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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가 떠오르는 큰 사찰, 중국 시안(장안)의 자은사와 대안탑 - 中国 陕西省 西安市 慈恩寺 大雁塔 (Cien Temple & Daaynta in Xian, China, 쯔언사, 다옌탑)

by 소이나는 201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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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장법사가 떠오르는 큰 사찰, 중국 시안(장안)의 자은사와 대안탑

中国 陕西省 西安市 慈恩寺大雁塔

Cien Temple & Daaynta in Xian, China, (Cíēnsì & Dàyàntǎ)

 


 

 

대자은사 (大慈恩寺)

 

무더위가 대륙을 덥치던 무더운 7월 평소 비가 내리지 않던 베이징에는 촉촉히 비가 내렸다.

여름인지 느끼는 것이 무색하게 시원한 느낌이 들던 날, 여름의 열기를 더욱 느끼고 싶어 향해 갔던 곳은 실크로드의 시작이었던 시안(西安, 옛 당나라의 수도이었던 장안의 현재 명칭)이었다.

베이징의 서역(West Station)에서 시안으로 떠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속도가 참 느린 기차를 골라 타 좁은 침대칸에 몸을 누으니 밤 10시였고, 시안에는 아침 6시에 도착을 하였다.

기차에서 한숨 자고 이른 아침에 시안역 밖으로 나오니 역의 광장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안은 늘 중국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중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진나라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였고, 실크로드가 시작한 곳...

동탁이 낙양을 불태우고 어린 황제를 끌고 향했던 장안,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했던 심장부.. 그곳이 바로 시안이다.

무술의 고수가 살아있는 화산과도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어찌 역사를 사랑하고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시안을 놓칠 수가 있겠는가...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다시 한번 들려보고 싶은 도시가 바로 시안인 것도 같다.

 

자은사 대안탑에서 바라보았던 시안

 

사실 시안은 진시황릉과 진시황의 병사가 잠들어 있는 병마용을 보기 위해서 간 것이였지만,

양귀비의 흔적이 남아있는 '화청지', 중국 불교의 역사가 살아 있는 '자은사' 그리고 그 사찰에 있던 대안탑고 소안탑,

아직도 도시를 감싸는 성곽, 이슬람 사원인 청진사와 남문의 고문화거리 등 그 매력은 무수히 많은 곳이 시안이였다.

진시황릉과 병마용은 다음 날 다녀오기로 하고 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시안의 성벽 남문을 지나 자은사로 향하였다.

 

 

자은사

 


 

 

 

中国 陕西省 西安市 雁塔区 雁塔路 

+86 29 8552 7958

daciensi.org

 

 

 


자은사는 서안시의 남쪽 교외 4km에 위치하고 당대의 국도 장안성에 있었던 절로 648년에 당시 황태자였던 당의 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자은에 보답하기 위해서 건립한 사찰이다.

자원(子院) 10여 곳, 합쳐서 1897칸의 광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대자은사>라는 사액을 받고, 인도에서 귀국한 현장을 맞이해서 상좌(上座)로 하고, 번경원(翻經院)에서 역경에 전념시켰다.

현장을 대자은사 삼장법사라고 부른 것은 그 때문이며, 현장의 고 제자인 궁기(窮基)는 이 절에서 법상종을 열었기 때문에 자은대사라고 하였다.

현장이 경전과 불상을 수장하기 위해서 5층 전탑을 세웠는데, 8세기 초에 높이 64m의 7층의 탑으로 개수되고, <대안탑(大雁塔)>으로 개칭되어서 현존하며, 사도(史都) 서안의 심벌이 되었다.

 

 

 자은사(쯔언사, 慈恩寺)에는 특히 유명한 탑이 하나 있는데, 그 탑의 이름이 대안탑 (다옌탑, 大雁塔)이다.

대안탑은 현장(玄奘)이 창건한 45m의 7층 전탑(塼塔)으로 그 위에서 조망하는 관중분지의 풍경이 뛰어나다.

전탑은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형식의 탑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이러한 전탑계열의 탑이 특히 많이 남아있다.

 

대안탑으로 향하며

 

대안탑 원래 명칭은 자은사탑(慈恩寺塔)이다.

652년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 건립된 4각형의 누각식 탑이며, 명(明)나라 때 외벽에 한 겹의 벽돌을 더 둘러쌓았다.

모두 7층이며, 전체 높이가 무려 64m나 된다.

천축(天竺)을 다녀온 현장(玄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하여 석탑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자재와 비용을 구하기 어려워 표면만 벽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토심전탑(土心塼塔)을 세웠다.

이 탑은 견고하지 못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701년에서 704년 사이에 측천무후의 명으로 허물고 다시 건립되었다.

 

 

탑신(塔身)은 1층 이상부터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급격히 줄어든다.

탑 안에는 목조 계단이 설치되어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옛날에는 과거시험에 급제한 거인(擧人)들이 이 탑에 올라가 이름을 새겼다고 하는데, 이를 '안탑제명(雁塔題名)'이라 한다.

 지금도 탑 앞에는 당나라 때부터 청(淸)나라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 동안 산시성에서 배출한 거인들이 이름을 새긴 석각이 남아 있다.

1층의 문미(門楣)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당대(唐代)의 석각 도안이 보존되어 있고, 문 옆에는 감실(龕室)이 있다.

또 태종(太宗)이 찬(撰)한 《대당삼장성교지서(大唐三藏聖敎之序)》와 고종(高宗)이 찬한 《대당삼장성교지서기(大唐三藏聖敎之序記)》를 명필 저수량(褚隧良)의 글씨로 비석에 새긴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가 남아 있어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자은사 대안탑

 

 

시안에 들렸다면 자은사에 들려 대안탑을 올라보는 시안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을 빼놓아서는 안될 것이다.

날이 맑다면 정말 시원스런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자은사에는 거대한 이 대안탑 말고도 절 자체의 규모가 크기에 볼거리도 많이 있다.

중앙의 큰 건물 외에도 작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중국에 최초로 불교가 들어온 낙양의 백마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숭산의 소림사보다 오히려 웅장해 보인다.

 

 

사찰의 조각과 여러 세심함이 살아 있는 사찰을 둘러보니 한국에 있는 절과는 사뭇 그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마치 대저택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중국다운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한다.

 

인도의 영향을 받은 모습무슨 글자 부터 시작이지? 화려한 부처와 보살들의 조각

 

더운 여름에 넓은 사찰을 둘러보니 온 몸이 땀으로 뒤 덥힌다.

역시 사막으로 향해가는 길목답게 덥다.

시안 부근을 둘러보며 물만 5병을 사마셨다.

재미있는 것은 시안에 있는 동안 밤에는 비가 내리고, 낮에는 무더위기 기승을 부리는 독특한 날씨를 가지고 있다.

 

자은사 부근의 조각

 

대기가 맑지 않아 아쉬운 날이었지만, 자은사의 매력은 정말 대단했다.

 


자은사를 뒤로 하고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며 뒤돌아 보니 대안탑이 멋지게 보인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도 삼장법사와 함께 자은사에 들려보았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장안성의 중심에 있는 종루 방향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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