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경래의 난 (순조, 1811)
(1) 원인
1) 세도정치의 폐해, 서북인에 대한 차별
2) 지주제의 모순에 따른 갈등과 대립
3) 경제 - 영세 농민, 밀무역·잠채 광업 규제책 시행 (1808)
4)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억누르는 중앙의 간섭, 어용상인의 특권 등에 대한 불만이 작용
5) 백성에 대한 수령의 지나친 수탈 - 용천, 선천, 가산, 박천, 정주 지방
6) 평안도민 중 대외 무역과 광산개발에 참여하여 부호로 성장한 인물이 많았다.
T) 다른 지역보다 많은 사족 층의 수탈 때문이었다? (X) ☞ 이 지역에 사족 층이 형성되지 않음
(2) 홍경래 (토호출신), 우군칙 (서얼), 이희저(역노), 김창시(토호)
(3) 영세농민, 중소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
(4) 한때 청천강 이북을 차지하고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5개월 만에 평정 - 청천강 이북에서 평정 (x- 전국적)
(5) 결과 - 농민 항쟁의 선구적 역할
☞「패림」- 홍경래의 난
“지금, 임금이 나이가 어려 권세 있는 간신배가 그 세를 날로 떨치고, 김조순, 박종경의 무리가 국가 권력을
오로지 가지고 노니, 어진 하늘이 재앙을 내린다. ~ 이제 격문을 띄워 먼저 여러 고을의 군후에게 알리노니,
절대로 동요하지 말고 성문을 활짝 열어 우리 군대를 맞으라.”
☞ “관서는 ~ 평안도 놈 ~ 격문 ~”
2. 임술농민봉기 (진주 민란, 철종, 1862)
(1) 원인
1) 경상우병사 백낙신, 진주목사 홍병원의 탐관오리, 탐학에 저항
2) 세도정치 폐해, 지주전호제 모순
3) 도결의 확대, 총액제
4) 조세 제도 운영에 대해 문제제기, 과중한 부세수탈
(2) 괘서, 벽서 등의 형태로 표출되던 농민저항이 전국규모로 폭발한 대표적인 예
(3) 유계춘 중심 ‘백건당의 난’
(3) 내용
1) 경상도 단성에서 시작 → 진주로 파급
2) 삼남지방 집중, 70개 군현에 달함, 제주도에서도 일어났다.
3) 대개 군 단위로 전개되는데 발통, 향회, 정소, 봉기, 관청점령의 과정을 거친다.
4) 지방 사족도 농민과 함께 정부에 저항, 지방토호, 몰락 양반, 빈농, 요호부민, 지방 유력자도 참여
5) 주로 상업적 농업이 발달하고 농민층 분화가 진전된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
6) 악질적인 아전을 타살하고 관아의 건물을 점령하여 읍권을 장악하는 등 정치적 성향도 있었다.
7) 도결의 혁파와 동포제 실시 요구
8) 소농·빈농을 이루는 소민들이 부호나 양반 지주를 공격한 경우가 많았다.
T) 지주 제도를 개혁하고 신분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X)
(4) 안핵사로 박규수를 파견, 삼정 이정청이 설치해 문란을 시정한다고 했지만, 실현되지 못하였다.
(5) 의의 - 반봉건 정치의식 표출
(6) 결과 - 전국적으로 농민항거가 퍼져감
☞ 농민항쟁의 와언 단계
“근래 부세가 무겁고 관리가 탐학하여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없어서 모두가 난리 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요망스러운 말들이 동쪽에서 부르짖고 서쪽에서 화답하니 이들을 법률에 따라 죽인다면 백성으로서 살아남을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 혹 흉악하고 반역하는 무리들이 뜻을 잃고 나라를 원망하여 일을 꾸며서
난리를 일으키려고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먼저 유언비어를 퍼뜨려 백성들의 뜻을 어지럽힐 것이다.”
* [조선] 8. 조선 후기 사회 (예언사상, 비기, 도참, 조선 후기 종교,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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