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물결 송화강,
우리의 선조는 저곳에 살았을까.
[중국 길림성 송화강과 송화호] 松花江, 松花湖, Songhua River in china
5월이 다가오며, 몇 해전 5월이 떠오릅니다.
중국은 5월초에 노동절이라는 큰 국경일이 있습니다.
며칠을 쉴 수 있어 사람들은 고향에도 많이가고, 여행을 다니기에도 좋습니다.
아마 한국의 근로자의 날과 의미가 비슷한 날일 것입니다.
그 해의 5월에 저는 사람들과 송화강에 갔습니다.
처음 땅을 밟는 그 지역의 땅은 낯설었지만,
거칠게 흐르는 송화강을 바라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뭉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부분 우리 언어인 한글을 말하며 알타이어 계통이라고 합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우리 민족이 우랄 알타이 산맥에서 출발해 강을 타고 하류로 이동하다가
다시 다른 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왔다는 학설이 많습니다.
그렇게 따라올라 갔던 강이 송화강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나라를 만들게 된 것이 '부여'라는 나라였습니다.
후에 부여에서 나온 주몽은 고구려를 만들고 다시 부여의 옛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예전의 그 장소들이 지금의 길림시 정도의 위치입니다.
그리고 송화강이 흐르고 있는 곳입니다.
[고구려 성이있는 산에서 바라본 길림시와 송화강]
송화강의 길이는 약 1,960km입니다.
백두산의 천지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지린성(길림성) 북서단의 싼차허에서
남류하는 넌장을 합친 뒤 북동쪽으로 유로를 바꿉니다.
하얼빈을 거쳐 이란에서 무단강을 합치고, 다시 자무쓰를 지나 헤이룽장성 북동단에서 헤이룽강에 합류합니다.
이렇게 만주를 대표하는 강입니다.
[길림시를 흐르는 송화강]
길림시는 역사에서 중요시 되었던 만큼 지금도 중국 길림성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입니다.
사실 낮에 도심에서 강을 보았을 때에는 그저 상하이를 흐르는 탁한 물보다는 맑고,
서울을 흐르는 한강보다는 탁하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만을 받았지만,
밤이 되고 어둠이 내려, 검게 흐르는 송화강을 보니 역사의 많은 의미를 안고 흐르는 듯한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오랜 조상들이 이 곳의 물을 마시며, 살아가고, 생명을 피워냈다는 생각에, 숙연함마저 더해갑니다.
비록 '와이탄'만큼 화려하지 않지만, 이미 이 곳은 저에게 그곳보다 큰 의미와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송화강을 보고 있으니, 송화강의 넓은 호수인 송화호를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송화호]
[배를 타기 위해 갔던 선착장이 있는 마을]
송화호는 그 크기가 호수면 면적 425㎢, 최대수심 77.5m, 저수량 108억㎥ 이라고 합니다.
저리 숫자로 보면 대충 짐작만갈 것 같지만, 송화호에 가보니 상당히 넓습니다.
배를 타고 2시간을 가야, 호수에 있는 섬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송화호는 길림시에서 그리 멀지 않기에 길림시를 들렸을 때에 가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배 위에서]
송화호는 길림시 남동쪽에 펑만댐을 건설함으로써 조성된 인공호수입니다.
하지만 인공호수하고 하기에는 너무 넓어 믿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1937년 일본 자본으로 댐공사를 시작했으나 완공하지 못한 것을 중국정권이 이어받아 1953년에 완공되었습니다.
호수에 딸린 펑만발전소는 63만kw의 출력 규모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쌀쌀한 바람이 불던 5월 초의 송화호]
5월 이긴 했지만 바람이 꽤 쌀쌀했습니다.
배를 타고 2시간 정도를 가니 한 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송화호라는 비석이 있고 작은 유원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송화호에 대한 마음의 기대감과 흥분에 비해
놀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든 것도 아닌 약간은 어설픈 유원지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역사의 발자취를 느끼고 온 것같아 뿌듯했지요.
[함께 했던 고마운 친구분들 몽골 청년 무흐, 러시아 데니스, 영국 마이클, 중국 앤쥔, 한국의 취쥔 등등]
다시 육지로 나오는 배에서는 왜이리 허전한 마음이 들던지, 묘한 기분이 나는 곳이었습니다.
[송화호와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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