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있고, 두견새는 날아갔고...
인천 중구 송학동에서
비가 오는 날은 누군가에게도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다.
그 누군가에 속해 있는 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비가 오늘 날에 대한 기억을 가장 먼저 꺼내는 것은 어린 시절의 풍경이다.
시골 마을에 비가 내린다.
빗방울은 너무 거세지도 않고, 이슬비처럼 너무 가늘지도 않다.
적당한 빗방울이 하늘에서 대지로 사뿐히 내려 앉는다.
작은 방에서 빗소리가 들려 작은 마루가 있는 뒷문을 열으니, 뒷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초록 빛의 잡초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잡초들 사이에 간간히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는 자신은 들꽃이 아니라 마치 귀족인양 허세를 부리고 있다.
책을 하나 들고 마루로 나가려다 물이 튈까봐 돌아서 문지방에 기대 앉는다.
책은 '어린이 세계 명작 100선' 그런 것 중에 하나이다.
집에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읽은 책을 또 읽고 또 읽었다.
그때는 책 속의 이야기들이 어찌나 흥미진진하고 실감이 났었는지 어른이 된 지금과는 책을 대하는 마음이 달랐었다.
이 날은 '암굴왕'을 읽고 있었다.
집에 있는 이 책의 제목이 암굴왕이라고만 써있어서, 암굴왕이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이름의 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것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책을 읽고 있으니, 할머니께서 부엌에서 노래를 틀어 놓으셨다.
"종로로 갈까요. 영등포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많은 사람 오고가는 을지로에서 떠나버린 그 사람을 찾고 있어요..."
트로트는 어째서인지 나이가 들어서 보다 어려서 좋아했던 것 같다.
아마도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트로트를 자주 들으셔서 그랬을 것이다.
트로트 소리에 흥얼 흥얼 거리며 읽던 책을 내려 놓고 잠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멀리서 두견새 한 마리가 날아와 담에 앉아 운다.어린 아이는 그저 새 소리가 좋았다.
잔잔히 들려오는 트로트 소리는 이미 멀리로 던져 버리고, 새의 노래에 빠져 버렸다.
책 속의 흥미 진진함도 비할바가 아니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새의 소리는 울음이 되어 처량하다.
'나의 집은 이 곳인데, 너의 집은 어디기에 비를 맞으며 서글피 울고 있는지... 아마도 홀로 떠돌아 갈 곳 없어 잠시 내게 들렸으리라...'
아직도 비는 내리고 나의 시선을 받은 두견새는 자신의 슬픔을 잊지 말라는 듯 이 장면에 대한 기억을 내게 심어놓고 날아갔다.
'아마도 내게 추억을 주고, 멀리 소월에게 날아가 접동새가 되었겠지...'
- 접동새 -
- 김소월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津頭江)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어워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랍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夜三更)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새는 날아갔다.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사진 한 장 남겨 놓고 새는 빗 속으로 날아갔다.
'아마도 빗 속에 나를 찾은 것은 내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였겠지, 그저 어린 마음에 추억으로 남으라고...'
그 마음이 고마워 비가 내릴 때마다 추억을 담은 사진첩을 꺼내 그 순간을 기억한다.
두견새에게는 너무 넓었던 무대가 텅비게 된 것은
처마 밑 문지방에 앉아 책을 읽는 소년에게 불러주던 포근한 노래를 시샘하는 빗방울 때문이라고
카페 구석 어두운 조명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어른은 핑계를 대어 보았네.
- s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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