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전기의 광업
(1) 선초 - 국가의 통제, 농민의 부역 동원
(2) 15세기
1) 철 광업 발달 - 선공감(수도 건설) / 군기감(무기 공장)
2) 염철업 - 토지 면적에 따라 철 수취
3) 철장제 - 동원하여 영·진에 철을 공급
4) 철장도회제 - 농한기에만 농민 동원
5) 야철 수공업
6) 각읍채납제 - 철강을 보유한 마을만 공철 부과
(3) 연철취련조은법 등장 (1553) - 김감불, 김검동 ➝ 납에서 은을 분리 제련
(4) 폐해 → 16세기 : 부역 동원을 거부
1) 각읍 채납제 폐지, 대납제 보편화
2) 잠채 발생 - 은의 수요증대로 이득이 많았기 때문 (청과 무역증가)
3) 사채허용
4) 채은 경차관 파견
2. 조선 후기의 광산 경영
(1) 17세기
1) 사채 허용 - 민간인의 광물 채굴이 어느 정도 가능 ➝ 세금을 받음
2) 설점수세제 시행
a. 국가 재정을 보충, 중국과의 무역을 활성화하는 데 목적
b. 효종(1651) 때 재정하여 민간인들의 광산 경영을 허가하고 호조에서 별장을 파견하여 세금을 거두어들임
3) 발달 배경
a. 민영 수공업의 발달
b. 청과의 무역 - 은점이 많이 설치되었다.
4) 각읍월과 군기법
5) 은·연광업 발달 - 별장수세제
6) 유황 광업 발달
(2) 18세기 후반
1) 수령수세제 - 영조 때 별장수세제를 완전히 혁파, 본읍의 수령으로 수세하게 하였다.
2) 잠채의 성행 - 덕대를 고용한 몰래 채굴
3. 광산의 경영
(1) 덕대가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채굴업자인 혈주와 노동자를 고용하여 채굴하는 자본주의 경영방식
* 덕대 : 광산 채굴의 실질적 경영 전문가 (18c말)
(2) 분업화
☞ “상인이나 지주가 물주가 되어 광산에 자본을 투자하고, 별도의 경영자가 십여 명 또는 수십 명의 광군을
임금 노동자로 고용해서 광산을 개발하고, 물주에게는 일정한 몫의 분배금을 제공하였다.”
cf) 경제야언 (1788, 정조, 우정규)
1) 경세제민의 방책을 기술한 책, 조선 후기 사회적 모순을 통찰하여 그 개선 방안을 직접 왕에게 진언.
2) 부상대고들이 제각기 재물을 분담하고 고용 노동자들을 모집하여 은점을 경영할 것을 제의.
* [조선] 10. 조선 후기 경제 (조선 후기 민영수공업, 선대제 수공업, 대장간 김홍도) -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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