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사회의 동요1. 무신 정권에 대한 반발 (정중부)(1) 김보당의 난 (1173) : 명종 때 의종의 복위를 꾀함, 반 무신난 성격 (∵ 무신 지배가 강화되는 계기) “명종 3년 (1173) 8월에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동계(東界)에서 군사를 일으켜, 정중부, 이의방을 치고 전왕(의종)을 복귀시키고자 하는데 ~ 한언국도 호응하고 장순석 등을 보내어 ~” – 고려사(2) 조위총의 난 (1174) :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신에게 항거 (∵ 농민 전쟁적 성격도 띄고 있다.)(3) 승려의 난 : 귀법사 등 교종 계열 ➝ 개경공격 (최충헌 때)2. 무신 집권기 하층민의 봉기(1) 배경 : 신분 제도의 동요, 백성 수탈의 강화, 지배체제붕괴, 새 국가 건설 의식 등장(∵ 정중부, 이의민 집권 - 이의민은 천민 출신)(2) 천민•노비들의 난 1) 전주 관노의 난 : 경대승 집권기 (노비가 최초로 참가한 민란)2) 만적의 난 : 최충헌의 사노가 신분 차별에 항거,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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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 시도 ➝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 “장상(將相)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 공경장상(公卿將相)은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다. ~ 매만 맞고 살아야 하는가?” - 고려사, 동사강목(3) 양민, 농민들의 난 1) 김사미•효심의 난 (명종 때) : 신라부흥운동 전개, 양인 최대 규모의 민란 (이의민 때) (X- 노비의 난)2) 망이•망소이의 난 : 공주 명학소에서 신분해방 주장 (정중부 때)➝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하며 향•소•부곡이 해방되는 계기가 되었다.☞ “산행병마사(山行兵馬使)라 칭하고 ~ 홍경원(弘慶院)을 불태우고~” - 고려사3) 정부는 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제한적이나마 빼앗긴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조부를 감면하고 권농 정책을 실시T) 무신란 이후 농민 봉기가 일어났으나, 최씨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 (∵ 무신정권안정, 탄압과 회유)3. 부흥 운동(1) 최광수의 난 (1217) : 서경에 고구려 부흥 표방 (최충헌 때)(2) 이연년의 난 (1237) : 담양에서 백제 부흥 표방 (최우 때)(3) 김사미•효심의 난 (1193) : 운문, 초전에서 신라 부흥 표방 (이의민 때)4. 기타 항쟁(1) 노군 (충주), 정방의 (진주), 이비 (경주), 금단 (울진)(2) 민란에 참여하는 계층이 다양하였다.5. 무신 정변의 영향(1) 문벌 귀족의 붕괴 : 관료 체제로 전환되는 계기(2) 왕권 약화, 국가 통제력 약화(3) 전시과 체제 붕괴 - 대토지소유 증가 (권문세족 : 토지 겸병진행)(4) 민생 피폐, 신분제 동요 - 천계출신 집정자의 등장으로 하층민의 사회의식 성장➝ 귀족 중심의 엄격한 신분 사회가 변화되는 계기(5) 신앙 결사 운동, 조계종 개창, 선종발달(6) 문화 침체 - 은둔적 시조 문학은 발달, 경기체가 유행, 패관 문학 발달(7) 민족 주체적 문화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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