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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 Book ■

이상화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by 소이나는 2009.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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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었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들 마을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어도 보고 조흔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魂)아,
무엇을 찾는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신명이 접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
(1901~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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