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건국과 성격, 멸망
1. 배경
(1) 고구려 유민의 당에 대한 저항 - 고선지, 이정기, 이사도
(2) 당의 민족 분열 정책
1) 소고구려국 건국 : 포로인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을 요동 도독으로 임명 (친당적 국가)
2) 영향 : 오히려 동족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론
(3) 거란 반란 - 이진충 → 조홰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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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국
1) 7세기 말, 돈화시 동모산
2) 국호 = 진(震) / 연호 = 천통 ➝ 국호 변경 = 발해
cf) 걸걸중상(대조영 아버지), 걸사비우 + 말갈인
3) 천문령 전투 - 거란 이해고를 물리치고 건국
4) 돌궐, 신라와 통교
5) 당과 통교 - 대문예(둘째 아들) 파견, 발해 군왕 홀한 주도독으로 임명
(2) 남북국 형태 (최초 인식 ➝ 유득공 「발해고」)
3. 성격
(1)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x-
(2) 고구려 계승 의식
1) 건국 주체 세력 : 고씨
2) 일본에 보낸 국서 : 고구려의 옛 땅 수복, 고려국왕, 천손이다.
☞ “고구려의 옛 땅을 수복하고 부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3) 당나라 ‘빈공과’에 응시 한 것 : 빈공과는 외국인이 응시하는 것, 발해는 당과 다른 나라라는 표시
(3) 고구려 문화 계승 : 온돌, 와당, 불상, 굴식 돌방무덤의 모줄임 구조(정혜공주묘)
(4) 동족 의식 : 고려 태조는 발해의 왕자 대광현 우대
* 발해의 발전
1. 영역 확대
2. 발해의 성장
(1) 무왕 (대무예, 719~737, 8세기 초) - 인안
1) 영토확장
2) 당과 대립 : 산둥지방 등주 선제공격 (장문휴의 수군), 요서 마도산까지 진출
→ 당은 개복순, 대문예(망명), 김사란(신라)으로 발해 공격
3) 신라와 대립 - 신라의 축성 건조 (강릉)
4) 흑수부 말갈과 대립 (주의 - 흑수부 말갈을 이용하여 당을 공격 X)
5) 일본에 국서
(2) 문왕 (대흠무, 737 ~ 793) - 대흥
1) 당과 친선
2) 신라와 관계 개선 : 상설 교통로 개설 ➝ ‘신라도’ : 함흥 ~ 덕원
3) 수도 천도 : 중경 → 상경 → 동경
4) 발해 국왕으로 격상
5) ‘고려국’표방, 불교의 전륜성왕이념, 황상칭호
6) 일본의 신라 정벌 계획에 참여
7) 딸 - 정혜·정효 공주
cf) 신라는 경덕왕
(3) 선왕 (대인수, 818 ~ 830, 9세기 전반) - 건흥
1) 영토 확장 : 말갈족 복속, 요동으로 진출 (목저주, 현도주 설치)
2) 지방 제도 완비 : 5경 15부 62주
3) 중흥기 : 해동성국
cf) 상경 용천부, 중경 현덕부, 서경 압록부, 동경, 용원부, 남경 남해부, 철리부, 솔빈부(말), 정리부, 부여부, 장령부
3. 발해 정치의 특징
(1) 독자적 연호
1) 중국과 대등함 강조, 왕권의 강대함
2) 대조영(천통), 무왕(인안), 문왕(대흥), 선왕(건흥)
(2) 왕권의 전제화 : 관료 조직의 성격, 장자 상속제
통일 신라 |
발해 | |
7세기 |
1) 무열왕 : 백제 멸망, 진공 왕위 세습 |
1) 고구려 멸망 (668) |
8세기 |
1) 성덕왕 : 정전 |
1) 무왕 : 당과 대립, 산둥 공격, |
9세기 |
진덕여왕 : 최치원의 시무 10조 |
선왕 : 해동성국, 최대 영토, 말갈 복속, |
10세기 |
1) 후백제 건국 (900) |
* 애왕 : 거란에 멸망 (926) |
* 발해의 대외관계
1. 당과의 관계
(1) 8세기 초반 (무왕)
1) 산둥 공격
2) 돌궐·일본과 연결
(2) 8세기 후반 (문왕) - 친선
2. 통일 신라와의 관계
(1) 경쟁관계
1) 등제 서열 사건 : 우열 경쟁 (당 빈공과 합격)
2) 쟁장 사건 : 당의 견제 정책 (당에 간 사신이 서로 상석에 앉기를 다툼
3) 당의 요청으로 신라는 발해를 공격했으나 성과 없이 퇴각하였다.
(2) 교섭관계 : ‘신라도’ (길)
(3) 신라 원성왕, 헌덕왕 때 발해에 사신을 파견
3. 일본과의 관계 : 우호
4. 돌궐과의 관계 : 친교
5. 발해의 멸망 : 귀족의 권력 투쟁 = 거란의 확대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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