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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식당 ♠/해외

[중국 북경] 만리장성의 겨울 (팔달령 만리장성 - 八达岭长城, Ba da ling ChangCheng)

by 소이나는 201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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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 만리장성의 겨울 (팔달령 만리장성 - Ba da ling ChangCheng)


날씨가 추워지니 추운 북경이 생각납니다.
중국에서 짧은 기간 살때에 북경을 들러본 후에 다시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중국 여행에서 북경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중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금성과 만리장성인 것 같습니다.
다행이 북경에서 가까운 곳에 만리장성이 있어서,
북경을 여행하고 돌아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저 처럼 팔달령 만리장성을 들릴 것 같습니다.

제가 여행을 다닐때만 해도 정보가 많지 않아서 정말 찾아다니기가 어려웠는데,
요즘은 중국여행을 다녀오는 분들이 워낙 많아져서, 정보는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배낭 여행 다니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는 것도 같네요.

이번에 소개할 곳은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만리장성인 바로 팔달령 장성입니다.
만리장성이 워낙 길어서 여러 곳에서도 갈 수 있지만,
그래도
북경에서 가까운 팔달령을 한국사람들은 가장 많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어로 하면 badaling 이라고 하지만 좀 강하게 발음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빠따링 창청~ 하면 팔달령장성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리장성은 황해의 진황도에서 서쪽의 둔황지대까지 정말 길게도 늘어져 있습니다.
팔달령 장성은 북경에서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해서  "팔달령"이 되었습니다.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 산세가 험준한 편인데 가보면 장성을 오르는데에는 불편하지 않습니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아래 지도에서 가장 북서쪽 구석을 보면 Badalingzhen 이라고 써있네요^^ 그 정도 위치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북경에 도착하여 전문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1년전 여름에 북경여행을 하며 가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겨울 북경여행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팔달령장성을 가보려했습니다.
북경 북서쪽에 위치한 큰 성문인 덕성문 근처에 장성을 왕복하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있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 덕성문은 지하철 2호선 역이 있었습니다. 또 덕성문은 중심가인 전문과 왕푸징 쪽에서 버스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덕성문에서 1시간 반 정도를 가면 만리장성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 여행에서는 오전이 좀 지난 시간에 덕성문에 도착하니 장성으로 떠나는 버스가 없다는 군요.
오전에만 출발하고 그 후에는 장성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오전에 다시 덕성문을 찾아올까 하는데, 장성으로 가는 것을 들은 중국 택시 기사분이 다가와
장성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합니다.
처음에 기사 분이 부른 가격이 좀 더 붙인 것 같아서, 가격을 흥정을하여 장성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일행이 4명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갈때보다 싼 가격으로 장성에 갈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숙소를 정할때와 슈퍼에서 물건을 살때,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때 빼고는 모두 가격을 흥정하였습니다.

기념품을 살때에는 특히 많은 가격을 줄여 사곤 했습니다.
관광 장소의 입장료도 성인가격을 받기에 중국에 있을 때 쓰던 중국학교의 학생증으로 학생할인을 받아 좀더 저렴하게 돈을 소비하였습니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에는 그런 것을 잘하지 못했는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할때가 많아 가격을 낮추다보니 이제는 가격을 흥정하는 것에 익숙해지더군요.
저의 흥정요령은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을 듣고 저도 말도 안되는 싼 가격을 부릅니다.
상인이 안된다고 하며 자신이 부른 가격에서 얼마를 낮추워 말합니다. 그럼 거기에서 한번더 낮추게하고,
안 살것 처럼 돌아서면 다시 상인이 가격을 부를 때에 그 가격에 물건을 사곤 했습니다.
기념품 같은 경우에150위엔이면 40위엔에, 심한 것(진주목걸이)은 600위엔을 110위엔에도 사고 했습니다.
물가는 지역마다 다른 편인데, 북경은 그리 물가가 높은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해나 광주 쪽이 물가가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중국인이 운영하는 빙관(여관 2인실, 침대 2개, 화장실, 에어콘, TV 정도가 있는 시설)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북경은 20위엔 ~ 70위엔 정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관광 도시(쑤저우, 항저우, 시안)의 경우에 50위엔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남방의 경치가 좋은 관광마을(계림 등)은 20위엔 정도로 좀 싼 편입니다.
그에 비해 상해는 100위엔은 주어야 중국인이 운영하는 싼 여관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계림에서는 택시 한대를 하루 종일 대절하는데 30위엔이 들은 것을 보면, 기름가격도 한국보다 훨씬 싼가 봅니다.

아무튼 그렇게 택시를 타고 장성으로 향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인데 처음에는 전동차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장성으로 데려다 주더군요.
그것을 타고 올라갈 일은 없을 것같아서, 그냥 걸어 올라 갈 수 있는 팔달령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팔달령 장성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북경에서 장성을 다녀올 때에는 주변에 용경협이라는 협곡과 왕들의 무덤인 명 13릉도 여행코스로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입니다.
용경협에서 말을 타고 산을 올라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만약 비수기이기에 가격이 덜 드는 겨울과 덥고 성수기인 여름 중에 장성을 언제는 것이 좋냐고 물은다면,
당연히
여름에 가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름의 장성은 푸르른 산과 열기로 수려한 경치를 보여주지만, 겨울은 너무 춥고 황량하기 때문입니다.





<여름의 팔달령장성>

험난한 산에 푸른 나무와 함께 있는 만리 장성의 풍경은 정말 멋집니다.

말로만 듣던 장성에 내가 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위성에서 이 장성이 보인다던데 나는 안보이겠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2004년도 여름에 다녀온 장성] - 북경에서 디카를 잃어버려 한장 남은 필름사진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장성의 위대함을 표현하기에 남자다운 호기를 내세웠나 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이 거대한 인류의 유산은 가치가 있습니다.


[중국 만리장성 팔달령 북문광장]


[팔달령 입구, 매표소]


[들어가는 곳]

팔달령 아래 쪽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 북문광장을 넘으면 매표소가 있습니다.
중국대학교의 학생증으로 입장료를 할인 받아 들어갔습니다.
겨울이니 비성수기이기에 입장료 가격이 여름보다 싸더군요.
그리고 드디어 장성에 오를 수 있게 되지요.
매표소를 지나면 왼쪽의 가파른 장성과 오른쪽의 완만한 장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완만한 오른쪽의 장성을 향해 올라갑니다.

여름에 장성에 왔을 때에는 사람이 덜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왼쪽의 가파른 곳으로 올랐습니다.
함께 동행한 형님이 스포츠복을 입고 막 뛰어올라가니 신기하게 보는 백인 여행객이 캠코더로 그 모습을 찍기도 하더군요.
오랜 시간을 걷다보니 장성이 무너져 있습니다.
그것을 직접 보기 전에는 장성이 전부 이어진 것인 줄 알았는데, 아직 무너진 곳을 복구하지 않았나보더군요.
사람이 적어 기분 좋게 구경하기에는 매표소 왼편의 장성이 좋았지만,

완만한 오른편으로 올라 가파른 쪽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겨울에는 전에 왼편으로 가봤기에 오른편으로 올라보았습니다. 


[가파라 보이지만 그래도 완만한 편인 오른쪽 방향의 장성]



[눈으로 보아도 딱 험준해 보이는 왼편의 장성]

겨울의 장성은 정말 너무 춥습니다.
아무리 추위를 대비해도 칼바람을 이겨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관광객 수도 여름에비해 훨씬 적습니다.
한산해서 좋긴 하지만 너무 춥더군요.


 
위로 올라가니 만리장성 겨울의 추위를 더욱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완전 미이라 처럼 온몸을 천으로 감아도도 얼어 죽을 것 같습니다. 
연변에서 살때에는 영하 10도에서 뜨거운 물이 안나와서,
뜨거운 물 한 그릇만 떠놓고 찬물로 샤워도 하며 살은 적도 있었는데, 이건
그때보다 더 춥더군요.
4계절을 잘 버티는 인간도 이렇게 추운데,

이 추운 장성에 낙타 ..........!!! 이건 정말 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막에 사는 낙타가 관광객의 사진을 찍는 용도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이불 하나 덮어 쓰고 있습니다.
눈도 감고 있고, 정말 곤욕을 치르고 있더군요.
낙타를 보는 것, 같이 사진 찍는 것은 좋지만, 정말 추운 날씨에 사막의 동물이 이곳에 있다는 것에 놀라웠습니다.
사진을 함께 찍고 싶기 보다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들게 됩니다.



낙타뿐이 아닌 백마 한 마리도 그 옆에서 모델로 서있습니다.
동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한국 사람들도 돈벌이를 위해 저런 것을 하기에
중국사람이 저렇게 한다며 비판적이 되는 것보다는
인류가 자연에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거대한 만리장성과 함께 거대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장성의 모습을 보며 오르면, 기대했던 것보다는 감동이 약간 덜하기는 합니다.
아마도 세계 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이고 웅장함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했기에
직접 볼때에는 '그저 긴 성을 하나 보는 것이구나!'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중국 여행을 하며 기대에 비해 아쉬웠던 곳이 바로 이곳 만리장성과 진시황의 돌군사가 잠든 병마용이었습니다.
병마용은 위용을 느끼고 싶었는데, 아직 발굴이 다 이루어지지 않아 아쉬웠던 곳이지요.
그래도 만리장성의 거대함은 당연히 이루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나라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지요.
만리 장성은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길이가 5천만m에 이릅니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아마 우리가 역사 수업시간에 들어봄직한 선비족을 막으려 한 것일 것입니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으로 내려 갈 수 밖에 없었지요.
역사를 보면 알겠지만 대다수의 북방 민족이 중국의 중원을 차지하러 남하한 것은 일상 있는 일이었습니다.
여진족의 청나라도, 몽골의 원나라도, 금나라도 중원을 넘보고 있었지요.
그들이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중원인들에게는 무언가 자부심과 안전을 느꼈다면, 북방민족에는 이질감과 배타성을 느끼기에도 충분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장성은 방어를 위한 것이었지만, 정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성들이 진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늘날 말하는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입니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가 되었습니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겠지요.
정말 장성을 지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을 지는 위대한 성벽을 보며 지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의 정성이 이제는 관광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편한 구경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드레일]

겨울의 장성은 너무 춥기에 저 가드레일을 타고 올라가기는 무리가 있어 걸어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성벽의 계단과 돌들을 하나 하나 밟으며 걸어 올라가면,

역사의 세월을 다시금 돌아가는 것 같아 좋은 감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름에 왔을 때 그 푸르고 울창하던 산은 썰렁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여름보다 굴곡이 선명하게 보여 더 험준해 보이기도 합니다. 산 뿐만 아니라 성벽들도 추위 속에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옛 사람들은 이런 추위 속에서 성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였을지 힘들어 보이는 사극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여름보다는 여행객이 적지만, 그래도 워낙 명소인 지라 이 추위에도 장성에는 관광객들이 넘쳐납니다.



태어나 만리장성에 오른 것을 기념하기위해 그림자를 장성에 심어두고 성을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 보니 장성의 벽에 장군과 황제 등의 조각이 있습니다.
장성의 역사를 차례대로 비석으로 조각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장성을 다녀오고 나니 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성에 오르면 가슴 속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마치 바다를 볼때 뚫리는 것 처럼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진황도나 사막 쪽에 있는 장성에 가보고 싶네요.
나름 중국의 상당히 많은 곳을 여행해 봤지만, 정말 가볼 곳이 많은 나라인 것 같습니다.
언제 또 배낭 하나 들고 다녀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중원은 저를 기다려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 Great Wall of China

[만리장성]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km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km에이른다. 동쪽 산하이관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보통만리장성의 기원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로 잡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770~ BC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왕국인 진이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당시의 만리장성은동쪽 랴오양(遼陽)에서 서쪽 간쑤성(甘肅省) 민현(岷縣)까지로 지금보다 훨씬 북쪽에 있었다.

2천여 년 역사, 시대에 따른 변화
만리장성이 현재 위치에 처음 축성된 것은 6세기 북제(北齊) 시대다. 처음 건축될 무렵에는 산시성(山西省) 리스 현부터보하이 만까지 약 1,500km 길이였다. 이후 명(明) 나라 때 총 길이2,700km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 나라는 15세기~16세기에 만리장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작업을 진행했는데, 당시 북방에 있던 몽고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북방민족인만주족이 세운 청 왕조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없어 방치되어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 때 관광 목적으로 보수되어지금에 이르고 있다

만리장성 2,700km가똑 같은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중으로 축성된 곳도 있고, 성벽의 높이나 폭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체로 서쪽보다는동쪽이 견고하게 축성되어 있다. 성을 쌓은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이것을 불에 구운 전(塼), 그리고 돌 등인데 동쪽으로 갈수록 더 단단한 재료를 사용했다. 성벽은 높이 6∼9m, 평균폭은 위쪽 4.5m, 아래쪽 9m이다. 100여 m 간격으로 망루를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군사적 방어선이자 문화적 경계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쌓은 가장 중요한목적은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때문에 왕조의 성격에 따라 만리장성의 중요성이나 만리장성에쏟는 정성도 달라졌다. 왕조가 공격적이었던 시기보다는 방어적이었던 시대에 만리장성은 더욱 중시되었다. 북방 경영에 열심이었던 당나라 때나 전 세계를 무대로 침략전쟁을 벌였던 몽고제국과 뒤이은 원나라, 만주에서 일어나서 만리장성 너머까지 다스렸던 청나라 때는 그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고, 따라서 개보수 작업도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만리장성은 군사적인역할 이외에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중국 역대 왕조들이 만리장성에 들인 노력과 비용에 비해서 방어벽으로서 역할은 크지 않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실효성에 관계없이 오늘날 만리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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