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은 따로 어떤 재 보존이 된 것은 아니고 폐가 같은 느낌 그대로 두고 있었다.
단지 이곳이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라는 표식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시멘 벽돌로 올린 집에 시멘트 칠을 한, 회식의 오래된 집,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고, 밤에 온다면 마치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이다.
문도 없고, 그냥 오래된 동네의 폐가 딱 그모습의 집이다.
집안에는 불이 켜지지도 않을 전구가 천장에 하나 달려 있고, 합판으로 붙인 벽들이 썰렁함을 더한다.
사실 난 소금이란 소설을 읽지 않아서, 이곳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도 없었기에 이 집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집 앞에 앉아 앞을 바라보니,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저 앞만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옥녀봉의 한쪽 낮은 절벽 위에 위치한 이 집 앞의 풍경은 참 평온함을 주었다.
옥녀봉의 풍경이 화려하고 아름답다면, 옥녀봉 정상과 얼마 멀지 않은 이곳의 풍경은 안정감이 있으며 편안한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집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하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렇게 있다가 다시 집을 돌아보니, 별 감흥이 없던 집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박범신이란 작가는 이 집에서 어떤 것을 느껴 소금이란 소설을 썼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소금'이란 소설은 화해가 아닌 가족을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 내용이라고 한다.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자본의 폭력적인 구조가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근원인 화해를 가로 막아 부랑자가 된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소설이다.
늙어가는 ‘아버지’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붙박이 유랑인’이었던 자신의 지난 삶에 자조의 심정을 가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이 거대한 소비 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박범신 그이 삶이 어떠했는지 그 면목의 일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소설가 박범신은 영화로 유명한 '은교'의 작가이기도 하다.
'소금'의 배경이 된 집이 강경에 있는 것 처럼 박범신은 충남 논산에서 1946년에 태어났다.
박범신
박범신 [朴範信]
원광대 국문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78년까지 문예지 중심으로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ㆍ단편을 발표, 문제작가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9년 장편 『죽음보다 깊은 잠』『풀잎처럼 눕다』등을 발표, 베스트셀러가 되어 70~8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활약했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빛나는 상상력과 역동적 서사가 어우러진 화려한 문체로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를 밀도 있게 그려낸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수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작품 중 70년대와 8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은 폭력의 구조적인 근원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또한 도시와 고향이라는 이분법적인 대립구조를 통해 가치의 세계를 해부하려는 시도로 인해 대중작가라는 곱지 않은 평을 듣기도 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문학과 삶과 존재의 문제에 대한 겸허한 자기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가졌다. 사유의 공간으로 선택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높고 멀게 느껴지던 히말라야였다.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으며 최근에는 킬리만자로 트레킹에서 해발 5895미터의 우후루 피크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1996년 유형과도 같은 오랜 고행의 시간 끝에 「문학동네」가을호에 중편소설 「흰소가 끄는 수레」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재개한 후 자연과 생명에 관한 묘사, 영혼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작품 세계로 문학적 열정을 새로이 펼쳐보이고 있다.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등』은 그가 글쓰기를 떠나기 전의 문학세계와 그 후의 문학성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해방 후의 현대사의 흐름을 같이 걸어온 주인공 서영우와 민혜주, 노상규 이 세 인물들을 통해 잃어버린 사랑의 원형을 찾아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피빛 사랑을 그려내면서 해방 후 현대사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러운 책상』은 특이하게 '단장'으로 이뤄져 있다. 박범신의 자전적 소설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가 겪었을 젊은 날의 고뇌들이 그렇게 표현된 것처럼 평가받는다. "새벽이다. 무엇이 그리운지 알지 못하면서, 그러나 무엇인가 지독하게 그리워서 나날이 흐릿하게 흘러가던, 그런 날의 어느 새벽이었을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살고자 했던 그의 고민을 엿보게 해준다. 작가 박범신은 이 작품으로 창작과비평사가 제정한 2003년 제1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들, 쓸쓸하다』에서 박범신은 그의 문학인생 못지않게 녹록치 않았던 남자인생 60년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아들 하나를 욕망하던 어머니의 늦둥이 외아들로, 수많은 복병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한 울타리를 지켜온 남편으로, 수십 년간 밥벌이를 감당해야 했던 고단한 아버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이 땅에서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짚어본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가는 사회 구조 안에서 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남자들, 즉 구시대의 ‘화려한 권력자’에서 이 시대의 ‘쓸쓸한 인간’으로 자리바꿈한 중년 남자들의 현주소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제는 사회의 구석자리에서 불안한 헛기침만을 날릴 수밖에 없는 그 ‘쓸쓸한’ 남자들의 진솔한 속내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비우니 향기롭다』는 더욱 더 소유하고자 하는 물질 만능주의 현실에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안내서이다. 내면의 깊이가 더욱 확장된 저자가 히말라야에서 깨달은 바는 진정한 삶의 행복은 가지려는 마음보다 비우려는 마음에 있다는 것. 이는 바로 불교 철학의 '무소유'와 직결된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만 살아가는 기쁨이 더 줄어든 시대.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이 외의 작품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겨울강 하늬바람』 『킬리만자로의 눈꽃』 『침묵의 집』 『와등』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등이 있고, 소설집에 『토끼와 잠수함』 『덫』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 등이, 연작소설에 『빈 방』 『흰수레가 끄는 수레』 등이 있다. 2001년 소설집 『향기로운 우물 이야기』로 제4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나마스테』로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9월부터 2008년 1월까지 5개월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라는 소설을 연재하였다. 이 소설은 2005년 1월 히말라야 촐라체봉(6440m)에서 조난당했다가 살아 돌아온 산악인 박정헌·최강식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또한 『촐라체』와 『고산자』와 함께 ‘갈망의 삼부작(三部作)’인 은교에서는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소설은 또 무엇인가. 젊음이란 무엇이며, 늙음이란 또 무엇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는 작가 박범신은 최근에도 『비즈니스』, 『빈방』, 『외등』, 『힐링』,『소소한 풍경』등을 발표하며 꾸준히 글을 써내려가고 있다.
감성적 묘사 위주의 시적인 문체와 어두운 삶에 대한 허무주의적 대결, 비정한 문명과 인간성에 대한 비판적인 글로 현대인의 욕망과 좌절, 배타적 인간성, 물질만능의 속물근성, 기회주의 등 다양한 인간 세상의 모습들을 사실적으로, 낭만적으로, 또는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그의 글은 마치 변해버린 강경의 모습을 닮아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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