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기타 ▦/기타 Etc.

돈키호테

by 소이나는 2009. 4. 15.
반응형

돈끼호떼는 누구인가
  돈끼호떼는 두번의 창조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물이다. 첫번째는 세르반떼스가 주인공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이 첫 과정에서의 작가와 돈끼호떼는 상호존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돈끼호떼의 개성이 세르반떼스의 소설 전개에 영향을 주었으리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증거가 1권과 2권의 돈끼호떼의 사람됨의 변천이다. 2권에서의 돈끼호떼는 2권처럼 광기가 충만하거나 무모하지 않다. 회의적이며, 생각이 많으며, 주저함이 두드러지고 있다.
 다음은 주인공이 자신 속에서 또다른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과정이다. 시골 영감 알론소 끼하노가 돈끼호떼로 자신을 창조해내는 그 모든 것이 미친 짓임에 틀림없지만, 미친 것치고는 너무나 실리에 밝은 면이 보이고 있다. 돈끼호떼가 모험에 지치게 될때 그는 다시 알론소 끼하노로 돌아올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결국 돈끼호떼와 알론소 끼하노는 반명제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존재이다. 이 두인간형은 돌아오는 지점에서 항상 서로 만날 뿐 아니라 돈끼호떼의 행동 양식이나 사고 속에서도 흔히 병행하는 존재이다.
  또한 돈끼호떼는 4사람의 작가에 의해 창조되는 주인공이다. 첫 작가는 1권 8장까지 이야기를 이끌어온 무명씨이고, 그 다음이 세르반떼스이다. 그리고, 아랍 사람인 아메떼 베네헬리, 마지막으로 세르반떼스가 아메떼 베네헬리의 책을 번역시키게 한 사람이 있다. 결과적으로 돈끼호떼가 이들 4사람의 작가들과 어떠한 관련을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 돈끼호떼의 신분을 아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돈끼호떼는 16세기 서반아인들의 한 전형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마치 방랑 기사들과 같은 자기 실현의 목표를 위하여 부와 영욕, 종교적 선교를 목표로 신세계로 향하는 시대적 조류에 마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16세기 서반아는 꿈과 현실을 누비는 '방랑기사'의 시대로 집약될 수 있다. 돈끼호떼는 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시람을 도와 주거나 과부들을 보살펴 주는 극히 인도주의적인 투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상은 결국 하늘과 땅의 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숭고한 차원에 이르고 있지만, 돈끼호떼 실제의 모습은 낡은 투구의 노쇠한 노인의 모습이다. 서반아 제국은 무적함대의 참패와 더불어 기울어지기 시작하고 세르반떼스 자신도 그러한 국가의 운명과 비슷한 고난의 인생 행로를 경험한다. 대제국의 영웅주의도 작가의 영예도 가혹한 현실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돈끼호떼가 기사도 풍자의 희생이 된 것도 영웅주의적인 세르반떼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적인 아픔의 결과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돈 끼호떼의 영웅주의가 완전히 패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만인의 귀감이 될것을 의심치 않았다. 중국의 황제가 자신을 총장으로 초대했다는 말까지 하고 있으며, 이는 영웅주의의 완전한 패배로 보는데 대한 반론이기도 한 것이다. 16세기의 서반아 영웅주의의 쇠퇴는 방랑기사들의 인간 구원적 휴머니즘을 탄생시키고 무력적이고 집단적인 점령 목표를 개인 실현으로 유도하고, 문학에 의한 제국주의로 전환시키지만, 인간의 실존 앞에서는 무력해 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 기사소설의 열광적인 인기는 서반아에 있어서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세르반떼스는 이러한 기사소설을 사실로 받아들는 풍조가 만연되자 세르반떼스 자신을 포함해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한 의도에서 돈끼호떼가 집필되었던 것이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기사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거짓과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깨우치려고 하였으나, 소설이 전개되면서 세르반떼스는 점차 돈끼호떼를 하나의 뼈와 살을 가진 인간으로 여기게 된다. 5장에서 돈끼호떼는 "... 나는 내가 누군지 아오.. 그리고, 또한 내가 여태까지 말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소." 라고 말한다. 여기서부터 돈끼호떼는 환경의 틀을 깨치고 하나의 개성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돈끼호떼의 의식은 산초와 쁘레스똔의 가담으로 더욱 인간화된다.
 1부가 무명씨로 한 것은 당시 유행하던 단막극의 소재에서 너무 많은 것을 모방하다보니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물론 당시 원작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였다.
 5장부터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미친 돈끼호떼의 모습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으로 여길만한 올바른 소리도 자주 한다. 7장, 8장에 접어들면서 돈끼호떼는 이제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바뀌게되고, 산초의 등장은 돈끼호떼를 이상주의자로 채색하기 시작한다. 이제 돈끼호떼는 자기의 운명과 싸우는 형이상학적인 투쟁가로 변신한다. 세르반떼스의 처음 의도는 이제 그 농도가 엷어지게 된다.
  똘레도의 한 시장에서 발견한 돈끼호떼의 저자는 아라비아인 역사가이다. 그리고 풍차로 변하여 돈끼호떼를 혼내주었던 쁘레스똔도 아라비아인이다. 아라비아란 나라가 신비스럽고, 마술의 나라라는 이미지가 있음을 볼때, 이들 두 사람은 돈끼호떼에게 있어 불가사이한 운명의 그림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그려진 돈끼호떼의 삶은 알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의 노예일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당시 서반아 현실의 몰이해와 조롱의 노리개감으로 나타난다. 그의 선량한 의도는 모두 수난의 행로와 마주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행동은 변명거리를 가지고 있다. 베네헬라라는 사람이 기록을 잘못했을 수도 있고, 번역가가 잘못 번역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변호사는 아라비아의 마술사이다. 돈끼호떼가 사실과 환상을 구분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술사가 마술로써 사물을 바꿔 놓기 때문이며, 마술사의 그러한 능력을 알고 있는 돈끼호떼로서는 사물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때를 군대로 여기거나, 풍차를 거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돈끼호떼는 자신의 행동이 미치광이로 보이는 것은 마술사가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끼호떼는 자신의 이해나 능력이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마술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돈끼호떼는 불가항력적인 현실의 불행과 역부족을 마술사의 둔갑이나 거만이라는 상태로 상징화 시킨다. 그는 자신의 꿈과 희망 때문에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거나,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을 때 현실을 꿈으로 본다. 마술사는 여기에서 그의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돈끼호떼는 신비한 힘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현실은 의미와 상징으로 변화한다. 그는 아라비아의 마술사의 힘에 의해서 현실에서 곧장 의미의 세계로 승화한다.
  돈끼호떼는 알론소 끼하노가 미쳐서 만들어진 인물이다. 문학을 미친 상태로 신들린 상태와 같다고 하는 것이 플라톤 때부터 생각해온 영감이다. 그의 길은 현실적인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발걸음이 산출하는 미학적 향기에 있다. 세르반떼스의 문체는 어떻게 한 문학속에서 주인공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갖가지 환경 속에서 맞부딫치고 진행되어 나가는가를 보는 것이었다. 돈끼호떼는 세르반떼스의 로보트가 아니다. 스스로 성장하고 생각하고 늙어가는 하나의 개성이다. 그도 마지막에는 늙어가고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 알론소 께사다에서 출발해 돈끼호떼가 되고 지치면 다시 돌아오는 시골영감, 예술은 꼭 예술가와 삶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둘은 끝까지 상호 보완 관계를 유지한다.
  세르반떼스는 돈끼호떼가 되면서 삶을 얻었다. 그는 미쳐서 살았다. 삶은 죽음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산다는 것은 미쳐서 사는 길이다. 삶은 움직이는 죽음이다. 그는 미쳐서 존재를 회복한 것이다. 그래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미쳐서 사는 것이 바로 예술이며, 삶인 반면에 세속적 관념에 밝아 사는 것이 죽음임을 돈끼호떼는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미쳐버린 돈끼호떼는 산초와 더불어 영원히 로시난떼를 타고 우리의 가슴속을 휘젖고 다니고 있는 것이다.

        돈 끼호떼속의 성서  
  종교와 문학과의 관계는 구많은 이견이 있으나, 그 어느것도 문학과 종교가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인 결론을 전제로하여 돈 끼호떼를 만든 세르반떼스의 종교성을 알아보고 그 과정 속에서 그의 종교성이 돈 끼호떼 작품속에 어떻게 투영된 있나를 보기로 하자.
 그러면 먼저 세르반떼스의 성서에 대한 지식의 정도를 알아보기로 하자. 그는 비록 대학에는 다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작품을 볼때 여러 고전, 특히 성서에 정통해 있음을 알게 된다. 세르반떼스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성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있으며, 성서를 자기 사상으로 소화하며 언급하기도 하며, 동시에 성서적 암시를 적재적소에 사용하기도 한다. 그의 사후에 발표된 'Los trabajos de Persiles y Sigismunda'는 구약중 가장 어렵다고 하는 레위기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성서지식의 정도를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서에서 부주의하게 잘못 인용된 어구가 보이는데, 이는 세르반떼스의 고의적인 유우머로 해석함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이것은 그의 성서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기 보다는 오히려 성서에 대한 지식이 엄청남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성서에 대한 지식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부분은 돈 끼호떼 2부 27장에서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이웃과의 싸움을 포기하도록 권고하는 연설에서인데. 거기서 이 연설을 들은 산초는 자기 주인이 신학자가 아닌가하는 말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이 세르반떼스는 성서에 정통해 있었고, 이는 많은 주석가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William R. Mueller는 "성경이 수십 세기 동안 끼쳐온 심원한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작가는 없다. 작가가 아무리 성경을 떨쳐 버리려고 애써도 성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처럼 서구에서 성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르반떼스가 성서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하는 것이 성경에 대한 그의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돈끼호떼를 통해 그가 성서에 대해 지녔던 태도와 그의 종교관을 살펴 봄으로써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돈 끼호떼 전 작품에 걸쳐 세르반떼스는 한번도 성경을 가벼이 여기거나 빈정거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가 성서에 대해 깊은 존경심과 동감을 표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세르반떼스가 성서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은 성서의 신성 혹은 신적 계시성(Divinidad)에 있었다. 그는 돈 끼호떼 1부 서문에서 성경을 세번이나 Divina Escritura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그는 그 작품에서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의 성서에 대한 두번째 개념은 성서의 진리성(Verdad)이라고 할 수 있다. 돈끼호떼는 성서에 존재했던 여러 인물들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 최대의 사도인 바울에 대한 그의 감격과 존경심은 실로 지대하였으며, 돈 끼호떼 1부 37장에 나오는 文과 武의 연설에서는 성서의 목적 즉, 사람의 영혼을 천국으로 이끄는 것을 명쾌히 언급하고 있다.
 세르반떼스는 성서를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서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돈끼호떼의 광기는 선하고 고귀한 것이었다. 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약자를 도우려는 숭고한 목표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색채를 띄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세르반떼스의 정신을 사로잡고 있었던 성서가 그의 작품에 표현되어 있고 배어 있음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의 돈끼호떼
 세르반떼스의 돈끼호떼는 수많은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어 그에 대한 해석이 없고서는 작품에의 접근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세르반떼스는 돈끼호떼를 편력 기사로써 가장 높고도 모험스런 標高에 올려 놓음으로써 그의 시적 세계관을 이루어 놓았다. 그리고 사건 전개의 매순간마다 돈끼호떼의 상징적 재해석이 필요성을 더하는 까닭에 오늘날까지도 돈 끼호떼는 새로운 가치를 얻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양상이 1900년대에들어 서반아 사람들에게 어떠한 상징으로써 서반아 사람들의 정신을 자극하였는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돈 끼호떼의 철학적 상징의 의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사람은 98세대의 미겔 데 우나무노였다. 그는 돈 끼호떼를 이분하여 광기와 이성으로 나누었다. 이 이분론은 그후 서반아 지성인들에게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그 이유는 우나무노가 세르반떼스의 불멸의 작품을 역사적 시각에서 의미를 파악하고 숭고화, 활성화시켜 그가 갈망하는 서반아 현대화에 능동적 상징의 인물로써 그의 신화를 가능케하는 원동력으로서의 돈 끼호떼를 해석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98년까지의 그의 돈 끼호떼에 관한 의견은 이와 같지 않았다. 그는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는 돈 끼호떼와 같은 정신 이상자는 죽어야 했으며, 善子 알론소 끼하노는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민의 안정과 평정은 이제는 끼하노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할 이상과 현실의 조화라는 것이다. 1905년이 되자, 알론소 끼하노는 평온한 가정 생활로 여생을 마치려고 하고 있었고, 돈끼호떼는 불멸의 열렬한 희망을 가지고 시대를 초월한 서반아의 광란자로 부활하기 위해 제 3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신성화, 그리고 현실적인 뜻으로서 행동하는 이상주의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우나무노는 이러한 이상주의가 그 시대에서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어 그의 절망은 극에 이른다. 이상주의자는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미친 자들이 이 세상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데도 왜 이상주의자들은 이 땅에 존재할 수가 없단 말인가? 돈 끼호떼는 이상주의자였다. 그의 정신은 고귀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당연히 최고의 이상주의자로써 그의 이상향은 이 세상에 선을 행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만일 돈 끼호떼가 다시 서반아에 돌아온다면 서반아는 회복될 것이다. 논리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이상이 좌절되었는가. 돈끼호떼의 계획을 수포로 만든 것도 지식인들의 소위 논리, 돼지같은 논리가 아니었던가. 우나무노는 그러한 엘리트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19세기 후반, 중상층의 물질주의가 만연할때, 인간의 위대하고 원대한 열망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길이 바로 서반아를 살리는 일이며, 서반아 인들은 국민 모두가 서반아를 위해 돈끼호떼가 되어 봉기해야 한다고 했다. 이성에 맞게만 행동해서는 결코 서반아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윤리가 가장 인간적인 것을 파괴하였고, 위정자들은 언제나 "왜?"와 "무엇 때문에?"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적인 이상과 꿈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논리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사실주의를 배척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서반아 영혼의 살아있는 상징이자, 서반아를 재건할 수 있는 돌파구를 돈끼호떼로 삼고 그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안또니오 빠로메오는 당시에 필요한 인물은 상아탑속에 갖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자신을 신뢰하는 돈끼호떼와 같이 미칠 수 있는 자라고 헀다.
 아소린은 돈끼호떼의 광기나 알론소의 행적에 대해서도 깊은 연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둘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돈끼호떼의 자유추구의 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서 돈끼호떼는 이데올로기적인 측면보다는 선자 알론소 끼하노의, 만사에 침착한 성품을 자연 풍경을 통해 투사함으로써 돈끼호떼의 가치를 미적으로 승화시킨 데 있는 것이다. 그는 풍경을 통해 서반아의 실상을 이해하고자 한 사람 중 하나였다.
 라미로 데 마에쮸에게 돈끼호떼는 앞서의 의견과는 상이한 퇴폐적인 존재였다. 국민들은 돈끼호떼를 읽으면서 그들의 실패와 낙단을 위로할 수 있고 세르반떼스가 그 작품을 쓸 때 그의 자조적인 자세때문에 자기 자신도 너무나 환상에 가득찬 글을 썼다고 믿었으며, 당시의 서반아는 무리한 모험으로 지쳐있을 때라 이제는 쉴 때라는 것을 돈 끼호떼에서 암시받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돈 끼호떼에게서 서반아의 패망의 원인을 찾았다. 따라서, 이상의 날개짓을 힘차게 내저었지만 현재는 침대에서 죽어가는 돈끼호떼를 어떻게 서반아 재건의 모델로 삼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1900년대에 있어서 돈끼호떼의 신화가 미적으로 최고봉의 자리에 앉게된 것은 루벤 다리오의 공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돈끼호떼는 50세를 먹은 우수에 젖은 스페인 군인으로서 모든 패배를 맞본 뒤, 스페인 대신 자기몸을 바다에 던지는 영웅이다. 돈끼호떼의 죽음은 이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또한 돈끼호떼는 시적 이미지상으로 자기자신을 초월하고 있는 실체이다. 그러나, 루벤 다리오의 주장은 서반아의 이상을 지지하는 암호의 메세지로의 존재가치는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3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야 돈 끼호떼가 서반아 병에 임상의학으로 요구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정치적 영역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목격한 90년대 지성인들은 계속되어가는 경직성에서 스페인을 구할 방도는 정치와는 무관한 활동에서나 사고 영역에서 찾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라파엘 알따미라는나라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심리를 형성한 근간을 해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많은 당시의 작가들이 스페인의 무기력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대륙의 영혼에 대한 추구, 국민 심리의 파악, 스페인 역사의 탐구등에 몰두하였는데, 이는 돈끼호떼의 재고찰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스페인 국민성의 근거이자, 무기력과 발작의 상징이며 신화로 존재했던 돈끼호떼가 스페인 국민을 무기력에서 활성화 시키는 인간 의지의 투쟁원이자 모범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돈 끼호떼는 자기 자신을 성립하고 그 존립을 위해 사회의 모든 전통, 관습을 우롱하면서 인간성의 한계를 넘는 최대의 의지사적 존재로서 묘사되어지고 있다. 그는 의지의 인간, 자기 외부와의 싸움은 바로 초인간적인 힘의 의지를 내보이는 자, 결국은 그리스도적 존재로까지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90년대의 대부분 작가들이 결론내리지는 못했으나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돈 끼호떼의 신화였던 것이다.

           돈 끼호떼 작품속에 나타난 동양 이미지
   차이란 유사성을 바탕으로 한다. 기독교나 동양의 道 사상도 유사성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서양문화가 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중세의 신 중심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소위 인간 중심주의라고 하는 폭 넓은 우주관을 수용하면서 동서가 공유하는 유사성의 영역이 넓어지게 된다.
 1571년 사이에 서반아인들에 의해 오늘의 필리핀이 점령되고 당시 필립 2세의 이름을 따 필리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제 동양은 서반아인들과 포르투갈인들에게는 약간 이색적인 자신들의 삶의 영역이 된다. 이리하여 서구의 문화도 사회현실도 동서양이 함께 교류하는 유사성의 광장으로 변한다.
   르네상스에 들어와 마르코폴로의 동방 견문록이 판을 치고 서반아와 포르투갈의 많은 신부들이 동양으로 선교와 정복활동을 나서자 구라파의 상류층 사이에는 갖가지 진귀한 동양 물품들이 유행한다. 필리핀이 서반아에 정복되고 일본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에까지 수많은 서반아,포르투갈 선교사가 왕래할 무렵 서반아의 일상생활은 동양물에 젖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상품만을 따라 동양으로 가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영감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양탄자며, 고급 장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닐라 스카프에 동양식 머리빗을 꽂고 손에 부채를 든 모습이 마드리드 여인의 정장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돈끼호떼 2부에 나오는 후작집의 귀부인들의 모습에는 반드시 동양에서 온 진귀한 물건들이 표현되어 있다. 세르반떼스가 즐겨쓰는 진귀한 물품중에는 동양 진주가 있다. 이 동양 진주라는 표현은 당시 이미 상투어가 된 표현으로써 세상 가장 진귀한 것의 대명사였다.
  문학에서도 르네상스의 서사시나 기사소설에는 흔히 동방에 대한 먼 나라의 이미지로써 마르코 폴로의 `동방 견문록`에서 영향받은 낯선 왕국들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리오스또의 <성난 오를란도>가 있다. 이 걸작은 까따이의 공주 안젤리카를 불멸화 시킨다. 오를란도의 플라토닉한 사랑이 두드러지는 작품의 대상이 되었던 안젤리까는 돈끼호떼에서는 둘씨네아로 표현된다. 세르반떼스의 안젤리까에 대한 생각은 그가 가지고 있던 까따이에 대한 연상과 같다. 르네상스의 모험정신과 이국 취향이 낳은 까따이의 이미지가 바로 안젤리까이다.          돈끼호떼는 안젤리카나 까따이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둘시네아가 산초의 말처럼 천하고 못생긴 시골처녀라고 해도 끝내 믿지않듯 돈끼호떼는 안젤리까가 이해할 수 없고 다다르기 어려운 여인이나 이 또한 아름다움과 고운 마음의 고향임을 한번도 잊지 않는다.
  돈끼호떼에서 멀고 이상한 나라의 이름으로 동양의 어느 고장을 일컷는 듯한 이름은 수없이 많다.'인도의 환사제의 땅',`동인도', '뜨라뽀바나'등이 그것이다. 모두기 해가 떠오르는 곳을 향해 있는 명칭들이다. 깐따야는 인공적인 이름이다. 세르반떼스는 이 이름을 상당히 구체적인 동방의 어느 나라를 표현한 것이다. 그는 이나라를 현실과 꿈이, 동방과 서방이 하나인, 시가 있고 행복과 평화가 있는 인간의 고향에 대한 염원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돈끼호떼 2권의 서문에서 레모스 공작에게 바치는 글에서 세르반떼스는 `중국 황제의 편지`에 대해 얘기한다. 그가 자기 소설의 세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국이나 중국 황제를 들먹인 이유로써 서반아 학계에서는 중국 황제의 편지를 들먹인다는 사실이 세르반떼스가 늘 쓰던 환상의 일환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즉 레모스 공작에게 애교있게 원조를 끌어내기 위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로 가장 황당무계한 사설을 늘여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세르반떼스는 그러한 농담이나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이 돈까호떼의 죽음과 더불어 거의 시들어 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돈끼호떼나 세르반떼스의 마지막 인생의 꿈은 목가의 세계였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목가소설 갈라떼아의 2권을 끝내는 것이었고, 귀향하는 돈끼호떼의 소망또한 목 활이었다. 그러나, 목가적 꿈은 사실상 현실에서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것이 돈끼호떼의 마지막 사고요 세르반떼스가 `갈라떼아`의 2권을 끝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깐따야나 목가 생활 같은 이상까지도 체념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하필 중국을 이야기한 것은 세르반떼스의 중년이후의 소망이 중남미나 동양에 자리하나 얻어 나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세르반떼스가 2권에서 몇번 중국을 언급한 것은 오히려 그의 문학적 명성을 감안한 허장성세다.
  돈 끼호떼에서 까따이나 깐따야, 기타 유사 동양 지명은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의 영향권에 속한다. 이러한 지명의 사용이 단순한 환상적인 측면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이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적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르반떼스는 돈끼호떼에서 꿈과 환상의 기틀로 까따이를 사용한다.
이들 이미지는 다른 어떤 상상적 지명과도 다를 것이 없는 마술적 차원이다. 그러나, 그런 마술적 세계는 치나라는 사실적 바탕위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즉 세르반떼스는 동양을 꿈만으로도 현실만으로도 보고 있는게 아니다. 그는 오히려 꿈속에서 보다 선명한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 속에서 꿈의 무늬가 엄숙해지는 정경을 꿰뚤어보고 있다.
 세르반떼스는 동양을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광기와 사실,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져 이뤄가는 깊은 인간 실존의 상황이며 소설이라는 픽션속에 참과 영원의 목소리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응형

'▦ 기타 ▦ > 기타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로이드  (0) 2009.04.20
기업의 사회적 책임  (0) 2009.04.19
생태주의  (0) 2009.04.18
김치의 역사  (0) 2009.04.17
김춘수 꽃  (4) 2009.04.16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0) 2009.04.13
비잔틴 제국  (1) 2009.04.12
방송과 광고 언어  (1) 2009.04.11
헤겔에 대한 소고-맑스의 응답  (0) 2009.04.10
지구온난화  (0) 2009.04.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