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朴殷植]1859 – 황해도 출생1898 – 독립협회1904 – 대한매일신보의 주필1906 – 황성신문 주필1906 – 대한자강회1907 – 신민회1908 – 서북학회1909 – 유교구신론1911 – 중국 망명1915 – 한국통사1916 –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1919 – 3.1 운동1919 – 상해 임시정부1920 – 한국 독립운동 지혈사1925 –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 추대1925 – 서거신채호 [申采浩, 1880.12.8 ~ 1936.2.21]1880 – 충남 대덕 출생1897 – 성균관1905 – 성균관 박사, 황성신문 기자1906 – 대한 매일신보 주필1907 – 신민회, 국채보상운동1908 – 독사신론1910 – 블라디보스토크 망명, 권업신문 주필1915 – 신한 청년회 (상해)1919 – 대한 독립 청년단 단장 (북경)1919 - 상해 임시정부1922 – 조선상고사, 조성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1923 – 의열단 선언문1924 – 다물단 조직1927 – 신간회 발기인1936 – 뤼쉰 감옥 옥사<2> 민족 문화 수호 운동Ⅰ. 한국사의 연구1. 민족주의 사학 (1) 특징 1) 우수성, 주체적 발전, 연구 활동, 자주성 고양 2) 애국적 계몽사학 계승3) 민족의 독립을 찾고자 정신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4)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고대사 연구에 주력5) 과거 만주지역에 거주했던 여진족 등 여러 북방민족을 모두 단군의 후예로 보아 북방민족의 역사를우리 역사에 포함시켰다.(X- 역사의 사회적 발전과정에 주목, X - 한국사학을 독립된 학문으로 정립시키는데 공헌)(2) 학자 박은식 혼신채호 낭가정인보 얼최남선 문일평 심1) (백암) 박은식a. 한국통사 (일본의 침략과정을 논, 1915),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안중근전, 천개소문전, 동명성왕실기, 몽배금태조, 명림답부전, 대동고대사론b. 민족사의 중용성, ‘혼’ (형, 신, 백)c. (신규식과) 동제사 조직, 임시정부대통령d. 유교구신론, 조선광문회 (양명학)e. 황성신문 주필, 서북학회 논설“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는 멸망할 수 있으나 그 역사는 결코 없어질 수 없다고 했으니, 이는 나라가 형체라면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형체는 없어져 버렸지만, 정신은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나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정신이 살아 있으면 형체도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한국통사」: 나라는 형이요, 역사는 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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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조선이 4,3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군자의 나라로서 일본에 문화를 파급시켰으며, 일본이 음식, 의복, 궁실과종교, 학술이 모두 한국에서 간 것으로, 일본이 일찍이 스승의 나라로 섬겼으나 현재는 종으로 삼았다.”“우리 민족은 단군 성조의 자손으로서 동해의 명승지에 자리잡고 있다. 인재의 배출과 문물의 제작에 있어서 우수한 자격을 갖추어, 다른 민족보다 뛰어난 것도 사실이다.” – 한국 통사“국체(國體)는 비록 망했지만 국혼이 소멸당하지 않으면 부활이 가능한데, 지금 국혼인 역사마저 불태워 소멸하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2) (단재) 신채호a. 조선 상고사, 조선사 연구초,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최도통전, 이태리 건국 삼걸전, 꿈의 하늘b. 화랑도의 ‘낭가사상’ 중시c. ‘다물단’d. ‘의열단’ 선언문 - 조선 혁명 선언 e. 신민회, 대한 매일 신보 논설, 독사신론 - 민족주의 사학 방향 제시f. 임시정부 창조파 - 무정부주의자g. 조선 상고사 - "역사는 我와 非我“, 고대사 연구 (∵ 민족적 패기를 되살리기 위해)h. 조선사 연구초 - 서경천도운동은 조선역사 1천이래 제일 대사건이다.i.1910년대에는 대종교도가 되어 동창학교에 참가 “내가 지급 각 학교 교과용의 역사를 보건대, 가치가 있는 역사는 거의 없다. 제1장을 펴보면 우리 민족이 중국 민족의 일부분인 듯하며, 제2장을 ~~ 즉 고대의 불완전한 역사라도 이를 상세히 살피면, 동국 주족 단군 후예의 발달한 실제 자취가 뚜렷하거늘 무슨 까닭으로 우리 선조들을 헐뜯음이 이에 이르렀는가~~” – 독시신록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무정신의 역사는 무정신의 민족을 낳고 무정신의 국가를 만들어 낼 것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3) (위당) 정인보a. 실학 정리 (신채호 계승), 신민사학의 허구성 논증b. 5천 년간 ‘조선의 얼’, ‘조선사 연구’, 양명학 연구론c. '얼‘ 사상d. 광개토왕릉 비문을 연구하여 일본 학자의 고대사 왜곡을 바로잡는데 기여“조선의 시조는 단군이시니 단군은 신이 아니요 사람이시라. ~ 얼은 남이 빼앗아 가지 못한다. 얼을 잊었다면 스스로 자살한 것이지 누가 가져간 것이 아니다.”4) (육당) 최남선a. 조선광문회 조직b. 불함 문화론, ‘’ 사상c. 백두산 중심 우리 문화가 동양의 원천이다.d. ‘조선역사’, ‘고사통’, ‘이씨조선’, 기미독립선언서5) 문일평a. '한미50년사’, ‘호암전집’b. 민족문화의 근본 = 세종 → ‘조선사상’, ‘조선심’ 강조c. 심사상 (3) 조선학 운동1) 계기 -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의 일환2) 내용a. 정약용 서거 99주기를 맞이하여 시작b. 조선 후기 실학을 근대사상, 주체성, 민족적•실용적•자주적 학문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c. 한국 문화의 고유성(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동시에 찾으려 했다. d. 과거 민족주의 - 국수적•낭만적임을 비판e. 1934 ‘여유당전서’의 간행 f.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활동g.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협진, 좌우합작을 운동의 현실적 목표로 하였다.3. 실증 사학(1) 특징 - 실증주의 사학 - 개별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밝히려함 (고중주의 바탕)(2) 진단학회 조직 1) 정치적 성격보다 문헌 고증에 치우치는 한계 (약간 식민지 권력에 무심)2) 청구학회 중심에 반발 - 이윤재, 이병도 (1934)(3) 이병도 - 한국 고대사 연구(4) 신석호, 김상기T) 실증주의 사학은 진단 학회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일제 침략을 폭로하기 위해 문헌 고증 중심의연구 방법론을 구사하였다? (X) ☞ 적극 활동 X, 정치성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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