과 전 인류와 모든 피조세계는 한(恨)을 가지게 되었다. 이 한은 해원(解寃)되어야 한다.
④ 종말론(終末論):하나님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반드시 이루는 절대자이다. 그는 선지자(先知者)와 메시아(Messiah)를 통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함으로써 하나님을 중심한 선과 사랑의 가정과 국가를 찾고, 창조본연의 세계 즉 선한 세계를 다시 이 땅 위에 이루려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역사는 곧 복귀섭리의 역사이며 또한 재창조의 역사이다. 말세란 세상이 끝나는 때가 아니라 메시아의 강림으로 사탄이 주관하는 죄악세계가 끝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축복세계가 이루어지는 때, 즉 죄악의 세계가 선의 세계로 바뀌는 대전환기를 말한다.
⑤ 기독론(基督論):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창조본연의 인간으로서의 메시아가 중보자(仲保者)인 ‘후 아담’으로 와서 ‘첫 아담’이 하지 못한 책임분담을 다해야 한다. 예수는 원죄를 짓기 이전 상태인 ‘후 아담’으로 이 세상에 온 메시아였다. 그러나 예수는 인류구원사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재림하게 될 것이다.
⑥ 재림론(再臨論):예수가 재림하는 나라는 <계시록> 7장 2절에 언급된 바와 같이 ‘동방의 해돋는 곳’, 즉 극동의 어느 나라이며, 구체적으로는 우리 나라이다. 그 까닭은 우리 나라는 이스라엘 선민(選民)에서와 같이 40수(數)에 해당하는 탕감복귀(蕩減復歸)를 위해 40년 동안 일본제국주의의 핍박을 받았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선악분립의 역사이고 분립된 선이 분립된 악을 굴복시키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볼 때, 우리 나라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하나님의 일선(一線)과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탄의 일선이 대치하고 있으며 한민족이 걸어나온 비참한 역사과정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걸어야 할 고난의 역사과정을 걸어온 것으로서, 한민족은 선천적으로 경천사상을 비롯한 충·효·열의 종교적 품성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민족적 메시아사상으로서의 정감록신앙을 비롯해 각 종교의 도주(道主)들에 의한 예언의 소리와 영통인(靈通人)들에 의한 신령역사(神靈役事)가 일어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 보아 모든 문명이 결실되는 곳은 우리 나라이기 때문이다.
통일교의 주요 활동
통일교의 활동은 종교·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통일교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란도 다른 종교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① 종교활동:1997년도 자체집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41개 교구에 626개의 교회가 있으며, 교역자로는 목사 1,151명, 장로 2,783명, 전도사 4,604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 총신도수는 67만여 명 정도라고 한다. 통일교에서는 해외선교를 지원하기 위해 ‘국제부흥단’을 조직하여 각국에 대한 순회활동을 하고 있으며, 초교파기독교협회(超敎派基督敎協會)와 국제크리스천교수협의회·국제기독학생연합회 등을 설립하여 기성 기독교교단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국내 80여 개 대학에 원리연구회라는 대학생조직을 갖고 있다.
② 정치활동:공산주의이념에 대한 비판활동을 위해 국제승공연합과 세계여성승공연합 등의 단체들을 창설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일교는 극우적인 성격이 강한 종교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 사회주의권에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국제정세가 변화하자, 통일교의 정치활동도 극단적인 승공운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의 문제도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국제승공연합은 현재 남북통일 국민연합에 통합되어 활동하는 상태이다. 한편 통일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정치조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1973년 워터게이트사건(Watergate事件)으로 궁지에 빠진 미국 대통령 닉슨(Nixon, R.M.)을 위한 기도회 개최, 1976년 미국독립200주년 기념행사 개최, 1978년 이른바 코리아게이트사건이라고 불린 미국 정치계에서의 격론, 1980년 미국대통령후보 레이건(Reagan, R.W.)에 대한 지지성명, 그 외 일본 총선거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 등은 유명하다.
③ 경제활동:통일교의 경제활동과 사업규모는 자주 국내외의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됨으로써 사회적인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내에는 수십 개의 대규모 사업체와 방대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일본과 미국에도 100여 개의 기업체와 많은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나라에서 통일교의 경제활동은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④ 문화활동:세계적으로는 18개의 교육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일보 世界日報≫, 미국의 ≪워싱턴타임즈 Washington Times≫와 일본의 ≪세카이일보 世界日報≫를 비롯한 여러 개의 언론기관, 리틀엔젤스와 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를 비롯한 각종 예술단체, 국제문화재단·한국문화재단·국제구호재단 등의 문화단체와 복지단체,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국제과학통일회의·세계종교인평화회의 등의 학술단체와 회의 등 그 활동이 매우 다양하다.
창시자 문선명은 평안북도 정주의 농촌출신으로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15세 때 누이와 형이 심한 병을 앓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었으며, 16세가 되던 부활절날 기도중에 예수로부터 인류구원의 사명을 받았다고 한다. 청년기에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당시 신비주의종파로 알려졌던 ‘예수교회’ 소속의 명수대교회에 다니면서 유년주일학교의 반사(班師)로 활동하였다.
이 무렵 그의 관심은 ‘하나님의 창조이상(創造理想)과 인간의 타락과 유구한 세월에 걸친 구원섭리를 중심으로 한 하늘의 심정과 사정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體化)하는 일’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특히 그는 단군의 개국이념인 홍익인간, 신라의 화랑도정신, 조선조의 정감록 예언, 3·1운동에서 표방되었던 광명대도 등과 같은 전래의 도(道)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우리 나라의 전통사상이 하나님의 평화적인 이상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한민족이 하나님의 실체와 구원섭리의 역사와 일치된 민족이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받는 민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8·15광복 후 문선명은 당시 또 다른 기독교계 신비주의종파로 알려졌던 김백문(金百文)의 이스라엘수도원으로 들어가, 6개월간 그 수도원계통의 상도동집회소(上道洞集會所) 인도자로 활동하였다.
이것을 들어 기성 기독교에서는 문선명의 신학과 사상이 김백문의 신학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수도원을 나온 문선명은 1946년 6월 평양으로 월북하여 그 곳에 있던 신비주의계통의 기독교신도들과 함께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와 함께 종교활동을 하였던 신도들은 대부분 하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고, 몽시(夢示)를 보고, 예언을 하고, 옆사람의 심령을 뚫어보는 등 신비적인 체험을 했다고 한다.
1948년 문선명은 사회질서문란혐의로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함경남도 흥남형무소로 이감되었다. 1950년 10월, 국군의 진격으로 형무소를 나온 문선명은 월남하여 부산에서 부두노동자생활을 하며 또다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교리를 체계화하여 ≪원리 原理≫를 집필하였는데, 그가 피난생활을 하였던 범냇골은 현재 통일교의 성지(聖地)로 지정되어 있다.
1954년 상경한 문선명은 그 해 5월 1일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교명으로 교단을 창립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교단조직을 체계화하고 각종 단체들을 설립하며 출판물들을 간행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초기부터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1958년에는 일본으로, 그리고 1959년에는 미국으로 선교사들을 파견했는데, 이것이 통일교가 현재와 같이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통일교는 1963년 5월 정부에 사회단체로 등록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 후 통일교는 1966년부터 전국대학원리연구회를 창립하고 각 대학교에 서클이나 연구회를 조직하기 시작했으며, 1968년에는 국제승공연합을 창립하여 공산주의 비판, 승공사상 고취 등 각종 반공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1973년에 세계평화교수협의회를 창립하고, 1975년에 일본에서 일간지 ≪세계일보≫를 창간하는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70년부터 가정의 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독특한 교리를 바탕으로 대형 합동축복결혼식을 국제적으로 거행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1966년에 통일교의 경전인 ≪원리강론≫을 발행한 이후로 1972년에는 한국에, 그리고 1975년에는 미국에 통일신학교를 설립하여 교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통일교는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에 ≪워싱턴 타임즈≫, ≪세계일보≫ 등 언론기관을 설립하거나 대학을 인수하고, 제1회 세계종교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사회사업과 종교간 대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또한 1990년대 이후 구소련이나 동구권, 그리고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방을 단행하자 이들 나라에 대한 선교 활동에 주력하기 시작하였다.
1997년에는 기존의 교단 명칭인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회’로 개칭하면서 통일교는 지상천국의 이상적 상태로서 참가정의 건설이라는 교리적 목표를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삼각형 집의 지붕
강경 지역에 교회가 그리 많더니... 통일교 교회도 있었을 줄은 몰랐다.
지금은 강경에는 가정교회가 없고, 논산시에는 있는 것 같다.
독특하게 생긴 건물 구경하다가, 뜬금없이, 통일교에 대해서 읽어보게 되었네 ^^;;
이제는 이 삼각형 집 뒤에 있는 전망대에 가려다가... 그 옆에 있는 젓갈 전시장 부터 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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