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라의 주요 비문
눌지왕 포항 중성리 신라비
(441년 또는 501년) 재물 소송에 관련, 현존 최고(最古) 신라비, 2009년 발견
눌지왕
또는 지증왕 영일냉수리비
(433년 또는 503년) 영일 지방 재산 분쟁 판결,
신라를 ‘사로’로 기록
법흥왕 울진봉평신라비 (524) 율령, 사건처리, 삼국사기의 기록 입증자료
영천 청제비 (536) 제방
진흥왕 단양 적성비 (551) 소맥산맥, 관직명, 포상
창녕비 (561) 대가야 복속
북한산비 (555) 한강하류 - 후에 김정희가 고증 (높이 168cm, 너비 76cm)
황초령비 (568) 함흥지방진출 - 윤정현이 발견
마운령비 (568) 함흥지방진출 - 후에 최남선이 고증
진평왕 남산신성비 (591) 남한산성축조 - 일반 농민이 부역에 동원
임신서기석 (612) 유교경전(시경, 서경, 예기, 좌전)학습, 임금에 충성
→ 영토 확장과는 상관없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모름지기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즉, 시•상서•예기•전(左傳 혹은 春秋傳의 어느 하나일 것으로 짐작됨.)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 - 壬申誓記石 (임신서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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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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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백제의 목지국 복속 (3c 후반, 고이왕) ➝ 고구려 낙랑 축출 (313) ➝ 신라 소백산맥 이북 진출 (551, 진흥왕)
T) 백제의 마한 병합 (369) ➝ 소수림왕의 불교수용 (372) ➝ 백제 서기 편찬 (375) ➝ 신라 6부 (5세기 초)
➝ 지증왕 우경 (502) ➝ 신라 국호 정립(503)
T) 고구려가 옥저를 복속하고 낙랑을 공격한 시기
= 백제 6좌평 16관등제 확립, 율령반포
= 신라 낙동강 동쪽 진한 지역을 거의 차지
[사택지적비] [임신서기석] [남산 산성비] [영천 청제비]
(1) 낙 랑 - 점제현신사비 : 저수지 축조 기념
(2) 고구려 - 광개토대왕비, 중원고구려비
(3) 백 제
1) 무령왕릉지석 (남북조시대의 해서체)
2) 사택지적비 - 불탑과 불당을 건립한 것을 기념한 비, 북조의 해서풍, 4∙6변려체
“갑인년 정월 9일 나지성의 사택지적은 몸이 날로 쉬이 가고 달로 쉽게 돌아오기 어려움을 한탄하고
슬퍼하여, 금을 뚫어 진귀한 당을 세우고 옥을 깎아 보배로운 탑을 세우니, 높고 큰 자비로운 모습은
신광을 토하여 구름을 보내는 듯하고 아아한 슬픈 모습은 성명을 머금어 □□을 한 듯하다”
“甲寅年正月九日 奈祇城砂宅智積 慷身日之易往 慨體月之難還 穿金以建珍堂 鑿玉以立寶塔
巍巍慈容 吐神光以送雲 아아悲貌 含聖明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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