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교육과 국학 연구
Ⅰ. 근대 교육과 학문의 보급
1. 근대 교육의 실시
(1) 원산학사 (1883)
1) 최초의 근대적 사립학교
2) 덕원 주민
3) 무술, 외국어, 자연과학, 국제법
(2) 동문학 (1883) - 영어, 통역관, 근대적 최초 관립학교
(3) 육영 공원 (1886)
1) 최초의 관립 학교
2) 상류층에 영, 수, 지리, 정치 교육
3) 좌원과 고관관리자체 중심 부원
4) 길모아, 헐버트 (한국통사, 사민피지 = 세계지리서)
☞ 헐버트
1) 육영공원 교편, 한성사범학교
2) 1901년부터 월간지 「한국평론 (The Korea Review)의 편집 주관」
3) 1905년 -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미국에가 미국의 개입을 요청
4) 1907년 - 고종의 밀명을 받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서 한국의 입장을 호소
5) 저서 - 한국사, 대한제국 멸망사, 사민필지, 초학지지
6) 해방 후 한국에 왔다가 세상을 떠나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힘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도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헐버트]
☞ <대한제국 멸망사>
「한국인들은 타락되고 경멸을 받을 민족이며 훌륭한 일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지식수준이 낮기
때문에 독립국가로 존속하는 것보다 일본의 통치를 받는 편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미국인들은 여러 번 들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꾸며진 이와 같은 비난에 대해 필자는 다음 페이지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답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특별한 목적은 1905년 11월 17일 밤에 훌륭한 결실을 보았는데, 그 날 밤 한국은
칼로 겨눠진 채 자신의 독립을 결정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이번에만은 ‘자발적으로’ 동의하도록
위협을 받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동안 한국이 이토록 위기에 빠지게 된 사건의 추이는 어떠하였으며,
미국을 포함한 여러 열강들이 그 비극을 연출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2. 근대적 교육 제도의 발전
(1) 갑오개혁 후 = ‘교육 입국 조서’ 반포 (1895)
☞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 된다.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헛된 것과 실용적인 것을
먼저 구별해야 한다. 이제 짐은 정부에 명령하여 널리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길러 새로운 국민의 학식으로써
국가 중흥의 튼 공을 세우고자 하니, 국민들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덕과 건강과 지식을 기를지어다.
왕실의 안전이 국민들의 교육에 있고, 국가의 부강도 국민들의 교육에 있도다.”
→ 이후 소학교·중학교·사범학교·외국어 학교·의학교 등을 세워 관립학교 제도 확립 : 한성사범학교 (1895)
(2) 교과서 - 국민소학독본, 초등본국역사
(3) 소학교령 (1895)
(4) 흥화학교 (1895) - 민영환
(5) 한성영어·일어·한어학교
(6) 한한학원 (1884)
(7) 베론신학당 (1857) - 제천
3. 개신교 계통의 사립학교
(1) 배재 (1885) - 아펜젤러 (최초 사립학교), 감리교
(2) 이화 (1886) - 스크랜튼 (최초 여자 사립학교)
(3) 경신 (1886) - 언더우드 (최초 전문실업교육기관)
(4) 정신 여학교 (1895) - 앨러스
(5) 숭실 (1897) - 배어드 (최초의 지방 사립학교, 근대적 대학 교육의 시작) - 평양
* 언더우드
1) 미국인 선교사, 한국명 원두우
2) 1885 - 아펜젤러와 함께 한국에 와서 광혜원에서 물리·화학을 가르침
3) 1887년 - 서울 새문안교회, 1889년 - 기독교서회 1900년 - 기독청년회
4) 1915 - 경신학교에 대학부를 개설하여 연희전문학교로 발전
5) 1916 - 신병으로 귀국
* 아펜젤러
1) 미국인 감리교 목사
2) 1885년 - 한국선교회, 배제학당
3) 1895년 - 한국휘보 복간 (영문잡지)
3) 1902년 - 목포 성경회의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가는 중 사고로 익사
4. 광무개혁 이후
(1) 1899 - 한성중학교, 한성의학교(지석영), 상공학교
(2) 1900 - 광무학교
cf) 1907 - 오산학교
5. 민족 운동가들의 사립학교
(1) 을사 조약 이후
(2) 보성 (1905) - 서울 = 이용익
(3) 양정 (1905) - 서울 = 엄주익
(4) 신민회
1) 서전서숙 (1906) - 북간도(밀산부) = 이상설, 최초의 민족주의 교육기관 → 김약연이 명동학교로 개명
2) 오산 (1907) - 정주 = 이승훈
3) 대성 (1907) - 평양 = 안창호
4) 양산 (1907) - 안악 = 김구
5) 신흥 (1911) - 남만주 = 이시영
(5) 숙명여학교 (엄귀비), 진명여학교(엄주원) - 1906
(6) 휘문의숙(1905) - 민영휘
6. 민족주의 교육의 발흥 배경
(1) 학회설립
1) 서북학회 - 이갑 (학보발행, 순회강연)
2) 기호학회 - 이광종 (학보발행, 학교설립)
3) 영남학회 - 장지연 (대한자강회)
4) 호남학회 - 이채 (학보)
5) 관동학회 - 남궁억 (황성신문)
6) 흥사단 - 안창호 (흥사단보)
7) 대동학회 - 김윤식 (대동전수학교)
8) 여자교육회 - 진학신 (양규 의숙 설립)
(2) 대학교육
7. 일제의 사립학교 탄압
(1) 보통학교령 (1906) - 관립 6년제 소학교를 4년제 보통학교로 개편
(2) 사립학교령 (1908) soy한국사
Ⅱ. 국학 연구의 진전
1. 국학 연구 - 실학이 원류 - 민족의식 고취
2. 국사 연구
(1) 근대 계몽 사학의 성립
1) 영웅전기 보급 (애국심 -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2) 외국 역사서 번역
3) 일제 침략 비판
a. 황현 - ‘매천야록’, ‘절명시’ - 1910 한일합병 “요사스러운 기운이 가리워 임그별을 옮겨가고 ~”
☞ 절명시 : 난리가 물밀 듯 거듭 몰아닥쳐 머리는 세고 나이는 늙어 버렸네.
몇 번이나 죽으려 했건만 아직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어떻게도 돌이킬 수 없는 오늘 / 가물거리는 촛불만이 푸른 하늘을 비추네.
b. 정교 - 대동역사(1905), 대한계년사(1910)
4) 일제 맹종 - 역사집략 (김택영, 1905)
(2) 신채호
1) 독사신론(1908) - 대한매일신보사에 연재
2) 역사 서술 -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
3) 이순신전, 을지문덕전, 최도통전, 이태리 건국 삼걸전
(3) 현채 - 동국사략, 월남망국사, 유년필독,
*유년필독 : 국가, 역사, 지리, 인물, 풍속, 종교, 애국, 학문, 인류 등을 망라하여 1907년 5월 지어진 아동용교과서
일제에 의해 가장 많은 부수가 압수됨.
(4) 조선 광문회 - 고전 정리, 간행 (최남선, 박은식)
* 박은식 - ‘한국통사’ = ‘혼’을 강조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안중근전, 연개소문, 동명성왕전
(5) 메켄지 - ‘조선의 비극’, ‘자유를 위한 투쟁’
(6) 그리피스 - ‘은둔의 나라 한국’
(7) 헐버트 - ‘한국사’, ‘대동기년’
(8) 우기선 - 강감찬전
3. 국어 연구
(1) 국한문체의 보급
(2) 서유견문 - 유길준 - 국한문채 보급에 공헌
(3) 독립신문, 제국신문 - 한글
(4) 황성신문 - 한글, 한문 혼용
(5) 국문연구
1) 국문연구소 - 지석영, 주시경
2) 국어연구학회 (1908)
3) 국어강습소
4) 문법서
a. 유길준 : 조선문전 (1895) - 최초의 근대 문법서, 대한 문전
b. 이봉운 : 국문정리 (1897) - 한글 전용, 띄어쓰기의 선구
c. 지석영 : 신정국문 (1905) - 공식적 최초 국문 통일안 제시
→ ‘·’를 없애고 ‘ㅣ’, ‘ㅡ’ 자의 합음으로 ‘ㅢ’자를 새로 만듦
d. 주시경 : 국어문법 (1906) - 한글 맞춤법 통일안 확립
4. 국학 운동의 의의
(1) 민족의식 고취, 애국심고양, 근대계몽사상성립
(2) 학문적 깊이에는 한계성 존재
☞ 남의 나라를 빼앗고자 하는 그 나라의 글과 말을 먼저 없애고, 자기 나라의 글과 말을 전파하며, 자기 나라를
흥하게 하고자 하는 자는 자국의 글과 말을 먼저 닦고, 백성의 지혜를 발달하게 하고 단합을 공고하게 한다.
☞ 어떻게 하면 우리 이천만의 눈에 항상 나라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게 할까, 가로되 역사로써 할지니라, ~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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