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중대와 통일 신라의 발전
1. 통일 직후 신라의 상황 : 번영, 생산력 증가
2. 신라 중대의 정치 (왕권강화)
(1) 무열왕 (654 ~ 661)
1) 직계의 세습 : 왕권 강화
2) 집사부 시중(중시)의 세력 강화, 집사부 시랑직에 6두품세력 진출.
3) 상대등 세력 역제
4) 김유신의 후원 - 알천과의 경쟁에서 승리
5) 갈문왕 제도 폐지
6) 사정부 정비
7) 중국식 왕호
8) 백제 멸망 (660)
9) 이방부격 60여조 수정 (율령개편)
(2) 문무왕 (661 ~ 681) : 왕권의 전제화
1) 귀족파 숙청 - ‘불휼국사’의 명분
2) 좌사록관, 우사록관 설치 - 왕권파에게 녹읍지급
3) 귀족파 반란 - 박도유, 수제, 대토
4) 삼국통일
5) 당문화 수용
6) 무열왕의 아들
7) 서당, 소경을 추가설치
8) 대왕암 (수중릉)
☞ “내가 죽은 뒤 10일이 되면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장례는 검소하게 하라. 국경 지방의 여러 성과 주현의
세금은 그것이 필요치 않거든 헤아려 폐하도록 하고, 율령격식에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편리하게 고쳐라.”
☞ “내가 죽은 후에 호국 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 한다.”
9) 감은사 축조
(3) 신문왕 (681 ~ 692)
1) 중앙 관제 : 14부 완성, 예작부 설치
2) 지방 관제 : 9주 5소경, 상수리제도
3) 군사 제도 : 중앙군 9서당 / 지방군 10정
4) 교육 제도 : 국학, 유학
5) 토지 제도 : 관료전을 지급(687) - 수조권만 인정 / 녹읍 폐지
6) 사회 정책 : 귀족 숙청 ➝ 김흠돌의 모역 사건(681) - 왕의 장인 ➝ 무열계 전제왕권강화가 배경
7) 사상 정책 : 유학 강조 / 의상 : 화엄종 개창
8) 만파식적 (신성한 악기) : 왕실의 번영과 평화를 상징, 이현대(동해)에서 얻음
(단군신화의 처부인, 진평왕의 옥대, 이성계의 금척 같은 성격)
☞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9) 감은사 완공
10) 달구벌 천도계획 - 실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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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효소왕
1) 백성에게 정전 지급, 민생 안정 (722)
2) 패강 이남 확보 - 김정절 파견
(6) 경덕왕 (742 ~ 765)
1) 중시의 명칭을 시중으로 격상
2) 불국사, 석굴암, 성덕 대왕 신종
3) 국학에 제업박사 설치
4) 정찰 설치 - 백관 규찰 목적
5) 환화정책
6) 녹읍부활
7) 우리나라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꿈
(7) 혜공왕
1) 태후의 섭정 - 만월부인
2) 오묘제 - 무열, 문무, 미추, 경덕, 성덕왕
2) 96각간의 난 - 귀족난
3) 난 - 김융, 김은거, 짐지정, 염상·정문
4) 혜공왕 피살 - 김양상(선덕왕), 김경신
(8) 신라 중대 성격
1) 귀족 세력의 약화
2) 6두품 세력의 부각
a. 왕과 결탁
b. 집사부 시랑직에 진출하여 왕의 정치적 조언자로 활동
3) 전제 왕권의 동요
a. 경덕왕부터 흔들림
b. 결과 : 녹읍 부활, 사원의 면세전이 늘어나 재정 압박
cf) 녹읍은 귀족, 정전은 농민에게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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