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의 상징 김장생이 노년을 지내던, 강경 임리정
江景 臨履亭
Imnijeong Pavilion in GangGyeong
임리정
강경의 조선 중기의 건물인 팔괘정과 죽림서원을 보고 죽림서원 뒤 언덕 위에 있는 임리정으로 올랐다.
팔괘정이 그의 스승인 김장생을 기리고, 함께 하고자 한 마음이 담긴 곳이고, 김장생이 창건한 죽림서원(竹林書院)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그는 그 당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종사(宗師)로서 학문은 물론 정치와 경제면에 이르기까지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임리정은 그러한 유학자 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상징적인 존재인 김장생이 노년에 후학을 기르던 곳이다.
대나무 길을 따라 오르다
죽림서원의 오른 편에 작은 계단이 보이는데, 그 계단을 따라 대나무와 진달래가 자란 길을 오르면 임리정으로 갈 수가 있다.
임리정으로 오르는 길
죽림서원의 뒷 산이라 그런지 곧게 뻗은 대나무가 멋드러진다.
조선 중기 강직한 유학자였던 송시열이 걷던 길의 이 대나무가 마치 그를 닮은 듯도 하다.
대나무는 겨울 내내 그 색을 잃지 않고 푸른 빛으로 항상 같은 모습을 보이고,
따뜻해진 햇살에 곱게 피운 진달래는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어여뿐 꽃길을 따라 가다보니, 나무 사이로 임리정이 보인다.
멋드러진 나무 하나가 임리정 옆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임리정은 작은 누정으로 김장생이 1626년에 하향하여 후진을 교육하던 자리로 팔괘정 처럼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을 바라보는 작은 누정
김장생은 이 정자를 짓고《시경》의 “如臨深淵(여림심연) 如履薄氷(여리박빙)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 같이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늘 자신의 처신을 신중히 하라는 뜻을 따서 임리정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원래 황산정(黃山亭)이라고도 하였다.
임리정기비
조선 중기 유학자 김장생
김장생(1548 ~ 1631)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 ·예학(禮學) 사상가로 임진왜란 이후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으며, 인목대비 폐모논의가 일어나고 북인이 득세하자 낙향하여 예학연구와 후진양성에 몰두하였다.
김장생
당시 김장생은 당대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이 높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이 찾아와 배우기를 청했다.
김장생의 제자로는 최명길, 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이상형, 이경직, 윤선거, 윤문거 등이 유명하며, 서인과 노론계의 대표적 인물들이 많다.
임리정의 구조
이러한 대가가 후학을 기르던 누정이지만, 실제 규모는 외소하다.
오래되고 아담한 한옥 하나가 외롭게 언덕 위에서 금강의 수려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곳이다.
임리정은 정면 3칸의 기둥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나누고 그 중 왼쪽의 2칸은 마루를 깔아 넓은 대청으로 하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기단이 높지 않으므로 온돌방 앞면에는 반칸을 안으로 들여 윗부분은 툇마루를, 아랫부분은 함실 아궁이를 만들었다.
둥근기둥을 사용하였고, 그 위에 주두를 배치하여 초익공식 공포(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를 짜올렸으며, 쇠서의 형상은 새날개 모양의 전형적인 익공집 형식을 취하였다.
창방(昌枋:대청 위 장여 밑에 대는 넓적한 도리) 위에는 기둥 사이마다 5개의 소로 받침을 두고 주심도리(기둥 중심선 위에 있는 도리)를 받쳤다.
지붕의 가구(架構) 방식은 앞뒤의 평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기둥머리를 갖춘, 낮은 동자기둥을 세워서 종량(宗樑)을 받쳤다.
종량 위에 사다리꼴 모양의 대공(臺工:마룻대를 받는 짧은기둥)이 배치된 겹처마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작은 사랑방 1칸이, 오른쪽에 큰 사랑방 2칸이 있으며, 큰 사랑방의 북쪽으로 툇간에 반칸을 더내어 윗방 1칸씩을 두었다.
공포가 없는 민도리집이다.
임리정기비
앞마당에는 1875년(고종 12)에 세워진 임리정기비가 있는데, 비문은 김상현(金尙鉉)이 찬하고 김영목(金永穆)이 서하였다. 현재는 비각 안에 보호되어 있다.
임리정은 1976년 6월 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고, 현재 임리정은 강경유림(江景儒林)의 소유로 되어 있다.
주변에 임리정 중수 및 개수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의 초석용 석재가 여러 개 흩어져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임리정까지 둘러보니, 점점 해가 지고, 나의 강경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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