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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y 한국사 ※

[개화기] 7. 개화당의 개혁운동, 갑신정변 (개화당, 온건 개화파, 급진 개화파, 우정국사건, 한성조약, 톈진조약)

by 소이나는 2012.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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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당의 개혁운동


Ⅰ. 개화당

 

 1. 형성


  (1) 정치 - 박규수, 유홍기 →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2) 온건 개화파

    1) 양무운동에 영향 받음 (중세처용)

    2)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3) 동도 서기론 - 윤선학, 곽기락    “바꾸려는 것은 기이지 도가 아닙니다.”

    4) 청, 사대당, 수구당

    5) 민씨에 참여

    6) 기술만 수용

 

  (3) 급진 개화파

    1) 메이지 유신에 영향 받음 (문명개화론)

    2) 김옥균, 박영호,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3) 개화당, 독립당

    4) 갑신정변

    5) 사상, 제도까지 수용                                                                                                                         (soy한국사)

    cf) 홍영식 - 보빙사, 우정총관, 병조참판


   ☞ “우리는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지금 빈손으로 돌아가면 집권 사대당이 나를 비판하며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당)개화당)이 심한 타격을 받을 것이며, 우리 개혁안도 없어질 것이다.

       조선은 청에 영구히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당과 사대당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최후의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


   ☞ 김유식의 일기 「속음청사」

      “처음 김옥균은 박규수 선생의 문하에서 배웠다. 자못 천하대세에 밝았고 일찍이 동지들과 나랏일을 염려하여

       한탄했다. 1881년, 나는 영선사로 톈진에 들어갔고 김옥균은 여러 사람들과 같이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건너갔다. 다 같이 나라를 위해 힘쓸 것을 기약했다. 이때로부터 청나라는 우리나라 일에 자주 간섭하고

       나는 청국 당으로 지목되었다. 김옥균 등은 청나라가 우리 자주권을 침해하는데 분노하여 마침내 일본 공사와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마침내 일본 당으로 지목되고 일이 허사로 돌아가자 세간에서는 그를 역적으로

       규탄했다. 나는 정부에 몸담고 있었기에 소리를 같이 하여 그를 죄인으로 몰아 벌하지 않을 수 없었다.”


  (4) 충의계 (1870년대)

   1) 김옥균 중심 정치적 결사체   2) 유생, 궁인, 궁녀, 내시, 상인 등 여러 계층 포함

   3) 실학적 요소, 세계흐름, 자본주의 지식 습득하여 조선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믿었다.


 2. 개화 시책 추진

  (1) 개화당이 고종의 신임을 받음

  (2) 유학생 파견

  (3) 박문국 - 최초 신문 ‘한성순보

  (4) 우정국 - 최초 우편

  (5) 치도국, 순경국 설치

  (6) 자금 부족, 일본 냉담, 청 견제로 한계








Ⅱ. 갑신정변 (1884)


 1. 배경

  (1) 민씨의 군권 장악  (2) 차관 교섭 실패  (3) 청군 철수  (4) 일 공사의 지원 약속


 2. 경과


  (1) 경과

   1) 명문 양반출신 청년 관료가 주도 (급진개화파 - 메이지 유신 모델)

   2)  우정국 사건 - 수구 사대당 살해 → 개화당 정부 (14개조)

   3) 광주의 수어청을 근거로 개화세력의 군사세력을 양성하기도 함

   4) 농·상·공업을 육성하여 자본주의 국가를 세우려함


  (2) 내용

   1) 청 사대 폐지, 자주독립, 대원군 송환

   2) 입헌군주제(최초시도), 내각제

   3) 인민평등, 인재 능력 등용, 내시 폐지 (불필요한 기관 폐지)

   4) 지조법 개혁

   5) 재정을 호조로 일원화

   6) 상공업 : ‘혜상공국’ 폐지

   7) 환곡제 폐지, 환상미 영구히 받지 않음

   8) 탐관오리 처벌

   9) 문벌폐지 (신분제 폐지) - 봉건타파 (근대화 운동)

  10) 규장각 폐지

  11) 형사, 군사 개혁, 순사를 두어 도둑 방지

  12) 죄인감형

  13) 4영 → 1영 / 근위대 설치

  14)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3) 한계

    1) 위로부터의 개혁 : 민중과 유리, 토지제 개혁외면

    2) 일본에 의존 : 국방 개혁 소홀

    3) 청국 개입 - 3일 천하 ➝ 박영효, 김옥균 일본으로 망명


 3. 결과

   (1) 한성 조약 체결 (1884) - 보상금, 공사관 신축비용

   (2) 톈진 조약 (1885)

     1) 주청 영국공사 파스크 중재 ➝ 일본 이등박문과 청의 이홍장 사이 체결

     2) 4개월 내 일·청의 군대 철수 - 파병시 미리 알릴 것 = 일본의 파병권 획득 → 후에 청일전쟁에 영향

     3) 일본은 청과 대등한 위치를 점

   (3) 동도정권 재수립

   (4) 노비세습제 폐지 조치(1886)


 4. 영향 - 청의 간섭, 개화 운동 흐름 약화


 5. 역사적 의의 - 우리나라 근대화 운동의 선구 



 

[한성조약]

 

제1조 조선국은 국서를 일본에 보내 사의(謝意)를 표명한다.

제2조 일본국 조해인민의 유족 및 부상자를 휼급하고 상민(商民)의 화물이 훼손 약탈된 것을 보전하여

      조선국에서 10만원을 지불한다.

제3조 이소바야시[磯林] 대위를 살해한 흉도를 사문 나포하여 엄벌에 처한다.

제4조 일본공관을 신기지로 이축함을 요하는 바, 조선국은 마땅히 기지 방옥(房屋)을 교부하여 공관 및 영사관으로

      사용하도록 할 것이며, 그 수축 증건을 위해서 조선국이 다시 2만원을 지불하여 공사비에 충용하도록 한다.

제5조 일본 호위병의 영사(營舍)는 공관 부지를 택하여 정하고, 임오속약(壬午續約 = 제물포조약) 제5 관에 따라

      시행한다.

 

- 별단(別單) -

1. 약관 제2·4조의 금액은 일본화폐로 계산할 것이며, 3개월을 기하여 인천에서 완불한다.

2. 제3조의 흉도를 처단함은 입약 이후 20일을 기한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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