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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발해의 건국
1. 배경
(1) 고구려 유민의 당에 대한 저항 - 이사도
(2) 당의 민족 분열 정책
1) 소고구려국 건국 (회유적) : 포로인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을 요동 도독으로 임명 (친당적 국가)
2) 영향 : 하지만 오히려 동족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론
(3) 거란 반란 - 이진충 → 조문홰 살해
발해 관련 기록
1) 일본속기 : 문왕이 스스로를 고려국왕 대흠무라 불렀다. 고려사신으로 표현 2) 제왕운기 (이승휴) : 대조영을 고구려의 옛 장수라 표현 3) 발해고 (유득공) : 남북국사로 인식 4) 동사 (이종휘) 5) 아방강역고 (정약용) 6) 해동역사 (한치윤) 7) 조선상고사 (신채호) 8) 백두산 정계비고 (장지연) 9) 대동지지 (김정희) (X – cf) 대야발 (대조영 아우) – ‘단기고사’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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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국
고왕 – 무왕 – 문왕 – 폐왕원의 – 성왕 – 강왕 – 정왕 – 희왕 – 간왕 – 선왕 – 왕(이이진) – 왕(건황) - 현석 – 위해 – 인선
(1) 대조영 (고왕, 698 ~ 719)
1) 7세기 말, 돈화시동모산
2) 국호 = 진(震), 연호 = 천통➝ 국호 변경 = 발해 (713)
3) 천문령 전투 - 거란 이해고를 물리치고 건국
4) 돌궐, 신라와 통교
5) 당과 통교 - 대문예(둘째 아들) 파견, 발해 군왕 홀한 주도독으로 임명
(2) 남북국 형태 (최초 인식 ➝ 유득공「발해고」)
발해 건국
“대조영은 본래 고구려 별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대조영은 가족을 이끌고 영주로 옮겨와 살았다. 만력 통천 때(696)에 거란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켰다. 대조영은 말갈족장 걸사비우와 함께 각각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망명하였다. ~ 측천무후가 장군 이해고에게 토벌케 하였다. 이해고는 먼저 걸사비우를 무찌르고 천문령(天門嶺)을 넘어 조영을 뒤쫓았다. 대조영이 고구려와 말갈 무리를 연합하여 대항하였다. ~ 마침내 무리를 이끌고 동으로 가서 계루부 옛 땅을 차지하고 동모산(돈화)에 성을 쌓고 살았다. 대조영이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용병을 잘하자 말갈 및 고구려 잔당이 점점 모여들었다.” – 구당서
“왕은 오래도록 대(大)씨를 성으로 삼았다. 상류층 성씨에는 고, 장, 양, 둥, 오, 이씨 등 불과 몇 가지밖에 되지 않았다”. – 송막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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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격
(1)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x- 거란)
“발해는 고구려 옛 땅에 세운 나라이다. 사방 이천 리이며 주현이나 관역이 없다. 곳곳에 마을이 있는데 모두 말갈부락이다. 백성에는 말갈이 많고 토인이 적다. 토인이 촌장이 되었다. 큰 촌락은 도독이라 하고 다음 크기는 자사라 한다. 그 아래는 백성들이 모두 수령이라 부른다.” – 유취국사 |
(2) 고구려 계승 의식
1) 건국 주체 세력 : 고씨
2) 일본에 보낸 국서 : 고구려의 옛 땅 수복, 고려국왕, 천손이다.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3) 당나라 ‘빈공과’에 응시 한 것 : 빈공과는 외국인이 응시하는 것, 발해는 당과 다른 나라라는 표시
(3) 고구려 문화 계승 : 온돌, 와당, 불상, 굴식 돌방무덤의 모줄임구조(정혜공주묘)
(4) 동족 의식 : 고려 태조는 발해의 왕자 대광현 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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