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시러 왔어요
나의 집 정원에 핀 과꽃과 잠자리
여름 동안 열심히 자라려고 노력한 무화과 나무의 열매가
이상하게도 많이 온 비 때문인지 잘익지가 않았다.
열매를 따지 않고 그냥 두니, 여름에는 아침 일찍 한 쌍의 새 부부가 무화과를 먹고 가더니,
가을이 오니 남아 있는 무화과를 나비와 벌들이 모여 먹고 있다.
날씨가 조금은 쌀쌀해지니 마을에 잠자리도 부쩍 늘었다.
어려서는 잠자리만 보면 잡아보고 싶어서,
날개짓에 지쳐 잠시 쉬려 앉아 있는 잠자리를 부단히도 괴롭혔던 것 같다.
힘들게 잡아 얇은 날개를 두 손가락으로 잡고 있다보면,
날개가 부러지거나 다쳐서 왜 잡았을까 하는 미안함에 당황하던 그때에는
잠자리 한 마리를 보면서도 소중한 생명체의 비상에 감동하던 순수함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잠자리를 보면서도 '가을이 왔구나'라는 단순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쉽게 지나쳐간다.
이제는 정말 세상의 아름다움도 즐길줄 모르는 평범한 어른이 되어버렸나보다.
그리고 어느 날은 씨를 뿌리지도 않았는데, 작은 정원에 과꽃이 피었다.
꽃이 피기 전에는 그저 녹색 줄기만 있어서 뽑아 버릴까 했지만,
잡초 같이 보이지는 않아서 그냥 두웠는데, 꽃 몽우리가 생기더니 예쁜 꽃이 나왔다.
국화가 피기 전에 작은 정원을 먼저 차지하고 앉아 자체를 뽐내는 것이었다.
하루는 아침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밤새 비가 조금 왔던 모양인지,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오늘은 화분과 정원에 물을 주지 않아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과꽃을 보니,
나보다 먼저 일어난 잠자리 한 마리가 과꽃에 맺힌 빗물을 마시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리 무심히 지나치던 잠자리가 꽃에 앉아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그 잠자리만큼은 특별하게 느끼고 싶었다.
평범한 일상과 생각에서 벗어나 아무 이유도 없이 행복감을 찾아준 잠자리에게 감사했다.
그러고는 '아차! 잠자리가 날아가기 전에 사진을 찍어두자'라는 생각으로
사진기를 가지고 나와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잠자리는 날아가 버리고,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며,
사진을 찍으려 부리나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자신을 생각하니
이런 저런 고상한 생각들은 잠시였고
다시 금세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갔다는 부끄러움에 볼이 빨개졌다.
그렇게 잠자리님의 강림 덕분에 추억의 사진 한 장이 곁에 있게 되었다.
* [참고] 과꽃에 대한 정보 (아래 더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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