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중심의 개혁론
1. 시기 - 18세기 전반 남인 출신
2. 특징 - 경세치용 학파
3. 중농주의 실학자의 개혁론 (토지개혁을 통한 자영업 육성, 민생안정 도모) - 근경 남인
(1) 반계 유형원 (1622~1673) - 농업 중심 개혁론의 선구자 [체계화]
1) 균전론 주장
a. ‘반계수록’에서 균전론 주장
b. 차등분배 - 자영농 육성 (X - 균등한 토지를 분배)
“대체로 재물은 샘과 같은 것이다.~ 기술을 숭상~”
“4경마다 군인1명, 농부 1인이 1경”
2) 농병 일치의 군사제도, 사농 일치의 교육제도
3) 양반 문벌제도, 과거제도, 노비 제도 등 신분제 비판
4) 유교적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
5) 주리론적
6) 북벌 주장
7) 경무법 주장
(2) 성호 이익 (1681~1763) - 실학의 학파 형성
1) 한전론 주장 - 한 가정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토지를 농가마다 영업전을 지정하고,
매매를 금지시켜 토지 겸병을 방지하여, 점진적으로 토지 소유의 평등을 이루고자 제창
2) 성호 학파 성립
a. 제자 - 안정복, 정약용, 이중환, 이긍익
b. 좌파 - 천주교 수용, 신유사옥으로 일망 타진, 이벽 등
c. 우파 - 천주교 비판, 안정복 등
3) ‘성호사설’
4) ‘곽우록’ - 「사칠신편」,「상위전후록」,「질서」,「자복편」,「백언해」
3) 폐전론(화폐 없애자)과 사창제도 주장
4) 빈곤의 원인 규정 (6가지 나라의 좀) - 노비제, 과거제, 양반 문벌제, 사치, 미신 숭배, 승려, 게으름
5) 붕당론 - 과거 시험의 주기를 5년으로 늘려 합격자를 줄일 것, 재야인사를 등용
(3) 다산 정약용 (1762~1836) - 실학의 집대성
1) 여전론 주장
a. 균전론 한전론을 모두 반대
b. 한 마을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 경작, 그 수확량을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는 공동 농장제도
☞ “1여에는 여장을 두고 1여의 토지는 1여의 백성이 공동으로 경작하도록 하여 내 땅, 네 당의 구별을 없이하여,
오직 여장의 명령에만 따른다. 여민들이 농경하는 경우 네 여장은 매일 개개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해
두었다가, 가을이 되면 오곡의 수확물을 모두 여장의 집에 가져온 다음, 노동량에 따라 분배한다.”
2) 정전제 - 가난한 농민에게 나누어 줌으로 자영 농민 육성 「경세유표」
3) 향촌 단위 방위 체제 강화
4) 저술
a. 목민심서 - 목민관의 치민에 관한 도리
b. 경세유표 - 중앙 정치제도의 폐해 지적, 개혁, 정전제, ‘이용감’설치(기술 수용)
c. 흠흠신서 - 형옥에 관한 법률 지침서
d. 탕론 - 은의 탕왕이 하의 걸왕을 무찌른 고사를 들어 민이 정치의 근본임을 밝힌 논설
역성혁명을 내포, 존 로크의 사회 계약론에서 보여주는 시민 혁명 사상 내포
e. 원목 - 통치자의 이상적인 상을 제시
“백성을 위해 수령이 존재하는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 태어났는가?” (통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
f. 전론 - 여전제를 주장, 농업 협동 방법, 집단 방위체제 제시
g. 기예론 - 기술 창안, 기술 혁신
h. 아방강역고, 대동수경 - 역사 지리
5) 중국 중심의 성리학 비판
6) 지전설 주장
7) 종두방서 - 종두법 연구
8) 아언각비 - 속어, 속자 정비
9) 거중가도설을 지어 화성 축조에 기여
11) 배다리
12) 신유박해로 유배
☞ 「목민심서」
“가을에 한 늙은 아전이 대궐에서 돌아와서 처와 자식에게 ”요즘 이름 있는 관리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여도 나라 일에 대한 계획이나 백성을 위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오로지 각 고을에서 보내오는 뇌물의
많고 적음과 좋고 나쁨에만 관심을 가지고, 또 어느 수령이 보낸 물건은 매우 넉넉하다고 말한다.”하고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 「목민심서」
“근래 아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에서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 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는 자는 고을 안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나 하며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 소수 가문의 권력 독점으로 벼슬길이 좁아진 것이 원인
☞ 「경세유표」
“농민이 밭에 심는 것은 곡물만이 아니다. 모시, 오이, 배추, 도라지 등의 농사도 잘 지으면 그 이익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도회지 주변에는 파밭, 마늘밭, 배추밭, 오이밭 등이 많다. 특히 서도 지방의 담배밭,
북도 지방의 삼밭, 한산의 모시밭, 전주의 생강밭, 강진의 고구마밭, 황주의 지황밭에서의 수확은 모두 상상등전의
논에서 나는 수확보다 그 이익이 10배에 이른다.”
4. 청나라의 선진 농업 기술을 수용할 것을 주장
'※ Soy 한국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후기의 문화, 예술 (문학, 음악, 그림, 건축, 공예) (5) | 2009.11.02 |
---|---|
한국의 세계 유산 (4) | 2009.11.01 |
조선 후기의 과학 기술 (1) | 2009.11.01 |
[조선시대] 실학 (0) | 2009.10.31 |
[실학] 국학연구 (조선 후기) (0) | 2009.10.31 |
상공업 중심의 실학파 (북학파) (0) | 2009.10.30 |
[조선 후기] 성리학의 변화 (양명학의 수용) (1) | 2009.10.29 |
[조선후기] 경제, 무역, 시장 (1) | 2009.10.29 |
[조선후기] 서민 경제 (1) | 2009.10.28 |
[조선] 대외관계 (청, 일본) (1) | 2009.10.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