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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지 (忠淸南道 洪城郡 金佐鎭 將軍 生家址, Birth place of general Kim Jwajin)

by 소이나는 201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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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 김좌진 장군 생가지

(忠淸南道 洪城郡 金佐鎭將軍生家址, Birth place of general Kim Jwajin)

 

 

 

홍성을 지나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가 있어 들려 보았습니다.

 

 

 

[김좌진 장군 생가지]

 

 

지정종목 : 시도기념물
지정번호 : 충청남도기념물 제76호
지 정 일 : 1989년 12월 29일
소 재 지 :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330-1 외
크     기 : 면적 1,861㎡


 

 

 

 

이곳은 청산리 대첩으로 유명한 독립운동가인 백야 김좌진이 태어나 성장하던 곳입니다.  

간도에서 활약을 하던 장군인데 생가지는 충청남도 홍성에 있군요.

 

 

 

김좌진 장군은 1889(고종 26)에 태어나 1930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홍성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공부보다는 전쟁놀이와 말타기를 좋아하였다고 합니다.

15세 때인 1904년에는 대대로 내려오던 노복 30여 명을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종문서를 불에 태우고 농사를 지어먹고 살 만한 논밭을 골고루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는 군요.

사노비가 해방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인데 그 뒤로도 인식 때문인지 노복이 있었나 보군요.

그래도 저렇게 나누어 주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대단합니다.

 

을미사변이 있었던 1905년 서울로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고, 1907년 향리로 돌아와서 호명학교를 세우고, 가산을 정리해 학교 운영에 충당하게 하고 90여 칸의 자기 집을 학교 교사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성에 대한협회와 기호흥학회의 지부를 조직해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습니다.

항일의병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애국계몽운동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김좌진은 계몽운동에도 호의적이었나 봅니다.

1909년 『한성신보』 이사를 역임하였고, 안창호·이갑 등과 서북학회를 세우고 산하교육기관으로 오성학교를 설립해 교감을 역임하였습니다.

학문적으로도 많은 활동을 하였군요.

 

그리고 1911년에 북간도에 독립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자금조달 차 돈의동에 사는 족질 김종근을 찾아간 것이 원인이 되어, 2년 6개월간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습니다.

1916년 노백린·신현대 등과 함께 박상진·채기중등이 결성한 광복단에 가담해 격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지요.

1918년 일본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건너가서 대종교에 입교하고, 3·1독립선언에 전주곡이 되는 무오독립선언서에 39명 민족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일을 중심으로 한 대한정의단에 가담해 군사 책임을 맡고, 정의단을 군정부로 개편한 다음 사령관으로 추천되었습니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북로군정서로 개칭하고, 소속 무장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독립군 편성에 주력하였습니다.

우선 독립군 양성을 위해 왕청현 십리평 산곡에 사관연성소를 설치하였습니다.

스스로 소장이 되어 엄격한 훈련을 시키면서 무기 입수에 전력하였다. 1920년 9월 제1회 사관연성소 졸업생 298명을 배출시켰습니다.

10월 일본군 대부대가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만주로 출병하자 소속 독립군을 장백산으로 이동시키던 도중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만나 전투가 시작되었다. 3일간 계속된 10여 차례의 전투에서 일본군 3,000여 명을 살상하는 대전과를 올렸습니다.

전술전략이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두어 독립전투상 금자탑을 세운 것입니다.

 

그 뒤 북진을 강행하며 그 해 말에 러시아와 인접한 북만주 밀산(密山)부에 도착하였습니다.

집결한 10여 개의 독립군단체가 통합, 대한독립군단이 결성되자 부총재로 취임하였습니다.

약소민족의 독립을 원조한다는 레닌정부의 선전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많은 사람이 북쪽 러시아로 넘어갈 때, 그도 우수리강을 건넜습니다.

그러나 생각한 바 있어 만주로 되돌아와 흩어진 동지들을 재결합해 대기하다가, 1925년 3월 신민부를 창설하고 군사부위원장 및 총사령관이 되었습니다.

또한 성동사관학교를 세워 부교장으로서 정예사관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이 때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무위원으로 임명했으나, 취임하지 않고 독립군 양성에만 전념하였습니다.

1927년 많은 간부가 일제에 붙잡히자, 신민부를 재정비해 중앙집행위원장으로서 신민부를 통솔하였습니다.

1929년 신민부의 후신으로 한국총연합회가 결성되자, 주석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30년 1월 24일 중동철도선 산시역 앞 자택에서 200m 거리에 있는 정미소에서 공산주의자 박상실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여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위와 같이 간도에서 많은 활약을 해서 인지 중국의 하얼빈 성에도 김좌진이 살던 집이 아직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국사시간에 청산리전투, 북로군정서(대종교), 서북학회, 오성학교, 신민부 등을 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

 

 

 

[백야기념관]

 

[생가지]

 

홍성에 있는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는 1991년부터 이곳의 성역화사업이 추진되어 생가지와 문간채·사랑채가 복원되었으며 관리사 및 전시관이 건립되었습니다. 

다른 인물들의 생가지처럼 기념관과 생가지로 이루어져있고 넓은 공간은 아닙니다.

김좌진 장군의 생가지 근처에는 백야공원에 장군의 비(충남문화재자료 167)가 있으며, 보령시 청소면(靑所面) 재정리(才井里)에 장군의 묘(충남기념물 73)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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